성스캔들로 드러난 접대 관행·경영진 비위 등 구조적 문제…‘저무는 TV 시대’ 미디어 환경 변화 짚기도

후지TV는 ‘여성 아나운서 붐’을 이끈 방송사다. 아나운서를 예능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로 적극 기용하며, 연예인에 가까운 미디어 스타로 키우는 전략을 펼쳤다. 1990년대에는 야기 아키코가 예능과 토크쇼를 넘나들며 전방위 활약을 펼쳤고, 나카이 미호는 스포츠와 버라이어티를 오가며 후지TV 아나운서 황금시대를 열었다.
2000년대에는 ‘미녀 아나운서’로 불린 나카노 미나코와 ‘아야팡’이라는 애칭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은 다카시마 아야, 귀여운 이미지로 사랑받은 히라이 리오가 아이돌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3인방’의 활약으로 후지TV는 명실상부한 ‘아나운서 왕국’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2010년대에도 가토 아야코와 쇼노 요코가 양대 간판으로 활약하며 흐름을 이어갔다.

일본 매체 닛칸겐다이는 “한때 후지TV 여성 아나운서는 방송국의 간판이자 스타로 대우받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간 것인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후지TV 여성 아나운서들의 잇따른 퇴사 배경으로는 과중한 업무로 인한 컨디션 악화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로 거론된다. 여기에 “나카이 마사히로를 둘러싼 성폭행 논란이 불거지면서 퇴사 흐름을 가속한 계기가 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25년 일본 연예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는 전 아이돌그룹 스맙(SMAP) 멤버이자 오랫동안 톱 MC로 활동해온 나카이 마사히로의 성스캔들이었다(관련기사 ‘기무타쿠’와 비교되네…일본 국민MC 나카이 마사히로 나락 간 사연). 2024년 연말 ‘주간문춘’ 등은 “나카이가 후지TV 소속 20대 여성 아나운서를 성폭행했다”라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후지TV 간부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추가 보도 및 “또 다른 여성 아나운서 피해자가 있다”는 소문이 떠돌며 파문은 급속히 확산됐다.

급기야 “후지TV가 여성 아나운서를 거물급 탤런트와의 자리로 내모는 관행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비판의 화살은 개인을 넘어 방송국의 조직 문화 전반으로 향했다. 이후 나카이는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고, 광고주 대거 이탈과 함께 후지TV 경영진(당시 사장·회장)의 사임으로 이어지며 방송사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후지TV는 외부 변호사들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를 꾸려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나카이의 여성 아나운서 성폭력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후지TV는 일본 방송국 가운데서도 연예기획사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고서는 “전 후지TV 간부들이 연예기획사 관계자나 유력 프로그램 남성 출연자들과의 회식에 여성 아나운서를 동석시키는 관행이 상시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후지TV의 한 전직 아나운서도 매체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어디까지가 업무인지 경계가 흐려 사적인 자리나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영업 담당자의 요청으로 접대 자리에 여러 차례 참석했고 그 과정에서 신체 접촉 등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말했다.

#광고 76% 회복, 또다시 터진 비리
성스캔들 직후인 2025년 1월 후지TV의 광고는 줄줄이 끊겼다. 현재는 이탈했던 스폰서 기업이 어느 정도 돌아와 12월 기준으로 409개사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536개사) 대비 회복률은 약 76.3%다. 경영 체제 개편과 컴플라이언스 강화 조치가 이어지면서 최악의 국면은 벗어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전체의 30%에 가까운 스폰서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방송가 안팎에서는 조직 분위기 변화에 대한 평가도 나온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즐겁지 않으면 TV가 아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던 황금기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현재 후지TV는 조직 전반에 활력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한때 방송국의 간판으로 불리던 여성 아나운서들의 잇따른 퇴사는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후지TV 여성 아나운서들의 잇따른 퇴사를 성폭행 논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TV 매체의 영향력 약화와 인플루언서 시대의 도래로 ‘후지TV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의 매력이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는 방송국의 간판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방송에 나와도 화제성이 예전 같지 않다. 젊은 시청자들은 이미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로 이동한 지 오래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아도 개인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닛칸겐다이는 “후지TV 아나운서들의 퇴사 이면에는 TV 중심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 깔려 있다”고 짚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