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관 실장 “금융의 민주화·개인화 실익 기대…보안성 취약·미국 의존 심화 걸림돌”
현재 시중은행에선 서비스하지 않는 기능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상용화할지 모른다. '디지털화폐'가 보편화했을 때 얘기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아직 부작용 우려가 크다. 윤성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실 실장은 다가올 디지털화폐 시대를 '금융민주화'로 정의한다. 그러면서도, 당장은 미국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취약한 보안성 등을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지난 1월 14일 오후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는 제125회 동반성장포럼(이사장 정운찬)이 개최됐다. 이날은 윤성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실 실장이 강연에 나섰다. 주제는 '화폐의 대전환: 디지털 화폐와 토큰 경제'였다.
비트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화폐는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다. 하지만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윤 실장은 "화폐의 외관이 바뀌었다"는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동시에 또 알아야 할 개념은 '통화의 위계구조'. 최상단은 중앙은행, 즉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가 자리한다. 이어 상업은행이 발행하는 예금, 카카오페이 등 전자금융업자가 서비스하는 선불 순이다.
현재 디지털화폐가 가장 많이 쓰이는 구간은 단연 전자금융업자의 선불이다. 이들이 실물 지폐 대신 디지털 기술로 결제를 가능하도록 한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그러나 한계가 뚜렷하다. 카카오페이 등의 선불은 중앙은행과 교환성을 갖추지 못한 채, 상업은행 예금계좌와 연계해야만 서비스가 제공된다. 디지털화폐가 진정한 통화 기능을 한다고 보기 힘든 단계란 뜻이다.
윤 실장은 그럼에도 화폐의 디지털 전환이 가져다 줄 실익은 크다고 봤다. 금융의 '민주화' 혹은 '개인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금의 실물화폐 외관을 블록체인을 통해 디지털화한 게 '토큰화'로, 이는 화폐의 한 단계 진화를 의미한다"며 "상업은행이 설계한 서비스를 벗어나, 개인이 맞춤형 설정을 구성하고 금융 통제권을 쥐게 돼 금융의 민주화나 개인화를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 대부분이 분산원장기술(DLT)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중앙집중형 관리자 없이 다양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기술이다. 현재는 예금을 뺄 때도 상업은행 등의 반응이 필수지만, 블록체인 프로그래밍을 거치면 달라진다. "비가 내리면 돈을 빼 달라"등 현 시중은행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현재 디지털화폐 종류는 다양하다. 발행 주체와 자산 성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가장 크다고 평가되는 디지털화폐는 미국 달러를 표준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다. 유통 규모가 2025년 12월 기준 3082억 달러(453조 4238억 원)로 추산된다. 2030년에는 3조 7000억 달러(5444조 1800억 원)까지 성장이 예상된다.
이러다 보니 해당 스테이블코인의 현황은 디지털화폐의 명과 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로도 꼽힌다. 윤 실장은 이 지점에서 긍정 요인보다는 부정 요인에 주목했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명칭(Stable·안정적인)만큼 안정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3년 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때 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가격은 일시 0.88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른바 '코인런' 사태였다.
코인런 사태는 한 번 발생하면 수습이 유독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 화폐와 디지털 화폐를 일대일 비율로 맞교환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중앙은행과 연계되지 않은 구조는 위험사태 재발 가능성을 확대하는 악순환까지 야기한다. 중앙은행의 관리·감독 범위 바깥에 있으므로, 스테이블코인 운용사도 자금 운용을 불투명하게 할 수 있어서다.
윤 실장은 "물론 코인런 발생 시 중앙은행이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도 "결국 이런저런 대응에 나서게 되면 세금을 쓸 수밖에 없어 사회 전체가 입게 될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코인런은 각종 부작용의 일부일 뿐"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면 환매 비율이 급등하는 등 여러모로 리스크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부작용 타개법 고민…혁신안 추진중
이 밖에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윤 실장은 △디지털화폐 종류가 워낙 많은 탓에 상호 거래가 쉽지 않은 구조 및 화폐 다중화 △즉각적인 현금화가 불가능한 법인 사이 거래 불가능 △규제 마련 어려움 등을 예시로 들었다.
특히 취약한 보안성과 대미 기술력 의존 심화 등이 치명적 약점이다. 윤 실장은 "블록체인은 개인 거래사항 등이 전부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미국 시스템을 따라야 할 텐데, 우리 정보가 미국에서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윤 실장은 또 "현재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곳 상당수는 대주주가 있는 시스템으로, 이들이 언제든 발행이나 운용 형태를 바꿀 수 있다"며 "미국 블록체인 시스템을 지탱하는 구글이나 아마존 클라우드가 망가져도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바라봤다.
윤 실장은 "디지털화폐 전환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한국은행은 각 부작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 혁신안은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예금토큰을 활용한 전세금 반환 대출, 소상공인 등의 지급수수료 부담 경감 등 작업에 나섰다. 이 가운데 '예금토큰 전세금 반환'은 집주인이 은행에 전세금 반환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이 세입자에 예금토큰을 발행하되 '락'(lock)을 걸어 퇴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설정하는 조치다.
'소상공인 지급수수료 감면'은 예금토큰에 수수료가 붙지 않는 덕분에 가능하다. 현재 신용카드가 매출액 기준 건당 0.4~1.45% 수수료를 걷는 현실과 비교하면 소상공인 입장에선 적지 않은 이익이다.
윤 실장은 "정부 지원에 따라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이전과 거래 등 규율방안 마련, 거래 편의성 제고 등을 위해 디지털자산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며 "2030년까지 국고금 4분의 1 규모 디지털화폐 활용 집행 목표로 디지털화폐 선진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