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으로부터 ‘호버’ 특허 인수 두 달 만에 소송 제기…특정 기업 겨냥한 ‘핀셋형’ 공세 결과 주목

카이파이가 지난 1월 6일(현지시각) 글로벌 빅테크 기업 애플을 상대로 미국 텍사스 서부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카이파이는 애플의 주력 제품인 아이패드 프로·에어·미니 등 태블릿 전 제품군과 애플펜슬 시리즈가 자사가 보유한 터치 패널 제어 기술 특허(US 8446385)를 무단으로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특허는 펜이나 손가락이 터치 패널에 접촉하기 전의 ‘근접’ 단계와 실제 ‘접촉’ 시점을 구분해 입력 민감도를 전환하는 제어 기술이 핵심이다. 포인팅 수단이 패널에 접근할 때와 닿을 때를 단계적으로 인식하고, 상황에 맞춰 검출 감도와 시간 간격을 조절함으로써 연산 부하를 줄이는 동시에 정밀한 좌표 및 방향 입력을 가능케 한다.
카이파이 측은 애플의 ‘호버’ 기능이 자사 특허의 기술적 메커니즘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호버 기능은 애플펜슬이 화면에 닿기 전부터 펜을 미리 인식해 정교한 작업을 돕는 기능이다. 펜과 화면 사이의 전기 신호 변화를 감지해 섬세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거나 설계할 때 실수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기기 업계 관계자는 “태블릿의 입력 정밀도는 소비자의 실질적인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결정적 요소다. 수천 단계의 필압 감지와 맞물려 정교한 조작을 완성하는 호버 기술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은 애플로서도 피하고 싶을 것”이라며 “특히 ‘아이패드 프로’를 전문가용 창작 도구로 강조하며 마케팅해 온 만큼 핵심 UX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줄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번 소송에서 주목받는 부분은 분쟁 특허의 권리 이전 과정과 분쟁의 신속성이다. 해당 특허는 본래 일본의 대기업 JVC 켄우드가 출원해 등록받은 특허였다. 카이파이는 2025년 11월 JVC 켄우드로부터 해당 특허를 양수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단순히 보유 중인 특허를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특정 기업의 기술을 정조준해 맞춤형 특허를 확보한 뒤 즉각 공격에 나선 것이다.
특허사무소 공앤유의 공우상 대표 변리사는 “양수 후 이례적으로 빠르게 소송이 제기된 것은, 공격할 대상을 먼저 정한 뒤 그에 적합한 특허를 시장에서 찾아내 조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방증”이라며 “특허를 미리 사두고 침해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빅테크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할 수 있는 특허를 ‘핀셋’처럼 골라 인수한 뒤 곧바로 공세에 나서는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카이파이는 법원에 애플의 특허 침해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과 침해 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 명령, 그리고 로열티 수익과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특히 애플의 행위가 고의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배심원이 산정한 손해배상액의 최대 3배까지 증액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변호사 비용 부담까지 요구했다.
미국은 애플의 최대 시장이고 연간 5000만 대 안팎의 판매고를 올리는 아이패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번 소송의 결과는 막대한 규모의 배상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허 침해 판결 시 대당 몇 달러의 로열티만 책정돼도 누적 배상금은 수억 달러(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법원이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애플은 기회비용 손실을 방어하기 위해 합의 테이블에 끌려 나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유사 기술을 개발했을 가능성도 충분하고, 파고들다 보면 동일한 기술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나 구현 원리가 유사한 정도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빅테크들도 소송 결과가 불확실할 경우 막대한 소송비용과 시간을 들이기보다 일정 수준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빠르게 합의하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며 “최근의 특허 소송들은 판결을 통한 승패보다는 이러한 실무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카이파이는 최근 아마존의 AI(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 음성 호출 기술과 관련한 특허 소송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를 기점으로 구글과 애플에 음성인식 관련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이번 아이패드 ‘호버’ 기능 소송까지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애플과의 소송 결과에 따라 향후 ‘에어 뷰’ 등 유사 기능을 보유한 삼성전자 역시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식재산권(IP) 업계 한 관계자는 “잘 가꾼 IP 하나로 무궁무진한 수익화가 가능하다”며 “카이파이의 모회사인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ID)가 최근 통신이나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 전반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표준특허를 중심으로 분쟁이 될 만한 특허도 열심히 매입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실제 ID는 또 다른 자회사를 통해 포드(Ford)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상대로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 세계 빅테크들을 겨냥해 활발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