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기 최종국 이치리키 료에 불계승, 5년 만에 왕좌 탈환…특유의 침착함·정교한 수읽기로 공격 원천봉쇄

#커제 격파하던 5년 전 후련함 재현
신민준에게 LG배는 단순한 세계대회를 넘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는 약속의 땅과도 같은 대회다. 그는 5년 전인 2021년, 제25회 LG배 결승에서 당시 세계 바둑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한국 기사들을 압박하던 중국의 커제 9단을 2 대 1로 꺾고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 바둑은 중국의 거센 기세에 밀려 팬들의 우려가 컸던 시기였으나, 신민준이 중국 일인자 커제를 정면 승부로 꺾으며 보여준 드라마틱한 우승은 팬들에게 통쾌함과 후련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제30회 대회 역시 신민준은 큰 승부에 강한 기사라는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승 상대인 이치리키 료 9단은 기성(棋聖), 명인, 왕좌, 본인방 등 일본 내 7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일인자이자, 최근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최절정의 고수였다. 특히 이번 결승은 1998년 제2회 대회 이후 무려 28년 만에 성사된 LG배 한·일 결승전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 바둑 팬의 이목이 쏠렸다.
최근 한국 바둑은 세계무대에서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 못하며 다소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민준은 일본과 대만의 최강자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한국 바둑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킨 것. 이로써 신민준은 통산 두 번의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LG배에서 수확하며 명실상부한 ‘LG배 사나이’이자,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빅매치 킬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우승으로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신민준은 결승 1국에서 다 잡았던 바둑을 놓치며 뼈아픈 대역전패를 당해 심리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신민준은 특유의 침착함으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1국에서 대역전패를 당하고 출발이 좋지 않아 이번 우승은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 패배 후 하루 휴식일이 있어 잠을 충분히 자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2국을 이기면서 5 대 5 승부가 됐다고 느꼈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돌아봤다.
결승 최종국인 3국에서 신민준은 신들린 타개 실력을 선보이며 대국을 지배했다. 백을 든 신민준은 우상귀 전투에서 이치리키 료 9단의 거센 공격에 직면했으나, 오히려 실리를 크게 차지한 뒤 위험해 보였던 중앙 대마를 완벽하게 수습하며 상대의 추격을 완전히 봉쇄했다.
신민준은 “내 돌의 형태에 탄력이 있어 잡히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단순히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집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려 했던 것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상대인 이치리키 료 9단은 남은 시간을 모두 투입하며 다 잡자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신민준의 정교한 수읽기를 끝내 뚫지 못했다.
이치리키 료 9단과의 상대 전적을 2승 2패 호각으로 만든 신민준은 “최근 세계대회에서 한국의 성적이 좋지 않아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컸고 스스로도 확신이 부족했는데, 이번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라며 겸손해했다. 이어 “2026년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열었으니, 올해 남은 다른 세계대회에서도 더 좋은 성적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겠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제30회 LG배 우승 상금은 3억 원, 준우승 상금은 1억 원이다. 제한 시간은 각자 3시간에 4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졌다.
유경춘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