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갈등 끝에 형 극단 선택, 일각 범인에 대한 동정론…가정 붕괴 ‘2세’들 통일교 상대 집단 손배 소송 제기
일본 사법부가 1심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45)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2년 7월, 거리 연설 중이던 전직 총리가 백주 대낮 총격으로 쓰러진 장면은 일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NHK는 한 개인을 범행으로 몰아넣은 가정의 붕괴를 추적했다. 아울러 신흥종교에 과도하게 몰입한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자녀, 이른바 ‘종교 2세’ 문제가 일본 사회에 드러낸 불편한 민낯을 집중 조명했다.

피고인의 형이 병에 걸린 것을 계기로 통일교에 입문한 모친은 ‘수술을 반복하던 아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시작했다. 헌금은 7년 동안 1억 엔(약 9억 3000만 원)에 달했다. 생활은 빠르게 무너졌고, 가족 간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피고인의 형은 어머니의 신앙과 헌금을 둘러싼 갈등 끝에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마저 교단 방식으로 치러졌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야마가미 피고인은 “이 일련의 경험이 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관련 단체에 영상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됐다. 야마가미 피고인은 이 장면을 보고 “교단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문제없는 단체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랜 기간 재임한 전 총리이기 때문에 통일교가 점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문제없는 단체로 인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재판을 누구보다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본 이들은 ‘종교 2세’들이었다. 통일교 피해 가정에서 자란 나가타 씨(가명)는 자신의 경험이 야마가미 피고인의 삶과 겹친다고 NHK에 말했다. 부모는 고액 헌금을 반복했고, 가정 형편은 곤궁해져 갔다. 그는 “신앙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 끊임없이 충돌했다고 밝혔다. 나가타 씨는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피고인의 처지를 알게 된 뒤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종교 2세들이 통일교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야마가미 피고인과 약 10시간 동안 면담한 종교학자 사쿠라이 요시히데 교수는 그의 행동을 ‘가족의 굴레’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사쿠라이 교수는 “피고인이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안고 살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축적된 분노가 교단과 교단 지도부, 나아가 정치와의 연결고리로 인식된 인물에게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통일교의 유착 의혹도 남겨진 과제다. 이번 재판에서는 직접적인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없었다. 다만 사건 이후 자민당을 비롯한 각 정당은 통일교와의 접점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고, 향후 일절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단과 관련해서는 현재 도쿄고등법원(2심)에서 진행 중인 ‘통일교 해산 명령 청구’ 판결이 조만간 내려질 예정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해산을 선고한 바 있다.
한편, 외신들은 “이번 판결이 일본 사회 전반에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는 “야마가미를 냉혹한 살인범으로 보는 시각과 불우한 환경을 동정하는 여론이 일본 내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정치 지도자를 살해한 범죄자에게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피고인의 개인적 배경, 즉 가정 붕괴와 통일교 피해가 알려지면서 그를 단순한 범죄자로만 보지 않으려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 같은 반응은 외신의 눈에 이례적으로 비치는 듯하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은 일본 정계와 종교의 관계, 정치인 테러 예방, 종교 피해자 구제 제도의 취약성이라는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특히 종교 단체로 인한 가정 붕괴, 이른바 ‘종교 2세’ 문제는 그동안 일본 사회에서 충분히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재판부는 야마가미 피고인에게 무기징역 형을 선고했지만, 사건이 던진 질문까지 답을 낸 것은 아니다.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범죄 처벌을 넘어,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구조적 문제를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