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과 달리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갭’ 신선…폭주족 잡지 복간 등 과거 양키 서사 장르로 살아남아

지난해 연말 넷플릭스에 공개된 ‘불량연애’는 일본에서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흔히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하면 어느 정도의 직업과 외모를 갖춘 출연진, 계산된 밀당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량연애’는 설정부터 이 공식을 비틀었다. 최종학력은 소년원, 전직 폭주족 총장, 싸움으로 가득했던 학창 시절까지. 출연진 소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은 이른바 ‘양키’ 출신이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더욱 파격적이다. 첫 만남의 장소는 교실. 그런데 남자 출연진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주먹다짐이 벌어지며 제작진의 제지 속에 막이 오른다. ‘양키’와 ‘짝짓기 예능’이라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조합은 오히려 강한 화학작용을 만들어냈다. 곧바로 일본 넷플릭스 주간 TOP10 1위에 올랐고, 시즌2 제작까지 확정되며 화제성을 굳혔다.
인기의 핵심은 출연진들이 보여주는 극적인 ‘갭’에 있다. 겉모습은 위압적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수줍어하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태도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흐름을 좀처럼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이 프로그램의 묘미다. 기존 짝짓기 예능에 피로감을 느껴온 시청자들까지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입소문은 일본을 넘어 해외로도 빠르게 퍼졌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넷플릭스 TOP10에 진입했고, 출연진의 독특한 패션과 말투는 일본 특유의 ‘서브컬처’로서 흥미를 자극했다. 여기에 연애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더해지며 국경을 넘어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밈으로 재소환되는 양키 문화
출연진 다수가 과거 양키였다는 점이 화제가 되면서, 일본의 양키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실 일본 사회에서 양키 스타일은 점점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반면 대중문화에서는 양키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이 장르의 핵심은 ‘불량스럽지만 스스로 지키는 룰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다. 의리, 체면, 우정 같은 관계성이 중심에 놓인다.
일본의 양키물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일본 매체 ‘카이유’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감정선의 보편성이다. 단순하지만 직진하는 감정, ‘내 편은 끝까지 지킨다’는 의리의 서사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카이유는 “이러한 양키 서사가 때로는 해외에서 ‘현대판 사무라이’처럼 읽히기도 한다”며 “반항과 마이너로서의 고뇌라는 테마가 국경을 넘어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세계적인 복고 열풍과 맞물려 일본에서도 1990~2000년대 감성을 다시 꺼내는 ‘헤이세이 레트로’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당시의 패션과 소품, 놀이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게 비쳐 레트로 감성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이런 흐름 속에서 ‘불량연애’가 인기를 끌자, 양키 문화 역시 특정 시대의 반항 아이콘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양키의 패션과 포즈를 따라서 만든 짧은 영상과 재가공 이미지가 소셜미디어(SNS)에서 밈처럼 확산되고 있으며, ‘불량연애’ 여성 출연자의 메이크업과 스타일을 흉내 낸 콘텐츠도 잇따른다.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콘텐츠로 체험하며 그 시절의 감성을 느껴보는 방식이다.
#폭주족을 잡지로 기록한 나라
이 같은 재소환은 온라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양키 문화를 ‘취향’의 영역에서 소비해 왔다. 한때는 폭주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들까지 존재했다. 이들 잡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특정 세계관과 취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일각에서는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현실의 불법’과 ‘콘텐츠 소비’를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우세하다.

현실에서 폭주족 문화가 사라지는 듯 보이던 시기, 만화계에서는 오히려 폭주족 붐이 재현됐다. 2017년 연재를 시작한 ‘도쿄 리벤저스’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로까지 확장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공복 차림으로 캐릭터 코스프레를 즐기는 팬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게 포착됐다. 물론 폭주 행위나 폭력 자체가 미화될 수는 없다. 다만 양키물 만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동료애와 주인공의 성장 서사는 여전히 소년만화의 왕도로 작용한다. 동시에 폭력, 서열, 여성혐오 같은 요소가 뒤섞일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에 최근 양키물 작품들은 캐릭터의 개성이나 관계 중심의 드라마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흐름이다. 현실의 양키는 줄어들었지만, 양키 서사는 장르로 살아남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