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경제’ 속 성장, 정책 아닌 외모 기준으로 지지…각진 턱선 만들기에 돈 쓰는 ‘룩스맥싱’ 열풍도 영향
[일요신문] “뚱뚱한 밴스보다는 잘생긴 뉴섬이지!”
정치는 엔터테인먼트이고, 투표는 ‘최애’를 뽑는 오디션인가. 미국 Z세대 남성들의 정치 감각이 심상치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에게 정치는 더 이상 토론의 대상이 아닌, 장난이자 오락거리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투표가 점점 농담과 외모 경쟁의 연장선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최근 들어 소셜미디어(SNS)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룩스맥싱(Looksmaxxing)’과도 연관이 있다. 외모지상주의의 일환인 ‘룩스맥싱’과 보수 성향의 청년들이 결합하면서 미 정치권에 기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정책과 이념 대신 턱선과 키, 외모 서열을 따지며 “잘생긴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외친다. 이런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도발적인 면모에 기성 정치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연 밈과 인터넷 장난에 휘둘린 채 성장한 이들에게 미래를 맡겨도 되는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친트럼프 차기 대권주자인 JD 밴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민주당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사진=AP·EPA/연합뉴스최근 미국 보수 진영에서 화제가 된 인물은 SNS 인플루언서인 ‘클라비큘러’다. 본명은 브레이든 피터스(20)로, ‘클라비큘러’는 우리말로 ‘쇄골’이란 뜻이다.
얼마 전 미국 우파 성향의 지식인 마이클 놀스가 진행하는 쇼에 출연한 ‘클라비큘러’의 발언은 미 대륙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스스로를 친트럼프 성향이라고 밝히면서도, 차기 대선 가상 대결에서는 트럼프의 측근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JD 밴스 부통령(41) 대신 민주당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58)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허무할 정도로 단순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JD 밴스는 ‘서브휴먼(열등 인간)’이고, 개빈 뉴섬은 ‘모깅(Mogging)’ 하거든요”라고 밝혔다. ‘모깅’이란, 상대보다 외모가 압도적으로 뛰어나 굴욕감을 준다는 뜻의 속어다. 당황한 놀스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클라비큘러’는 “밴스의 얼굴은 너비 대비 높이 비율이 매우 짧고, 비만이며, 옆에서 봤을 때 얼굴이 너무 함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뚱뚱하다는 건, 특히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렇다는 건 그냥 창피한 거다. 어떻게 자기 살도 못 빼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겠는가”라고 비웃었다. 반면, 그는 민주당 소속의 뉴섬을 향해서는 “키 190cm의 ‘채드(매력적인 상남자로 근육질에 잘생긴 ‘알파메일’을 뜻하는 은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Z세대 인플루언서 클라비큘러는 외모만 놓고 봤을 때 JD 밴스보다 개빈 뉴섬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마이클 놀스 유튜브놀스 역시 이를 거들고 나섰다. 그는 뉴섬을 가리켜 “미국 최악의 주지사”이자 “타락한 거짓말쟁이이자 퇴폐적인 인간”이라고 혹평하면서도 “하긴 그래도 잘생기긴 했다. 패트릭 베이트먼을 닮았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패트릭 베이트먼은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금융인이다. 남성적인 굵은 얼굴선과 광대뼈가 특징이며, Z세대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황당한 논리는 극우 인플루언서들의 입을 통해 더욱 확산됐다. 히틀러를 찬양하고,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발언으로 모든 플랫폼에서 퇴출당했던 닉 푸엔테스(27)는 ‘클라비큘러’의 대담한 발언을 두고 “JD 밴스는 뚱뚱한 서브휴먼이다. 뉴섬은 그를 외모로 완전히 압살한다.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뉴섬에게 100번이라도 투표하겠다”며 거들었다. 그러면서 “관상학은 실재한다. 나는 오직 아름다움과 미학만을 믿는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스니코’ 역시 1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뉴섬은 완벽한 ‘채드’”라고 치켜세우는 동시에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밴스의 아내 우샤를 향해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당사자인 뉴섬 역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농구공을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는 젊은 시절의 사진을 SNS에 게시한 그는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애국자들”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사실 이런 기괴한 현상의 이면에는 ‘룩스맥싱(Looksmaxxing)’이라는 온라인 하부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룩스맥싱’은 외모(Looks)와 최대화(Maximizing)의 합성어로, 조각 같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트렌드를 일컫는다. 이를 위해 식단 조절, 혀 운동(턱선을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운동), 보톡스, 성형수술, 약물 복용 등이 동원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남성 미용 시술 시장은 지난 5년간 약 20~30% 성장했다. 이에 대해 ‘뉴욕포스트’는 “Z세대 남성들이 패트릭 베이트먼처럼 보이기 위해 수천 달러를 쓰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패트릭 베이트먼이 Z세대 청년들 사이에서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아메리칸 사이코’ 스틸컷전문가들은 ‘룩스맥싱’의 뿌리에는 ‘인셀(비자발적 독신자)’ 커뮤니티의 우생학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도 지적한다. 이에 대해 영국의 ‘가디언’은 “못생겨 보이지 않으려는 집단적 강박이 만들어낸 최악의 밑바닥”이라면서 “극단적인 신체 조작이 결국 ‘유럽적 이상형’을 구현하려는 인종차별과 우생학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셜미디어의 ‘관심 경제’ 속에서 성장한 Z세대에게 정치가 진지한 권리 행사가 아닌, 하나의 ‘밈’이자 ‘놀이’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소위 ‘뇌가 밈으로 절여진’ 이들은 선거의 엄중함과 인터넷 게시판의 철없는 농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뉴욕포스트’는 이런 냉소적인 태도가 좌우 당파를 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한 세대 전체가 정치를 경시하는 인플루언서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사기 혐의로 제명된 공화당의 조지 산토스 전 하원의원의 사례를 보면 이런 우려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낙태를 ‘야만적인 행위’라거나 노예제에 비유한 극단적인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좌파 성향의 Z세대 여성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산토스는 “왜 좌파가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게이라서 더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라며 의아해했다. 어쩌면 이 젊은 여성들에게 중요한 건 그의 정책이 아니라, 그가 리얼리티쇼에 적합한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은 정부 기관에까지 스며들었다. 최근 국토안보부(DHS)는 추방과 불법 이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식 계정에 밈을 연달아 게시해 ‘정부 기관이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뉴섬 주지사는 젊은 시절의 사진을 SNS에 게시하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애국자들”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사진=개빈 뉴섬 X반면, 이러한 현상을 무조건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컬럼비아대학의 이오아나 리터랫 교수는 신간 ‘부모님 세대와 다른 정치’를 통해 Z세대의 온라인 정치 표현을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주체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청년들의 표현 방식이 불경하고 감정적이라고 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정치적 지형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정치 표현은 반드시 진지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기준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도 지적했다.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서의 유머와 아이러니 역시 정치적 언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코코넛 나무’ 밈 등을 적극 활용하며 Z세대에 러브콜을 보냈다. 비록 투표율로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청년층이 정치를 소비하는 방식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예일대 사회 및 정책연구소(ISPS)의 ‘예일 청년 여론조사’가 내놓은 최근 조사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젊은층은 보다 진보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18~21세 유권자들은 공화당 후보를 민주당 후보보다 11.7%포인트(p)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2~29세 응답자들은 민주당 후보를 6.4%p 차이로 더 선호했다.
조사를 이끈 잭 도지어 부국장은 이를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해석했다. 학창시절을 통제 불가능한 혼란 속에서 보낸 이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고,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자극적이고 보수적인 목소리에 더 쉽게 동화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미국 Z세대의 정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탐미주의’가 뒤섞인 묘한 지점에 놓이게 됐다. 이에 어쩌면 앞으로는 정책의 실효성보다는 화면 속 정치인의 외모와 매력이 투표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식지 않는 ‘베이트먼 되기’ 열풍
“평범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면 뼈라도 깎겠다.”
최근 미국 Z세대 남성들 사이에 ‘룩스맥싱’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들의 롤모델은 다름 아닌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인 패트릭 베이트먼이다. 완벽하게 조각된 턱선과 날카로운 눈매를 갖기 위해 수천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젊은 남성들의 집착인 셈이다.
루이스 프리덴탈(왼쪽)은 각진 턱선을 자랑하는 조던 바렛처럼 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사진=뉴욕포스트·조던 바렛 인스타그램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제니퍼 레빈 박사는 “2020년 이후 턱선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20대 남성이 이전보다 무려 400%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레빈 박사는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강인한 턱선과 입체적인 얼굴을 원하는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면서 “이들은 얼굴의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무엇보다 뚜렷한 얼굴 윤곽과 각진 느낌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뉴욕대학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하는 루이스 프리덴탈(23)은 이런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워너비는 조각처럼 각진 턱선을 자랑하는 호주 출신의 패션 모델 조던 바렛이다. 프리덴탈은 “얼굴의 모든 부위를 더 날카롭게 만들고 싶다. 남자 모델들과 인기 있는 룩스맥싱 게시물들을 계속 보면서 그런 골격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처음부터 수술대에 오른 건 아니었다. 일단은 수술 없이 외모를 가꾸는 ‘소프트맥싱(Softmaxxing)’부터 시작했다. 턱관절을 교정해 윤곽을 살려준다는 혀 운동인 ‘뮤잉’을 매일같이 하고, 턱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딱딱한 매스틱 검을 씹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자 그는 곧바로 ‘자본’을 투입했다. 눈썹 위치를 낮춰 대칭을 맞추고, 강렬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 보톡스 시술에만 1000달러(약 135만 원)를 지출했다. 그가 원한 것은 이른바 ‘헌터 아이’, 즉 매섭고 날카로우면서 가로로 긴 눈매였다. 프리덴탈은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눈매를 원한다.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추가 시술을 받을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카림 샤미도 ‘베이트먼 되기’를 꿈꾸며 운동과 피부 관리에 집착했다. 사진=카림 샤미 인스타그램결국 프리덴탈은 시술을 넘어 수술을 선택하는 ‘하드맥싱(Hardmaxxing)’ 단계에 진입했다. 그는 레빈 박사를 찾아가 입 안을 절개해 볼살을 제거하는 ‘볼 지방 제거술’을 받았고, 동시에 턱밑 지방 제거와 턱선 보형물 삽입술까지 한꺼번에 진행했다. 이 과정에 들어간 돈만 총 7000달러(약 1000만 원)였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당당하다고 말한 프리덴탈은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다. 내 성격과 내면에는 충분히 만족하지만, 외적인 모습에서 미세한 변화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룩스맥싱’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러 ‘맥싱’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다른 트렌드로는 수백 달러를 디자이너 향수에 쓰는 ‘스멜맥싱(Smellmaxxing)’, 운동에 매진하는 ‘짐맥싱(Gymmaxxing)’ 등이 있다. ‘맥싱’ 트렌드는 자신의 연애 실패를 여성 탓으로 돌리는 ‘인셀’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제는 다양한 유형의 남성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일종의 ‘자기 관리’이자 ‘성공을 위한 투자’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틱톡에서 16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카림 샤미(23)가 대표적인 예다. 시리아 이민자 출신인 그는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과 피부 관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의 SNS 아이디는 ‘시리안 사이코(@syrianpsycho)’로, 역시 패트릭 베이트먼에서 따온 이름이다. 로스쿨 진학을 앞둔 샤미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바로 내 외모였다. 본질적으로는 자기 관리에 해당하며,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외모가 곧 권력이자 경쟁력이 된 시대, Z세대 남성들의 ‘베이트먼 되기’ 열풍은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