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못 죽어’ 묘수 또는 꼼수
▲ 윤석금 회장이 웅진그룹의 모태인 웅진씽크빅을 지키기 위해 사재출연 의사를 밝혔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웅진식품 지분이 없던 두 아들은 각각 5.04%씩 지분이 생겼고 웅진케미칼 지분도 둘 다 5% 가까이까지 치솟았다. 얼핏 보면 이런 움직임은 본인 지분을 아들들에게 넘긴 ‘돌려막기’로 비친다. 그러나 웅진홀딩스 측은 “사재 출연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의 사재 출연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봤다.
지난해 10월 5일 윤석금 회장은 웅진홀딩스의 갑작스러운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해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개인적 재산은 거의 없고 주식이 대부분”이라며 사재 출연 의향을 묻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당시 윤 회장의 재산은 웅진홀딩스를 비롯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계열사 주식이 전부였고 그나마 담보 등이 잡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윤 회장이 최근 갑자기 채권단의 사재 출연 요구에 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 회장이 돌연 태도를 바꾼 까닭은 채권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에 이어 웅진씽크빅 매각 움직임까지 보였고, 그게 싫다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직전까지 웅진홀딩스의 부채규모는 3조 원이 넘는다. 채권단은 코웨이 매각대금 1조 2000억 원에다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을 매각한다 해도 부족하다는 것.
웅진씽크빅은 그룹의 모태이자 윤석금 회장의 자존심 같은 회사다. 웅진씽크빅이 지난해 3분기까지 160억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음에도 윤 회장이 지키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웅진씽크빅마저 매각한다면 윤 회장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웅진홀딩스의 존재도 무의미하다. 법정관리 이후 윤 회장은 웅진씽크빅을 발판으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윤 회장은 사재 출연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윤 회장은 왜 사재 출연을 한다면서 주식을 모두 두 아들에게 매도한 것일까.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아직 사재 출연을 한 게 아니라 준비작업 중”이라고 해명했다. 사재를 출연하려면 채무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하는데 윤 회장이 두 아들에게 주식을 매도한 것은 두 아들에게 지고 있던 채무를 상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웅진은 지난 2010년 자산 1조 원 규모의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했다. 그러나 6000억 원가량이 부실채권이었다.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 주식을 담보로 약 700억 원의 대출을 받아 서울저축은행에 투입, 자본잠식을 막았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주식가치가 하락했고, 윤 회장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권에서는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다.
이에 윤 회장의 두 아들 윤형덕·새봄 씨가 보유하고 있던 코웨이 주식을 매도해 아버지의 채무를 대위변제했다. 이번에 윤 회장과 두 아들의 웅진케미칼·웅진식품 주식 거래는 대위변제 채무 상환이라는 게 웅진홀딩스 측 설명이다.
이제 윤석금 회장에게 남은 것은 한남동 자택과 웅진홀딩스 주식 4455만 5898주(73.92%)가 전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웅진홀딩스 지분이 있기는 하나 법정관리 중인 회사 지분은 법원이 관리하기에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원 판단에 따라 아예 소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윤 회장이 웅진홀딩스 지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엄밀히 말해 앞으로 만약 사재 출연이 있다면 그것은 윤 회장이 아닌 윤 회장 일가가 하는 것으로 봐야 옳다. 윤 회장 재산이 모두 아들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두 아들이 지분을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틴다면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 쪽에서 계속 ‘윤 회장’이 아닌 ‘윤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윤 회장에게 재산이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채권단이 사재 출연을 요구한 데는 윤 회장의 아들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두 아들에게 넘어간 주식도 사재 출연 대상이며 채권단과도 그렇게 약속한 부분”이라며 “만일의 경우를 꺼내면서까지 웅진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아직 사재 출연이 본격화된 것은 아니다. 웅진홀딩스 측 말대로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윤 회장의 일련의 행동이 깔끔한 모습을 띠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