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트’ 국민연금·소액주주 표심 중요…일반주주 입장에선 ‘고주가 vs 고배당’ 갈릴 듯
[일요신문] 고려아연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3월 24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일반 주주들의 선택에 의해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걸려있어 결과에 따라 이사회 주도권, 즉 경영권이 달라질 수 있다.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의 지분율 차이가 박빙이어서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선택을 얻어야 승리가 가능하다.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유리할까.
오는 3월 24일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권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사진=연합뉴스고려아연 이사회는 주당 2만 원의 배당과 함께 최 회장을 포함해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의 후임을 추천했다. 영풍과 MBK 측은 액면분할과 함께 주주제안을 통해 다수의 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아예 이사 수를 늘려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분율은 최윤범 회장 측이 우호지분을 포함해 약 39%(특수관계인 17.1%), 영풍과 MBK가 약 41%다. 최 회장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HMG글로벌(현대차 계열사) 지분(5%)은 최근 법원 1심 판결에서 발행 자체가 무효가 됐다. 하지만 고려아연 측이 항소할 계획이어서 확정 판결은 아니다. 법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결국 국민연금(2025년 10월 공시 기준 지분율 약 4.8%)을 포함한 일반 소액주주 지분 약 15%가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이번 주총에서 영풍·MBK가 이기면 최윤범 회장은 이사회에서 자리를 잃게 된다. 우호지분을 제외한 자체 지분율이 낮아 다시 경영권에 도전하기 쉽지 않다. 영풍·MBK는 직접 보유한 지분이 많아 이번에 설령 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경영권에 도전할 수 있다.
50만 원대를 횡보하던 고려아연 주식은 경영권 분쟁이 발발한 2024년 9월부터 급등해 그해 12월 240만 원에 달했고 올 들어서도 200만 원을 넘기도 했다. 영풍·MBK가 승리하면 주가 상승의 핵심 원동력이었던 경영권 분쟁 재료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최윤범 회장은 이번에 이겨도 영풍을 경계하기 위해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당근’을 계속 내놓아야 한다. 최 회장 본인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주식을 매입할 필요도 크다. 영풍이 승리하면 MBK는 투자회수(엑시트)에 나서야 한다. 이번 분쟁 과정에서 많은 자금을 차입해 아직 6000억 원의 빚이 남아 있다. 이 빚을 갚을 돈은 어떤 형태로든 고려아연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영풍과 MBK가 맺은 주주간 계약을 보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선임권은 MBK가 갖도록 돼있다. MBK가 제한된 기간 안에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주려면 적극적인 현금 마련과 공격적인 배당이 필요하다. 주주들에게 이익일 수 있지만 회사의 재무 안정성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장기적으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MBK가 보유 지분을 파는 방법도 있다. 경영권 변동을 막으려면 영풍이나 고려아연이 이를 사들여야 한다. 고려아연의 배당을 재원으로 영풍이 사들이든지, 고려아연이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어쨌든 고려아연의 대규모 현금 유출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24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일반 주주들의 의견도 최윤범 회장 편에 서서 경영권 분쟁 지속을 통한 주가 상승을 기대할지, 영풍·MBK를 지지해 단기 고배당을 노릴지로 나뉠 수 있다. 이 경우 결국 승부는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갈리게 된다.
고려아연은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 제련소와 전자폐기물 재활용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국방부(DoD) 등이 최대주주인 크루셔블JV가 고려아연 지분 10.59%를 갖게 됐다. 사실상 최윤범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중국에 의존해온 희토류 및 유색금속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다.
여당이 추진 중인 대미투자특별법을 통해 350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희토류 안보는 우리나라에도 중요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국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국의 갈증까지 풀어줄 수 있는 기회다.
미국 프로젝트는 최윤범 회장의 작품이다. 최 회장이 이긴다면 이 프로젝트의 진행은 원활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영풍·MBK가 이긴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고려아연 투자를 위해 조성된 MBK 펀드 내에는 중국 자금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자금 비중은 낮지만 그 존재 자체가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상 ‘우려국 지배기업(FEOC)’ 규정에 저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MBK의 주요 투자자(LP)였지만, 홈플러스 사태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MBK를 통해 홈플러스에 투자한 돈이 큰 손실을 볼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이 문제가 안 되더라도 미국 프로젝트는 MBK의 투자 회수에 부담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프로젝트에는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배당을 크게 늘리기 어려울 수 있다.
현대차와 한화, LG화학 등이 최윤범 회장 편에 계속 서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고려아연의 생산품은 이들 기업에 꼭 필요하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고려하면 이들에게는 최 회장 체제가 유지되는 편이 유리하다는 계산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판 위에 놓인 두 전선…(주)영풍 경영권 분쟁 전말
경영권 분쟁은 고려아연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주)영풍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최윤범 회장의 삼촌인 최창규 회장이 이끄는 KZ정밀(옛 영풍정밀)이다.
KZ정밀은 고려아연 계열사다. 최윤범 회장 측은 KZ정밀이 (주)영풍 지분을 매입하도록 해 이른바 상호주 구조를 만들었다. 고려아연을 지배하는 (주)영풍을, 고려아연의 계열사인 KZ정밀이 지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 결과 (주)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임에도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보유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KZ정밀이 아예 대놓고 (주)영풍을 공격하고 나섰다. KZ정밀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취지에서 (주)영풍의 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내용을 보면 △소극적 설비투자로 제련 사업 경쟁력 상실 △수년에 걸쳐 적자가 누적돼 주주들 실망 △석포제련소 등 환경문제로 제재는 물론 대표이사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7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환경보건시민센터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KZ정밀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주주 대리인 범위 확대(법정대리인 또는 주주 제한 규정 삭제) △현물(고려아연 지분 등) 배당과 분기 배당 도입 △ESG위원회를 이사회 내 위원회로 격상 등을 주주 제안했다.
(주)영풍 대주주 지분율이 55.64%에 달해 KZ정밀의 제안이 주주총회에서 가결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주주총회 과정에서 (주)영풍 경영진의 실책을 부각시킴으로써 고려아연 주주총회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이는 3%룰에 의해 선출되는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명분도 될 만하다. 3%룰은 감사위원회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배제한다. 즉 KZ정밀이 추천하는 감사위원 후보가 선임될 가능성이 낮지 않은 셈이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주)영풍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2017년 12만 원을 넘었던 (주)영풍 주가는 현재 5만 원 초반이다. 2017년 50만 원대이던 고려아연 주가는 경영권 분쟁 이후 급등해 한때 200만 원을 넘었고 지금도 160만 원을 웃돈다. (주)영풍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경영진을 압박해서라도 주식가치를 높이고 싶을 수도 있다.
고려아연 주주총회의 승패가 (주)영풍 경영진에 대한 압박 수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전선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판 위에 놓인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