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나이차 뛰어넘은 최현욱과의 호흡도 호평…“찰떡같았던 후배, 아주 예뻐 죽겠다”

"최민식이란 개인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허문오란 사람에게 납득이 가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없으니까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허문오의 마음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이해해야 했죠. 저 스스로가 허문오에게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 배우로서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이거 엄청 지질한 역인데, 나중에 내 이미지 개떡 되는 거 아냐?' 이런 걱정할 거면 애초에 이 작품을 시작하면 안 됐죠(웃음)."
작가로 실패한 상처와 오랜 열등감을 숨기고 살아온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는 어느 날 유일하게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학생 이강(최현욱 분)을 만나면서 자신이 평생 눌러왔던 욕망과 결핍을 폭발하게 된다. 스승과 제자의 심리전처럼 출발한 이야기는 이내 관음적 서스펜스를 자아내며 서로를 물고 무는 복수극으로 번져 마침내 허문오가 쌓아올린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과거에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로 파국을 맞는다는 점에서 허문오를 보며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떠올리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처음 대본을 보고 연기할 땐 '올드보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완성하고 보니 허문오와 오대수 사이 공통분모가 있더라고요. 우연치 않게 둘 다 세 치 혓바닥 때문에 박살나는 캐릭터죠(웃음). 저는 '맨 끝줄 소년'도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말과 글에 의한 폭력이요. 허문오가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과거 이강이란 어린아이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겼고, 이강은 그 복수로 글을 수단으로 한 폭력을 이용해 허문오를 인수분해시켜버리니까요(웃음)."

그러나 극에서 판을 까는 쪽은 이강이고, 허문오는 그가 던지는 글과 시선에 끌려가며 무너진다. 이처럼 역전된 역학관계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 최현욱을 두고 최민식은 "그냥 예뻐죽겠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이어갔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많이 키워주는 것 같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연기 잘하면 다 예뻐요. 저한테 밥 사고, 술을 사도 예쁘지만(웃음). (최)현욱이는 촬영할 때 보면 어쩜 그렇게 나를 찰떡같이 쳐다보는지 제가 다 놀랄 때가 많더라니까요. '자식, 준비 많이 했구만' 이러고 저 혼자 굉장히 뿌듯하고 흐뭇하고 대견해 하고 그랬죠. 요즘 젊은 세대들 보면 미디어 환경도 달라졌고 소셜 미디어(SNS)도 발달해서 그런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더라고요. 연기할 때도 정말 '와!' 소리 날 정도로 표현에 스스럼이 없어요. 감탄하면서 동시에 저한테도 자극이 많이 됩니다. '자식들, 까불고 있어!' 이러면서(웃음)."
그의 말대로 데뷔 45주년을 맞이한 '대배우'에게도 연기는 여전히 가장 강한 자극으로 남아 있었다. 배우 인생만 45년, 한 개인으로도 60년 넘는 시간을 살아온 최민식에게 이제 웬만한 일은 쉽게 짜릿함을 주지 못한다. 얼굴이 알려진 삶 속에서 가벼운 일탈도 쉽지 않은 그에게 연기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강렬한 아드레날린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 속 허문오처럼 인간의 욕망과 열패감, 지질함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인물은 굳어진 감각을 다시 깨우고 배우로서의 도파민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연기의 쾌감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 작업이었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소년처럼 마음을 들뜨게 하는 연기였지만 그 성취가 곧 남의 기대를 오롯이 짊어지는 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게 최민식의 이야기다. 이미 수많은 작품과 수상 이력을 가진, '한국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외부의 평가에도 선을 그었다. 수상으로써 인정받는 순간의 기쁨은 분명했어도 그보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것은 아직 해보지 못한 작품과 표현해 보지 못한 감정들에 대한 갈증이라고 했다. "더 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고 꼭 좀 (기사에) 써달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린 최민식의 얼굴엔 여전히 다음 인물을 기다리는 배우의 설렘이 담겨 있었다.
"너무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것 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뭘 대표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축구선수였다면 또 모를까(웃음). 물론 상을 주신다고 하면 싫어할 사람이 없고, 인정을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이런 말 하면 '넌 다 받아봤으니까 그렇지 임마!' 하실 텐데(웃음). 저는 그런 것보다 그냥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배우 생활을 했어도 아직도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이 많거든요. 여태까지 살면서 사랑, 애정, 분노, 정의 등 제가 나름대로 겪고 봐왔던 것들을 모두 취합해서 작품으로 다 표현해 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