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A 승격 후 12경기 9홈런, 빅리그 조기 콜업 가능성 대두

서울컨벤션고를 졸업한 조원빈은 2022년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다. 루키리그 첫 시즌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싱글A에서 성장했지만 지난해 정체기를 겪으며 힘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 조원빈은 완전히 달라졌다. 4월에는 다소 부침을 겪었는데 5월 들어 5개의 홈런 포함 27안타 타율 0.325 OPS 1.097을 기록하며 구단이 뽑은 ‘이달의 선수’로 선정됐고, 이후 미국 진출 5년 만에 더블A로 승격됐다.
더블A 두 번째 경기부터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고, 그랜드슬램에 이어 끝내기 홈런까지 터트리는 등 홈런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는 조원빈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 산하 마이너리그 하이 싱글A 팀인 피오리아 치프스에서 활약 중이었던 조원빈은 지난 6월 더블A 승격 소식을 들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날(6월 22일)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됐었다. 훈련을 마치고 비디오 룸에서 월드컵 축구를 시청 중이었는데 감독님이 나를 부르시더라. 그래서 감독실을 찾았더니 코치님들이 모두 그 방에 앉아 계셨다.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감독님이 나를 포옹하시면서 “이제 갈 시간이다. 네가 이 팀을 떠날 시간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팀을 떠난다는 건 더블A로 콜업된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며 시즌 중간에 승급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간혹 그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막상 내가 경험하게 되니까 실감도 안 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항상 이 순간을 떠올리고, 기다리고, 간절히 바랐는데 그게 현실로 펼쳐지니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2022년 세인트루이스 마이너리그 루키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한 조원빈은 첫해 26경기 16안타 1홈런 3타점 타율 0.211 OPS(장타율+출루율) 0.716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2023년 싱글A로 승격돼 105경기 102안타 7홈런 52타점 타율 0.270 OPS 0.765로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2024년 하이 싱글A에서 107경기 85안타 2홈런 28타점 타율 0.227 OPS 0.612로 어려움을 나타내다 2025년에는 싱글A와 하이 싱글A에서 94경기 79안타 7홈런 53타점 타율 0.240 OPS 0.696의 성적을 올렸다. 2026년을 하이 싱글A에서 시작한 조원빈은 56경기 52안타 8홈런 39타점 타율 0.269 OPS 0.882로 더블A로 승격해선 5경기 13안타 9홈런 18타점 타율 0.255 OPS 1.161을 기록 중이다.
“싱글A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올 시즌을 더블A에서 시작하길 바랐지만 스프링캠프 끝날 즈음에 싱글A 팀이 있는 피오리아에서 시즌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실망감이 뒤따랐는데 결과적으로 하이 싱글A에서 강한 타자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꿈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것 아닌가. 나는 그 과정을 마이너리그에서 직접 경험하며 ‘과정’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싱글A와 하이 싱글A에서 2년 반 가까이 머물며 승급의 어려움, 그리고 빅리그의 꿈이 더욱 단단해지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조원빈은 하이 싱글A의 로베르토 에스피노자 감독으로부터 더블A 승격 소식을 전해 듣고 일리노이주 피오리아 지역에서 차로 5시간 30분을 운전해 더블A 팀이 있는 미주리주 스프링필드로 이동했다. 중간에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가는 여정이었다고 한다.
“세인트루이스에 진입해 고속도로를 지나면 빅리그 카디널스 팀 선수들이 뛰고 있는 부시스타디움이 보인다. 플로리다에서 스프링캠프 마치고 (하이 싱글A 팀이 있는) 피오리아로 향할 때도 부시스타디움을 거쳐 가는데 이번에도 그 야구장을 지나치게 된 것이다. 싱글A로 향할 때는 부시스타디움에 대한 감흥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당장 내가 뛸 곳은 하이 싱글A이고, 부시스타디움까지는 너무 많은 단계가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블A 팀으로 향하면서 본 부시스타디움은 이전과 전혀 다른 감흥을 안겼다. 내가 잘하고, 존재감을 보인다면 저 야구장에서 뛰는 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설렘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사실 첫 경기 때는 전혀 긴장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전과 똑같은 마음가짐과 루틴으로 경기를 준비했는데 막상 첫 번째 타석에 들어서니까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그날 안타가 없었지만 뭔가 확신이 들었다.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다음날 경기 때도 타격감이 좋았는데 타격하면 자꾸 빗맞는 파울이 됐다. 생각이 많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단순하게 돌리자고 마음먹었다. 하이 싱글A에 있으면서 승격 하나만 바라보고 버틴 나를 칭찬하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말고 똑같이 하자고 생각했던 순간 거짓말처럼 첫 안타가 홈런으로 나온 것이다.”
조원빈은 그랜드슬램보다 29일 끝내기 홈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날 조원빈은 첫 번째 타석에서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고, 두 번째 타석은 땅볼을 기록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는 삼진까지 당했는데 6-6 팽팽하게 맞선 9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솔로포를 터트린 것이다. 타격 후 홈런임을 직감한 조원빈은 배트는 물론 헬멧까지 집어 던진 후 그라운드를 돌았고, 태극기 헤어밴드를 착용한 조원빈이 홈플레이트에서 팀 동료들의 물 세례를 받으며 환한 미소로 팀 승리를 만끽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끝내기 안타는 쳐봤어도 끝내기 홈런은 처음이었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이 마음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 장면 보시면 정말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할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띄었다. 홈플레이트를 밟고 선수들의 물세례를 받으며 미국에 온 이후 가장 크게 웃은 것 같다.”
조원빈에게 태극기 헤어밴드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조원빈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고, 영어만 사용하다 보니까 가끔은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더라. 한국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걸 느끼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태극기 헤어밴드를 하게 됐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성장한 덕분에 이렇게 미국에서 야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싶었다.”
야구가 안 될 때, 야구로 인해 힘들었을 때 가끔은 ‘만약 내가 한국의 KBO리그에서 뛰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조원빈과 같은 나이에 국내 잔류를 선택했던 선수들 중에는 김도영(KIA), 문동주(한화) 김영웅, 이재현(삼성) 등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야구가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자꾸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만약 한국에 남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안 되는 거라면 한국에서도 안 됐을 것이고, 여기서 잘 되는 거라면 한국에서도 잘 됐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 오려고 계약금 액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당연히 평탄한 길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걸 알고 도전했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엎어지면서 더블A까지 도달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과정’이 아주 소중하다.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을 배우게 했으니까 말이다.”
조원빈은 인터뷰 말미에 “내게 더블A는 야구 인생의 중요한 허들이었다”면서 “더블A까지 도달해야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선수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레벨이 시험대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올라가면 빅리그까지 향할 수 있는 것이고, 반대가 된다면 방출도 각오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올 시즌 초반이 미국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하이 싱글A라고 해도 이 리그에서만 머무는 나를 보는 게 정말 괴로웠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마음 쓰자고 다짐했다. 한 경기, 한 타석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투수의 공 하나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심준석, 장현석, 엄형찬, 미국 직행한 유망주 근황은
얼마 전 부산고의 하현승이 뉴욕 양키스의 300만 달러(약 46억 원) 제안을 거절하고 국내 잔류를 선언하면서 미국으로 직행한 한국인 마이너리거들의 근황이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될 선수들로 그들이 조원빈처럼 KBO리그 대신 미국행을 선택한 현재의 결과가 어떠한지 궁금했던 것.
2023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가장 관심을 모았던 고교 선수는 덕수고 심준석이었다. 심준석은 당시 김서현, 신영우, 윤영철 등을 제치고 전체 1순위가 확실시됐던 유망주였다. 심준석은 국내 잔류 대신 미국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계약금 75만 달러(약 11억 원)에 입단했다. 그러나 심준석은 부상 등으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피츠버그에서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됐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통해 미국에 잔류했다.
심준석은 미국 도전 4년 차 임에도 루키리그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지난 5월 루키리그 개막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고 있어 올해 싱글A로 승격해 시즌을 마친다면 내년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였던 마산용마고의 장현석은 그 해 LA 다저스와 90만 달러(약 14억 원)에 계약해 미국으로 향했다. 루키리그를 거쳐 첫해 바로 싱글A까지 승격했으나 올 시즌에도 싱글A에 머물러 있다. 다행이라면 장현석은 7월 12일(한국시간) 인랜드 엠파이어 식스티식서스(시애틀 매리너스 산하)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2볼넷 8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했다. 미국 진출 후 최고 성적을 올리며 반등에 성공한 터라 올 시즌 장현석이 하이 싱글A로 승격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2023년 루키리그에서 미국 무대 데뷔전을 가진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리그의 포수 엄형찬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첫해는 루키리그에서 이듬해인 2024년에는 시즌 중에 싱글A로 승격됐고, 2025년에 이어 올 시즌에도 싱글A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다.
엄형찬은 미국 진출 후 통역 없이 생활한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남미 출신 선수들과 친분을 맺으며 스페인어도 곧잘 구사한다. 엄형찬도 장현석과 마찬가지로 올 시즌 싱글A에서 승격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조원빈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더블A 승격 후 장현석, 엄형찬과 통화하며 기쁨을 주고 받았다”면서 “내가 경험했던 걸 후배들도 겪고 있는 중이라 무조건 응원하는 마음이고, 누가 먼저 빅리그 무대에 오를지 지켜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한국 팬들의 응원과 관심이다.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이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 앞만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