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금 금고 보관’ 지시 이행하다가 결국…“생명보다 돈 우선” 비판, 유족들 회사 형사 고발 검토
[일요신문] “금고에 돈만 넣고 올게.” 22세 직원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 7월 28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20분 뒤, 쇼핑몰 ‘이온몰 구마모토’에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쇼핑객 약 3000명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지만, 입점업체 직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잡화점 ‘하비타’ 직원 2명은 한 차례 대피한 후 회사의 요청으로 매출금을 금고에 보관하기 위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사고 당일의 상황과 엇갈린 현장 대응을 되짚어봤다.
7월 28일 규모 7.1의 강진 발생 1시간 20분 뒤 ‘이온몰 구마모토’에서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 사진=교도/연합뉴스7월 28일, 이온몰 구마모토에 입점한 잡화점 직원 오타케 구루미 씨(22)는 평소처럼 매장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누구도 쇼핑몰이 거대한 폭발에 휩싸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후 4시 27분, 쇼핑객들로 붐비던 이온몰을 강한 지진이 덮쳤다. 이온 측에 따르면 오후 5시 무렵까지 고객과 직원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주차장으로 대피한 구루미 씨는 쇼핑을 왔던 사촌들과 우연히 마주쳤다. “계산대 돈을 금고에 넣으러 가야 한다”고 하자 사촌들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구루미 씨는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남기고 동료와 함께 다시 건물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 5분 뒤, 이온몰은 거대한 폭발에 휩싸였다.
오후 5시 50분경 이온몰에서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치솟았다. 폭발의 충격으로 외벽이 날아가고 건물 내부의 철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연면적 12만㎡에 달하는 대형 쇼핑몰은 남쪽 구역을 중심으로 크게 파손됐고, 일대는 순식간에 흰 먼지로 뒤덮였다.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오타케 구루미 씨. 사진=FNN 뉴스 캡처폭발 이후 구루미 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 위치는 여전히 근무하던 매장 부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니시니혼신문’에 따르면 “구루미 씨의 가족들은 ‘휴대전화만 건물 안에 남아 있고 무사히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은 채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작업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인 29일 새벽, 구루미 씨는 함께 매장으로 돌아갔던 동료와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의 훼손이 심해 신원은 DNA 감정을 통해 확인됐다. 한 차례 무사히 대피했던 그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족들은 “매출금을 보관하기 위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명확히 밝히고 회사가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고 닷새 뒤인 8월 2일, 구마모토시 장례식장에는 구루미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같은 날, 잡화점 운영사 하비타 경영진은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에게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록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유족에게 사과하고, 사고 경위를 정리한 문서를 전달했다. 구루미 씨의 어머니는 “다시 들어가게 할 게 아니라 그냥 집에 가라고 했어야 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족들은 회사의 형사책임을 묻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닛테레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이온몰 구마모토 폭발이 LP가스 배관 경로 중간 지점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확한 원인은 경찰과 소방이 조사 중이다. 사진=닛테레 뉴스 캡처‘주간여성프라임’에 따르면, 사고 당일 하비타 간부는 직원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매장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점장은 휴무였다. 간부는 점장에게 “가능하면 매출금을 금고에 보관하라”고 지시했고, 점장은 이 내용을 근무 중이던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구루미 씨와 동료 직원 1명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간부는 “이온몰 구마모토의 허가를 받은 뒤 들어가라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매출금을 금고에 보관하도록 요청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하비타 사장 역시 “통탄스럽다. 유족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에서는 “생명보다 돈을 우선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작 매출 때문에 사람 목숨을 위험에 빠뜨렸다” “2차 피해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치명적인 판단이다” “무사히 대피한 직원을 다시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면 인재(人災)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네티즌은 “이온몰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책임을 이온 측으로 돌리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회사의 해명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비타 경영진이 희생자 유족을 찾아 사과했다. 사진=TBS 뉴스 캡처이번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7명은 모두 이온몰 구마모토 입점업체 직원이었다. 이 가운데 2명은 잡화점 하비타, 3명은 온워드홀딩스 계열 의류 매장에서 근무했다. 나머지 2명 역시 입점 매장 직원으로 확인됐지만, 소속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온은 “고객을 먼저 대피시킨 뒤 직원들도 모두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폭발 당시 건물 안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현재까지 회사의 재입장 지시가 확인된 것은 하비타 직원 2명뿐이다. 나머지 희생자들이 어떤 경위로 건물 안에 남게 됐는지는 경찰과 이온이 계속 조사 중이다.
대피 대응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이온은 입장을 내놨다. 회사는 “대피 후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사내 규정상 허용되지 않는다”면서도 “재입장한 직원들의 행동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재난 대응 매뉴얼에는 현장 책임자의 허가 없이는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온은 당시 현장 책임자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대피 과정에서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등을 포함해 대응 전반을 검증할 방침이다.
지진 당시 이온몰에는 3000여 명의 쇼핑객이 머물고 있었지만, 모두 30분 만에 무사히 대피했다. 평소 실시해 온 재난 대피 훈련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진 이후 가스 누출에 따른 화재·폭발은 대표적인 2차 피해로 꼽힌다. 경찰과 소방은 쇼핑몰 내 식당과 공조설비 등에 사용된 LP가스가 폭발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가스 누출 경로와 점화 원인 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폭발 원인뿐 아니라 일부 직원들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 역시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더 안전한 쇼핑몰’ 꿈꿨지만…이온몰 리뉴얼 한 달 만에 참사
2016년 4월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이온몰 구마모토’는 수개월간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영업을 재개한 뒤에도 단계적인 증축과 내진 보강, 시설 개선을 이어왔으며, 올해 6월 23일에는 ‘Fresh Start(새로운 출발)’를 내세운 대규모 리뉴얼을 마무리했다.
이온몰 구마모토는 지난 6월 23일 대규모 리뉴얼을 마무리하며 새 단장을 알렸다. 사진=TBS 뉴스 캡처일본의 지방 도시에서 이온몰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쇼핑 공간이 아니다. 주민들이 장을 보고, 영화를 보고, 주말을 보내는 생활의 중심이다. 2016년 대지진 당시에도 이온몰 내 슈퍼마켓은 피해 주민들을 위해 주먹밥을 개당 10엔(약 90원)에 판매하며 지역사회의 회복을 도왔다. 2024년 TSMC 구마모토 공장 가동 이후에는 연간 방문객이 800만 명을 넘어섰고, 약 200개 점포와 영화관, 5000대 규모의 주차장을 갖춘 지역 대표 복합쇼핑몰로 자리 잡았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사고를 전하며 “이온몰 구마모토가 대지진 이후 지역사회 회복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10년에 걸친 복구와 리뉴얼 끝에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지만, 다시 강진과 폭발을 겪으면서 회복의 상징이던 공간은 또 한 번 참사의 현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