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타인의 감정을 삼킬 때…커리 바커가 완성한 ‘잔혹 연애담’
커리 바커 감독의 영화 '옵세션'은 바로 이 감정의 간극에서 시작되는 공포를 그린다. 자기에게만 순수한 사랑이 상대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자신이 품은 감정이 진심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 역시 당연히 그 감정에 응답해줘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은 하나의 끔찍한 소원을 통해 최악의 결말로 향하게 된다.

그러던 중 니키가 직장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꿈꿔온 작가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어의 조바심은 더 커진다. 친구의 새 출발을 응원하기보다 이제는 정말 고백 한 번 못 해보고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그는 우연히 들른 기념품 가게에서 '원 위시 윌로우'라는 수상쩍은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 여러 개의 나뭇가지가 얽힌 것처럼 생긴 이 물건을 부러뜨리며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뤄진다는 설명을 들은 베어는 결국 "니키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빈다.
니키는 그 즉시 거짓말처럼 달라진다. 갑작스러운 변모에 베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가 하면 잠시라도 그와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할 만큼 베어에게 빠져든다. 오랫동안 상상만 해왔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현실이 됐다는 기쁨에 베어는 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조금 과한 애정 표현처럼 보였던 니키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치닫는다. 베어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폭발하고 자신에게 멀어지려 하면 분노와 협박, 자해까지 서슴지 않는 니키를 보며 베어가 원했던 '세상 누구보다 큰 사랑'은 점점 공포의 형태로 바뀌어간다.

베어 역시 니키의 변모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비교적 초반부터 눈치 채지만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는 니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해 억지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소원을 취소하려고 움직이는 것은 프리키 니키의 광적인 집착이 자신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폭력적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다. 그토록 원했던 사랑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자 뒤늦게 후회하고 도망치려는 베어에게 니키는 "왜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며 절규한다. 베어에게는 목숨마저 위태롭게 느껴지는 극심한 공포지만 니키에게 있어서는 애초 베어가 일방적으로 원했던 '세상 누구보다 큰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베어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영화라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법하다. 베어는 오랜 시간 니키를 좋아했고 그저 그 감정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을 받고자 했을 뿐이다. 니키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위협한 적도 없고 처음부터 악의를 품고 접근한 인물도 아니다. 한 번쯤 짝사랑에 실패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이만큼 좋아하는데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줬으면'이라는 베어의 바람 자체를 악의라고 생각하기는 더 어렵다. 원 위시 윌로우에 빈 소원조차 별똥별을 보며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처럼, 현실이 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가볍게 여겼던 것에 불과했다.

이런 의미에서 프리키 니키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는 단순히 '잘못 빈 소원이 불러온 벌'이라기보다 베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감정의 강요가 상대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 일이 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확대해 되돌려주는 장치에 가깝다. 실제로 바커 감독은 에스콰이어 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베어의 행동을 꼬집어 "누군가에게 자신을 사랑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은 꽤 극단적인 소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원 위시 윌로우가 소원을 악의적으로 뒤틀었기 때문에 저주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베어가 이기적인 소원을 빌어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에서 '열 번이나 찍힌 뒤에야 넘어가는 나무'의 마음을 처음부터 제대로 물어본 나무꾼은 얼마나 됐을까. '옵세션'은 이 낡은 사랑의 문법 속 줄곧 빠져 있던 상대의 시선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온다는 지점이 특히 매력적인 영화다. 최근 연애 담론에서 상대가 원치 않는데도 일방적으로 감정을 쏟아붓는 행위를 비꼬는 '고백 공격'이란 신조어에 공감이 이어지는 것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고백하는 사람에겐 용기와 진심의 표현일지 몰라도 받는 사람에게는 그 순간부터 거절에 대한 부담과 관계의 불편함, 괜한 죄책감까지 함께 떠안아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그간 너무나도 쉽게 간과돼 왔다는 것이다.
귀신이나 악마를 앞세운 전형적인 호러의 자극보다 이처럼 현실에서도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관계의 불균형을 끌어와 훨씬 현실적인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옵세션'은 수작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특히 사랑스러운 니키와 광기에 사로잡힌 프리키 니키를 자유롭게 오가는 인디 네버레티의 연기는 서사의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핵심이다. 마블 스튜디오가 왜 네버레티를 새로운 '엑스맨' 시리즈의 로그 역으로 전격 발탁했는지 납득하고 싶다면, 그전에 반드시 '옵세션'을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108분, 청소년 관람불가. 9월 2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