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본격화 후 21일 첫 법정 대면, 동생은 의혹 전면 부인…모친을 “독사”로 표현한 ‘토킹포인트’ 문건 공개
최근 두 차례 진행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증언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조 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동생이 제기한 고소·고발 등으로 회사와 가족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이제 분쟁을 끝내고 서로의 삶을 살아가자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동생의 처벌을 원한다는 뜻은 분명히 밝혔다.

효성의 '형제의 난'은 2011년 시작됐다. 당시 고 조석래 명예회장의 건강 악화와 경영권 승계 문제가 맞물리던 시기, 차남인 조 전 부사장이 장남인 조 회장이 관여한 계열사들을 상대로 감사를 진행했다. 효성 안팎에선 석연찮은 감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조 전 부사장이 2013년 회사를 떠나고, 2014년 조 회장 등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형제 갈등이 표면화했다. 결국 조 회장은 202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조 회장도 반격했다. 2017년 조 전 부사장을 맞고소했다.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 등과 짜고 자신을 협박했다는 강요미수 혐의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이성열 판사의 심리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 회장은 지난 8월 21일과 28일 두 차례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형제의 난이 본격화한 이후 둘의 첫 법정 대면이 이같이 성사됐다.
조 회장에 대한 두 차례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단 한 번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의 거듭된 고소·고발로 본인의 가족은 물론, 효성 임직원들까지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는 등 고통이 심각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8월 28일 재판에서 "지금도 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동생이 지난 일들을 깊이 반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모친 송광자 씨를 언급하면서 "동생으로부터 '독사'라는 표현까지 들은 뒤 지금도 가슴을 졸이며 지낸다"며 "동생이 부디 더는 가족 간의 분란이나 소송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으면 한다"고 했다.
조 회장은 앞선 8월 21일 재판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고소는 아버지의 뜻이었다"며 "아버지가 '이것밖에는 현문이를 뉘우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며 피 토하는 심정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어 "지난 10여 년 분쟁을 거치며 저의 잘못도 충분히 이해했고 회사의 잘못도 충분히 고쳤으므로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명심해 더 이상 우리를 고소로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재판이 발생하게 된 이유"라고 동생 처벌을 연이어 촉구했다.

두 차례 재판 과정에서는 조 전 부사장 측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토킹포인트 초안' 일부가 공개돼 주목됐다. 이때 조 전 부사장 측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며 검사 측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문건은 동생인 조 전 부사장이 형 조 회장과 모친 송 씨 등을 압박하고자,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와 '공 아무개 변호사' 등의 도움을 거쳐 2013년 만든 문서로 알려졌다. 검찰이 박수환 전 대표의 다른 혐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발견했다. 검찰은 이를 단순 메모가 아닌 '조 회장 압박용 대본'으로 본다.
법정에서 공개된 토킹포인트 문건에는 "이번 미팅의 타깃은 모친을 제압" "모친 입장에서 타격이 크도록 충격적인 메시지 반복" 등 표현 외에도, 모친 송 씨를 "사이비" "독사" 등으로 묘사한 발언도 있었다.
일요신문은 앞서 지난 7월 9일 토킹포인트 문건 일부를 단독 공개한 바 있다(관련기사 "모친 제압" 효성 '형제의 난' 브로커가 만든 '협박 대본' 전문 단독 입수). 조 전 부사장이 부모를 찾아가 말하기로 한 대본 내용 일부를 추가로 공개한다.
1. 회장님, 송광자 씨 오랜만입니다. 특히, 송광자 당신은 2011년 저만 없어져 주면 현준이, 현상이 넷이서 잘 살 것이라고 독한 소리 하면서 저를 내쫓아낸 후 처음 만나니 거의 4년 되었습니다.이어 부모와 형제들을 지칭하며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대본에 담겼다.
2. 오늘 제가 찾아 온 것은 내 앞에 계신 조석래 회장님, 송광자 씨, 현준이, 현상이 네 사람으로 구성된 도둑 사기 범죄집단과 완전히 연을 끊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난 46년간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당신들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오늘까지 버텨 왔지만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7. 조현준 그 도둑 X은 앞으로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도 그동안 저질렀던 모든 범죄 행위 형량의 100분의 1도 다 못 채울 것입니다. 저는 그 XX가 감방에서 서서히 미쳐 죽어가는 모습을 음미하며 똑똑히 지켜 보겠습니다.일요신문은 해당 자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법정 기록도 입수했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공 변호사는 2024년 7월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심리로 열린 조 전 부사장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검찰이 토킹포인트 등 문서를 제시하자, 그는 자신이 작성에 개입했다고 인정했다. 문건에 담긴 각종 사실관계 등 내용들은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제공받았다고도 증언했다.
토킹포인트 문건이 조 회장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 회장은 이후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문건에 담긴 내용이 실제 이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2015년 3월 조 전 부사장이 부친 자택을 방문해 응접실 문을 잠그고 비서들은 못 들어오게 했다"며 "그러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조석래, 송광자로 부르겠다' '독사 같은 어머니 몸속에서 태어나 후회스럽다' '형을 지옥에 떨어뜨려서 지옥 끝까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게 하겠다'는 패륜적 언사를 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토킹포인트 문건을 조 전 부사장 혐의의 핵심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사안의 본질이 단순한 가족 갈등에 그치지 않고, 박 전 대표와 공 변호사 등 제3자가 전략적으로 개입해 실행된 사건으로 혐의의 무게가 남다르다고 바라본다.

효성 형제 갈등은 이번 재판이 끝나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조 회장은 현재 사건 외에도 동생과 각종 상속과 지분 문제 등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데 대한 피로감을 드러냈다.
부친 별세 후 불거진 공익재단 설립과 상속재산 관련 문제가 대표적이다. 조 전 부사장은 2024년 부친 별세 후 자신이 상속받을 재산을 공익재단인 '단빛재단'에 출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조 회장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모친 송 씨 등 공동상속인도 재단 설립에 동의하면서 한때 가족 간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갈등이 더 커졌다. 조 회장은 이번 재판에서 "2024년 조 전 부사장이 공익재단을 만들겠다고 강제적으로 설립에 동의하라고 했다"며 "납득은 안 됐지만 비상장사 지분을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듣고 공익재단 설립에 동의를 해줬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런데 비상장사 지분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고, 동생이 아버님이 남겨주신 상속지분으로도 유류분 소송을 제기해 가족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건 또 싸우자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재산 문제면 재산만 논의하면 되는데 고소만능주의에 빠져 아버님 유류분까지 소송하는 것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밖에 조 전 부사장의 사임 과정에서 불거진 보도자료 배포와 주식 블록딜 문제도 이번 재판의 쟁점 가운데 하나다. 조 회장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 측은 2013년 2월 효성을 찾아 자신의 사임 관련 보도자료를 당시 장 마감 시각인 오후 3시에 맞춰 내달라고 요구했다.
조 회장은 그 이유가 주식 매각과 관련 있다고 의심한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골드만삭스를 통해 보유 주식을 한꺼번에 매각하는 블록딜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임 소식이 장중에 알려지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조 전 부사장이 주식을 파는 데 불리해지는 상황이었다.
이 대목은 조 전 부사장이 왜 퇴사와 주식 정리를 추진했는지를 둘러싼 양측의 시각 차이와 맞닿아 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효성과 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별 과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 회장 측은 조 전 부사장이 자신의 주식을 더 유리한 조건에 팔기 위해 회사와 가족을 압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일련의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토킹포인트' 문건을 놓고는 "박수환 전 대표의 대우조선해양 관련 사건을 수사하다 확보한 증거물"이라며 "명백한 위법증거수집"이라고 주장했다. '부모를 향한 폭언'과 관련해선 "자택을 찾아가 부모님께 폭언이나 협박을 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모두 증인이 '그렇다고 들었다'는 정도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그 외 '지분과 유류분' 및 '블록딜' 등을 놓고는 "효성 내부의 불법 의혹과 가족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결별하기 위한 행위였을 뿐, 이를 이용해 가족을 협박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