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 은닉·밀항·경찰 금품 의혹까지…러시아 마피아 국내 암약 실태 연속 추적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9개월 동안 추적했다.[일요신문] "반성합니다. 더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경남 창원교도소. 한 남성이 수감돼 있다. 이름은 박 안톤(가명). 1983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로, 2014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경남 김해에서 모 식품회사를 운영하다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안톤은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지 않는다. 처벌도 각오했다. 하지만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마피아, 밀항, 총기, 경찰과 뇌물…."
영화나 외국 이야기가 아니다. 안톤 자신이 김해와 부산 등지에서 실제 겪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단순 목격자도 아니었다. 직접 권총을 숨겼고, 마피아의 밀항을 도왔으며, 현직 경찰관에게 수차례 금품까지 전달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는 한 남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모든 일을 지시한 인물. 이른바 '장 회장'(58)이다. 러시아 사할린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얻고 국내에서 식품사업 등을 하는 남성이다. 그러면 도대체 두 사람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둘의 인연은 2018년 시작됐다. 안톤이 김해에서 중앙아시아식 식품회사를 차리고, 장 회장이 자금 일부를 투자하며 동업자 관계가 됐다.
그러던 중 2020년 6월 20일 오후 10시경 발생한 한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해 도심 한복판에서 고려인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인 것이다. 경기 안산 기반 '안산파'와 영·호남 기반 '남부파'의 전쟁, 경찰은 100명 규모 전담수사팀을 꾸려 가담자 64명 가운데 63명을 검거했다.
이날 유일하게 도피에 성공한 인물은 '밀레닌 알렉산드르', 별칭은 '사샤'였다. ‘마피아의 심부름꾼’이던 안톤의 고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난투극 직후인 2020년 6월 21일 새벽 2시쯤,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 회장의 호출이었다. 안톤은 곧장 장 회장이 있는 식품회사로 갔다. 사샤가 그곳에 있었다.
"이 XX 같은 X이 쏘라니까 쏘지도 못하고 말이야."
장 회장은 실탄이 장착된 총기를 들고는 사샤를 비난했다. 남부파의 우두머리가 바로 장 회장이었다.
총기는 곧 안톤 손에 쥐어졌다. 이어 사흘쯤 뒤, 장 회장 지시를 받은 안톤은 사샤 거처에서 또 다른 총기를 챙기며, 한동안 두 자루의 권총을 보관해야 했다. 안톤의 차량과 휴대전화 유심은 사샤 일행에게 넘어갔다.

그 무렵 경찰도 분주히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안톤을 불러 사샤의 행방을 캐물었다. 안톤 명의의 차량과 휴대전화 번호가 도주자들에게 사용된 경위도 추궁했다.
안톤은 입을 굳게 닫았다. 다만 의문투성이였다. 경찰은 자신의 전화번호까지 파악하고도, 왜 그 번호를 쓴 사샤를 추적하지 못했을까.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안톤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부산경찰청 소속 A 경감이었다. 그가 안톤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로부터 이틀쯤 뒤, 안톤은 장 회장의 또 다른 심부름을 맡았다. 회사 회계 담당자에게서 현금 500만 원을 받아 A 경감에게 전달하라는 지시였다.
이에 안톤은 부산에서 A 경감을 만나 돈을 건넸다고 한다. 이후에도 장 회장 지시로 두 차례에 걸쳐 A 경감에게 위스키 등 금품을 줬다고 주장한다.
A 경감은 의혹 대부분을 부인한다. 그러나 안톤과 A 경감의 사적인 관계는 두 사람의 통화 녹취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안톤 : (사샤는 밀항하려고) 요트 타고 갔지. 내가 그 요트에 보트를 실어줬어.김해 집단 난투극 사건에서 유일하게 도주에 성공한 사샤를 밀항시킨 인물이 다름 아닌 안톤이었다. A 경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화다.
A 경감 : 근데 그 요트는 사샤가 가지고 있는 거야?
안톤 :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또 터키(튀르키예)야?"
"파나마."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적혀있는 것 같은데…."
장 회장과 안톤은 늘 바빴다. 두 사람은 해외송금과 인보이스를 놓고 이런 메시지를 수시로 주고받았다. 50만 달러(약 7억 원)가 한 번에 오가기도 했다.
"오늘 보내."
"그래."
장 회장이 송금 여부를 결정하면 안톤이 움직였다. 송금이 막혀 장 회장이 다시 처리하라 지시하면, 안톤은 일단 따랐다.
안톤은 이 일의 실체가 '자금세탁'이었다고 말한다. 정상 무역거래처럼 서류를 꾸며내 해외로 돈을 옮겼다는 것이다.
실제 안톤이 장 회장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여럿이다. 수취인 또는 송금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회사는 'JANSAN LOGISTICS S.A'. 대표적 조세 회피처인 파나마를 주소로 둔 곳이다.
일부 송금은 아예 가로막히기도 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뉴욕지점은 자금세탁방지(AML) 등 미국 금융 규정에 따른 고위험 거래 심사를 거쳐 해당 송금의 처리를 중단했다.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고생했으니 휴가 좀 다녀와."
2022년 초, 장 회장이 안톤을 격려했다. 안톤은 모처럼 한 달의 휴가를 떠났다. 그런데 휴가를 마치고 돌아 와보니 자신의 회사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휴가 직전 지인에게 회사 돈 4000만 원을 빌려준 게 발단이었다. 이 횡령 사건이 그가 지금 창원교도소 수의를 입고 있는 사유다.
안톤도 반격에 나섰다. 2024년 10월, 경남경찰청에 장 회장의 자금세탁과 허위 문서 작성 의혹을 제보했다. 그간 장 회장과 주고받아온 메시지와 송장 등 여러 증거를 통째로 넘겼다.
하지만 수사는 기이하게 흘러갔다. 13개월 남짓 지났을 무렵, 새로 바뀐 수사관으로부터 당혹스러운 연락이 왔다.
"앞서 제출한 증거 자료가 확인되지 않으니 다시 보내 달라."
경찰에 낸 물증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안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같은 자료를 다시 제출한 상태다.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된 A 경감 건도 마찬가지였다. 안톤은 장 회장 지시로 그에게 현금과 위스키 등을 건넸다고 경찰에 제보했다. 경찰 측은 한국어를 못하는 안톤에 대한 조사를 위해 통역관을 배치했다.
그런데 경찰 측이 배치한 통역관은 다름 아닌 장 회장의 다른 사건 통역인이었다. 안톤은 통역관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두 차례 이상 조사를 받은 뒤에야 교체됐다. 결과적으로 부산경찰청은 이 사건을 '증거 불충분'으로 입건하지 않고 종결했다.
안톤이 이처럼 수사기관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싸우고 있던 2024년 12월. 장 회장은 대외적으로 번듯한 사업가 모습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국제질서의 재편과 유라시아를 향한 새로운 도전' 정책포럼 발제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24년 2월 13일 러시아 국영방송 범죄·탐사 전문 프로그램 '체스니 데텍티프'는 극동 지역 어획권을 둘러싼 범죄조직과 해외 자금 은닉 실태를 다뤘다.
방송은 관련 범죄조직의 구성원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여기서 '최상위급' 핵심 인사로 익숙한 남성이 나온다.
장 회장이다. 현재 그는 왜 러시아가 아닌 한국에 있을까.
국내 수사기관도 관련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사정당국의 '국내 러시아 마피아 활동 사항' 문건은 한 예다.
문건에 따르면 2020년 김해 집단 난투극 이후 안산파와 남부파는 오히려 한 팀이 됐다. 그 통합 세력의 '수괴'가 '장 회장'이다.
특히 장 회장은 불법 도박과 고리 사채업에 관여한 사실도 확인됐다. 사샤 역시 장 회장 세력의 주요 인물로 적시됐다. 문건에는 그 외 "러시아 현지 마피아가 한국 진출을 역점적으로 추진했다" 등도 보고돼 있다.
그런데 장 회장이 정점이 아니었다. 러시아 방송과 국내 사정당국은 이들 조직의 전체 우두머리로 동일한 한 남성을 가리킨다.
'올레크 칸'. 러시아 마피아계에서 '킹크랩 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러시아 사법당국은 올레크 칸을 살인교사와 밀수 등 혐의로 기소했다가, 그가 해외로 도피하자 국제수배 대상에 올렸다. 국내 사정당국은 그가 해외 자산을 한국으로 옮기고자 장 회장을 한국 조직의 수괴로 지명했다고 보고 있다.
안톤의 고백이 국내 사정당국 문건, 러시아 현지 탐사보도와 여러 지점에서 겹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사정당국 작성 문건, 통화 녹취와 메시지, 금융자료 등을 하나씩 대조하며 이들의 행적을 연속 보도한다.
총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있는지, 사샤는 어떻게 한국을 밀항으로 빠져나갔는지, 현직 경찰관에게 건너간 수상한 돈의 성격은 무엇인지, 파나마 등지를 오간 수십만 달러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두목' 올레크 칸과 '한국 수괴' 장 회장이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등을 경남 김해와 부산 현지에서 추적했다.
주현웅·김지영·최희주·남경식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