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과 세대 뛰어넘은 케미스트리…“선배님이 연기한 기호에게 큰 위로 받았죠”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리메이크한 '인턴'은 창업 3년 만에 100억대 매출을 달성하며 브랜드 'WOO22'(우투투)를 패션 업계의 다크호스로 성장시킨 젊은 CEO 선우(한소희 분) 앞에 경력 37년 사회생활 만렙의 베테랑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 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미디다. 극 중 한소희가 연기한 선우는 성공한 CEO라는 화려한 모습 이면에 모든 선택과 책임을 홀로 감당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인물이다. 한소희는 그런 선우의 불안과 압박이 자신에게도 익숙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지금 잘하고 있느냐에 대한 불안함이 뒤엉키는 건 배우 한소희로서 매일 하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어요. 선우도 그런 면모를 갖춘 캐릭터라 더 저와 닮아 보였던 것 같고요. 아마 선우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일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그런가, 제가 20대 초반엔 안 했던 생각을 지금의 20대 초반들은 하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자기 주체성이 강하고 자기가 할 일도 구체적으로 해 나가는데, 그럼에도 불안함을 느끼는 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똑같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턴'이 흥미로운 것은 이런 불안을 극복해 이겨내라며 명쾌한 답안지를 내놓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도, 인생도 먼저 살아본 기호가 선우에게 건네는 조언은 회사를 더 잘 운영하는 법이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묘책도 아니다. 그저 바쁜 사람일수록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잊기 쉬운 일상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선우가 사실은 잊고 있었던 거예요. 일을 쫓다 보면 본질적인 것을 까먹을 때가 많잖아요. 잘 먹고, 잘 자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한 번 탁 일깨워주는 순간이 바로 기호가 선우에게 '잠이 보약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신이었던 거죠. 기호가 없었을 때 과연 선우한테 잘 자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을까요? 늘 빨리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 잠부터 자' 이 말을 누가 해줬을까요? 저는 기호가 그 말을 해준 순간 선우의 마음이 열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날 집에 갈 때도 풀어진 기분으로 갔을 거예요(웃음)."
기호가 선우를 대하는 방식은 촬영장에서 최민식이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과도 묘하게 겹쳤다. 자신의 경험을 정답처럼 내세우기보다 먼저 다가와 거리를 좁히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식이었다. 한소희에게 '연기 경력 45년차의 대선배'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편할 리는 없었지만, 여러 차례 대본을 함께 읽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마음의 벽은 빠르게 사라졌다. 선배가 먼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소희가 날 싫어할까봐 걱정됐다"고 너스레를 떤 것을 두고 "절대 그런 것을 걱정하실 분이 아니다"라고 웃으며 받아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반대로 저도 선배님이 절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요(웃음)! 사실 저희는 촬영 전에 대본 리딩을 정말 많이 해서 그 덕에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것 같아요. 선배님은 현장에 오실 때 늘 두 시간씩 일찍 오시는데 제일 먼저 출근하셔서 제일 늦게 퇴근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대선배님도 이렇게 일찍 오시고, 본인 촬영이 아닌데도 다 모니터링을 하시는데 내가 감히 못 따라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제게 연기 조언 같은 말씀은 안 해주셨고요, 자꾸 복싱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오늘 점심·저녁 메뉴 뭐냐?' 이런 것만 물어보시는 것도 제가 다 영상으로 찍어 놨어요. 나중에 공개할 비하인드 영상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웃음)."

"저는 작품 준비할 때마다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타입이에요. 스스로를 미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제 연기 방식을 보면 약간 불안정한 느낌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러다가 요즘 들어 제가 생각을 좀 바꾼 게, 언제까지나 내 성향을 가진 채로 연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나라는 사람과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교집합이 많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이제는 그걸 버리고 안정화된 상태에서 연기 방향을 이끌어 가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여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서 일상을 대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잊고 살았던 선우처럼 한소희 역시 한때는 목표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것까지 감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는 오래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돌보는 일이 먼저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런 마음가짐을 특히 젊은 여성들과 나누고 싶다며, 이른바 '뼈말라'(뼈대만 남은 것처럼 마른 몸매를 가리키는 신조어)를 추구해 온 이들에게는 마른 몸만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쿵 두드릴 정도로 강조하기도 했다.
"요즘도 '뼈말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돼요. 저도 옛날에는 그냥 마르고만 싶었는데 30대 중반에 다가가다 보니 결국 중요한 건 건강이란 걸 느끼고 있거든요. 마른 것만 예쁜 게 아니다, 건강한 게 아름다운 거다! 이렇게 시선을 바꿔야 한다니까요. 제가 급하게 살을 빼다 몇 번 죽을 뻔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는 100년 뒤엔 다 없잖아요. 죽을 때 병원 천장 보면서 죽을 건데, 어떻게 죽느냐도 생각해 봐야 해요. 저는 모두가 건강하게 자기 할당량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