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기업 Smart RF, 버라이즌 소송서 소스코드 확보 시도 무산되자 삼성전자 직접 피고로 세워

캐나다 무선통신 기술 특허 보유업체 Smart RF는 지난 9월 3일 미국 텍사스 동부연방법원에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미국법인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의 4G·5G 기지국 장비에 적용된 신호 보정 기술이 자사가 보유한 미국 특허 5건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통신사에 기지국 장비와 통신망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이번 소송에서는 삼성의 4G 기지국인 eNodeB와 5G 기지국인 gNodeB, 기지국에 들어가는 무선장치 등이 침해 제품으로 지목됐다.
문제가 된 것은 디지털 전치왜곡(DPD) 기술이다. 기지국은 휴대전화까지 전파를 보내기 위해 신호를 강하게 증폭한다. 출력을 높이면 신호가 찌그러지고 잡음이 늘어난다. DPD는 증폭 과정에서 발생할 왜곡을 미리 계산해 신호를 반대 방향으로 보정한 뒤 증폭하는 기술이다. 강한 전파를 보내면서 신호 품질과 전력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 4G·5G 기지국에 쓰인다. Smart RF는 이 과정에서 신호 왜곡을 계산하고 보정하는 방법이 자사 특허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가 Smart RF와 얽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mart RF는 2024년 3월 AT&T·버라이즌·T-Mobile을 각각 제소했다. Smart RF는 세 통신사가 미국 통신망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지국 장비가 자사 특허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버라이즌 망에는 삼성전자가 공급한 기지국도 설치돼 있었다.
Smart RF는 삼성 장비의 침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삼성전자 미국법인에 버라이즌에 공급한 기지국의 소스코드와 기술문서를 요구했다. 소스코드에는 장비가 신호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처리하는지가 담긴다. 제품의 핵심 구현 기술을 확인할 수 있어 기업이 외부 공개를 엄격히 제한하는 민감한 기술자료다.
삼성 측은 해당 자료를 한국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으며 자회사인 미국법인이 이를 가져와 제출할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지난해 8월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손을 들어주며 Smart RF의 강제 제출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버라이즌 특허소송의 피고가 아니라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제3자였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전자 본사가 직접 피고가 되면서 Smart RF는 미국 소송의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절차를 통해 삼성 측에 침해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지식재산권 업계 한 관계자는 “피고가 보유한 소스코드가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자료로 인정되면 증거개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제출 자체를 막기보다 변호사나 전문가 등 열람자를 제한하는 보호명령을 두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동현 마일스톤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소스코드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총체적인 자료에 가깝다”며 “특히 네트워크 장비는 소프트웨어 처리가 많은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공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김 변리사는 Smart RF가 삼성전자를 직접 제소한 배경에도 소스코드 확보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짚었다. 그는 “앞선 소송에서는 실제 장비가 특허 기술을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곳이 장비 판매자인 삼성인데 소스코드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번 소송에서는 증거개시를 통해 그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침해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선 통신 3사 소송은 올해 7월 합의로 종결됐다. 통신 3사는 Smart RF 특허가 무효이거나 자신들이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재판 전 일부 특허에 대해 피고 측이 신청한 무효·비침해 약식재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 측 주장만으로 재판 없이 사건을 끝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후 양측은 배심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합의했다.
앞선 합의만으로 이번 삼성 소송의 향방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통신 3사 소송은 삼성 장비의 실제 구현 방식을 확인할 소스코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났지만 이번에는 장비 제조사인 삼성이 직접 피고가 돼 침해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투게 되기 때문이다. 통신장비 공급계약에서는 제조사가 제3자의 특허 침해에 대한 보증이나 분쟁 발생 시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김동현 변리사는 “오히려 이번 소송이 실질적인 본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 Smart RF는 삼성전자의 직접침해와 유도침해를 함께 주장했다. 유도침해는 제3자의 특허침해를 알면서 그 사용이나 실행을 적극적으로 돕거나 권장한 경우 책임을 묻는 제도다. 삼성의 4G·5G 기지국 장비 자체가 특허 기술을 사용했고, 장비 공급 이후에도 버라이즌의 네트워크 구축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유지보수 등을 지원해 해당 장비가 실제 통신망에서 계속 사용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Smart RF는 고의침해에 따른 증액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네트워크 장비 사업은 수조 원 규모의 공급계약과 연결돼 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2020년 버라이즌과 7조 8983억 원 규모의 무선통신망 공급계약을 맺었다. 특허침해가 인정되면 버라이즌에 공급한 삼성 4G·5G 기지국 장비의 미국 판매액과 사용 기간을 토대로 손해배상과 실시료가 산정될 수 있다. 삼성은 문제가 된 신호처리 방식을 변경하거나 장비 소프트웨어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이 삼성전자에 Smart RF의 특허침해 주장과 향후 대응 계획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