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숨고르기·외국인 이탈에 상단 막혀…실적은 하단 지지, 금리·3분기 반도체 기대치 충족 변수

코스피의 시장 활력이 크게 식었다. 8월 코스피는 종가 기준 6257~6978선에서 움직였다. 9월 1~4일에도 7000선을 뚫지는 못했다. 7월 23일 이후 한 달 넘게 종가 기준 7000선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 정지) 발동 횟수는 7월 15회에서 8월 5회로 줄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수를 밀어 올릴 동력도 약해졌다. 8월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25조 원대로 연중 최저를 기록했다. 50조 원대를 기록한 6월의 절반 수준이다.
코스피가 7000선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SK하이닉스는 171만 8000원(7월 31일 KRX 종가 기준)에서 9월 3일 159만 6000원으로 7.1% 내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26만 2500원에서 25만 원으로 4.7% 하락했다. 김준영 iM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워낙 빠르게 높아진 만큼 시장에서는 실제 이익이 기대만큼 나올 수 있을지 확인하려는 심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반도체 12개월 선행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해 8월 이후 가파르게 높아지다가 7월 초 850조 원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 상승으로 인한 AI 설비 투자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9월 2일(현지시각) 장중 4.821%까지 치솟으며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다운 LS증권 수석연구원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5000억 달러(약 670조 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고 AI 투자가 또 장기국채 금리 상방압력을 키우는 상황”이라며 “시장에서 AI 서비스 수익화와 투자가 이어질 수 있는지 의구심이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하면서 물가와 금리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5.80% 하락한 8월 19일과 3.99% 내린 9월 2일에도 장기 국채금리 급등이 증시를 압박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도 빨라졌다. 원화 강세도 외국인을 돌려세우진 못했다. 외국인은 8월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구간에서도 코스피에서 10조 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은 거시경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올해 초와 달리 개인투자자들도 지수를 밀어 올리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고점에서 쌓인 매물대가 지수 상단을 막고 있어서다. iM증권에 따르면 고점 이후 8월 말까지 개인투자자는 코스피 7500~8000 구간에서 9조 3800억 원, 8000~8500 구간에서 26조 9800억 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6500~7000 구간에선 11조 8000억 원, 7000~7500 구간에서는 6조 82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수가 7500선에 가까워질수록 고점에서 주식을 사들인 개인투자자의 본전 회수성 매물이 출회되면서 상승폭을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도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8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기타법인’은 15조 원가량을 순매수했다. 기타법인 순매수는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 물량으로 추정된다. 두 회사가 오는 11월 중순까지 취득하겠다고 밝힌 자사주는 약 55조 원 규모다. 외국인이 매물을 내놓더라도 이를 받아주는 매수 주체가 생기면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지수 상단 제한 요인과 하단 지지 요인 중 어느 한쪽이 무너지기 전까지 박스권이 유지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연말까지 박스피 가능성
증권가에선 코스피가 11월까지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다운 수석연구원은 “최소한 11월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이어져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봤다. 김준영 연구원은 “2017년에도 반도체 랠리가 쉬어가면서 코스피가 약 3개월간 고점 부근에서 횡보한 적이 있다”며 “연말까지 박스권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의 박스권 흐름을 적정 밸류에이션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밸류에이션 차원에서 보면 지금은 7000~7500선 정도 가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외국인의 매도는 주가 급등으로 한국 증시 비중이 높아진 데 따른 비중 조절 성격이 있어 지수가 크게 하락하지 않는 이상 외국인 자금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돌아오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장기적으로 증시에 머무르는 자금이 늘어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증시의 그릇이 커지고 지수도 상향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염승환 이사는 “박스권 장세에서는 지수 방향보다 종목별 대응이 중요하다. 반도체를 중심에 두면서 실적 전망이 높아지는 조선·방산·전력기기·금융 등으로 투자 대상을 넓히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신규 자금은 한 번에 투입하기보다 분할해 접근하고 레버리지나 신용 투자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