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교수 “노동·자본 기여도 정확히 재기 어려워…성과 배분 비율은 노사 교섭 영역”
얼핏 보기엔 50원씩 나누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이 쟁기 한 개를 팔기까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프로디테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헤파이스토스가 좋은 쟁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회사가 번 돈, 어떻게 나눌까

가장 쉬운 방법은 각자가 들인 노력에 따라 돈을 나누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주문을 많이 받아왔다면 그만큼 더 주고, 헤파이스토스가 쟁기를 많이 만들었다면 더 보상하면 된다.
문제는 현실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정확하게 재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프로디테가 평소 하루 10건씩 주문을 받아오다가 어느 날 3건밖에 따내지 못했다고 해보자. 온종일 돌아다녔지만 운이 나빠 주문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평소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밖에서 영업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헤파이스토스로선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고객들이 아프로디테에게 “쟁기가 자꾸 부러진다”고 항의한다고 해서 헤파이스토스가 제작을 소홀히 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쟁기 제작을 잘 모르는 아프로디테로서는 남편이 얼마나 제대로 일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원칙은 관측할 수 있는 요소에 근거해서 배분 룰을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력이나 기여도에 따라 보상하려면 먼저 그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택시업계의 사납금제가 한 예다. 택시기사들은 오랫동안 월급제를 요구했지만 과거에는 하루 운행을 마치면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내는 사납금제가 일반적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사가 온종일 열심히 운전했는데도 손님이 없었던 것인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쪽의 기여는 쉽게 알 수 있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전 교수는 ‘흑백요리사’의 우승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식당을 여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요리사는 실력이 있지만 돈이 부족해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이 경우 은행이 얼마를 빌려줬는지는 숫자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요리사의 이름값이나 음식 솜씨가 식당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정확한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측정하기 쉬운 쪽의 몫을 먼저 정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요리사는 은행에 원금과 약속된 이자를 지급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성과를 식당을 운영한 본인이 가져가는 식이다.
한편, 양쪽의 기여를 모두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은 스페인 요리 전문점을 만들기 위해 식당 인테리어를 스페인풍으로 꾸미고 현지에서 하몽과 와인 등 식재료까지 직접 들여온다. 다른 한 사람은 주방에서 스페인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인테리어와 식재료가 식당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객관적인 숫자로 나타내기 어렵다. 요리사 솜씨 역시 매출에 얼마만큼 영향을 줬는지 정확하게 재기 힘들다. 양쪽 모두의 기여를 쉽게 측정할 수 없는 셈이다. 전 교수는 이런 경우 “성과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각자의 기여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에 따라 보상하면 된다. 한쪽의 기여만 측정할 수 있다면 그쪽 몫을 먼저 정한 뒤 남은 성과를 다른 쪽이 가져가는 방식도 가능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얼마나 기여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면 함께 만들어낸 최종 성과를 나누는 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배분 원칙이다.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

반도체 설계 부문 노동자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했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 머문 8시간이 실제 기업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근무 시간만으로 알 수 없다. 하루는 근무 시간 내내 잡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다른 하루는 퇴근 이후까지 업무에 관한 생각을 이어갔을 수도 있다.
자본과 경영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공장을 지을지, 어떤 분야에 투자할지, 해외 통상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의 판단은 기업 성과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각각의 결정이 영업이익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정확히 떼어 계산하기는 어렵다.
전 교수는 이처럼 노동과 자본 양쪽의 기여를 모두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는 이미 월급을 받았으니 기업의 성과는 주주의 몫”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가’다.
전 교수는 이번엔 오성과 한음의 감나무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다. 오성의 집에 뿌리를 둔 감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한음의 집까지 뻗었다고 해보자. 누구에게 소유권이 있는지, 담장을 넘어온 가지를 누가 처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두 사람의 선택과 협상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거래로 해결할 수 있다. 감의 소유권이 감을 덜 원하는 사람에게 있더라도, 더 원하는 사람이 돈을 주고 사면 된다. 그런데 만약 한음이 담장을 넘어온 가지 자체를 잘라버리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 열린 감뿐 아니라 앞으로 열릴 감까지 모두 사라진다. 전 교수는 이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에 비유했다. 권리를 어떻게 나눠주느냐가 단순히 현재의 몫뿐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성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전 교수는 삼성전자 노사 관계에서도 이 같은 권리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이 있다. 통상 사용자는 이에 맞서 직장폐쇄를 선택할 수 있지만 반도체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는 것은 회사에도 막대한 부담이다.
결국 이런 현실적인 권리관계를 놓고 노사는 오성과 한음처럼 협상을 통해 성과급 수준을 정해야 한다. 다만 성과를 나누는 비율인 ‘N%’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을 수 없으며, 이는 온전히 ‘노사 교섭’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노동자가 기업의 성과까지 나눠 갖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 과도한 요구라고 보는 시각에도 반박했다. 그는 “세간에서는 노동자가 기업 이익을 나눠달라 하는 것을 ‘빨갱이 짓’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기여를 고정임금만으로 모두 보상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갈등을 풀기 위한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노조를 비난하거나 사용자를 몰아세우는 건 답이 아니다”며 “우리 사회와 정부는 노사 간 교섭의 거래비용이 낮아지도록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과급 수준 자체는 노사가 교섭으로 정하면 된다”며 “제도의 역할은 결과를 정하는 게 아니라 교섭이 원활해지도록 돕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