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유적 대부분 조사 대상 제외, 후속 발굴 계획도 없어…중간보고서 ‘위안부 동원 근거=여자정신근로령’ 오류도

중간보고회 자료에 따르면 선정 작업은 총 3단계로 이뤄졌다. 1단계에서는 전체 6327건 중 1610건이 조사 대상으로 추려졌다. △건축물대장, 지도, 신문 기사 등을 통해 현재까지 남아 있는 현존 대상 △기단 및 초석, 터 등만 남아 있는 부분 현존 대상 △조사를 통해 현존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 △복원 대상 등이 선정 기준이 됐다. 멸실, 명칭 및 주소 불명확 등 대상 불명확, 부대조직명, 기존 지정·등록문화유산 등은 제외됐다.
2단계에서는 1610건 중 158건을 선정했다. △관련 기록(법·제도·사건·문헌 등)을 통해 강제동원 현장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고, 건립연대·용도·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돼 있는 현장(1유형) △강제동원의 역사성과 지역 대표성이 확인되고 건립연대 또는 용도를 일부 확인할 수 있고 일부 변형됐지만, 당시의 공간적 특성과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2유형) △건축물·구조물 등이 현존하거나 일부 복원돼 강제동원과의 연관성은 확인되나 기록 또는 원형이 제한적이어서 추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한 현장(3유형) 등이 분류 기준이다.
3단계에서는 ‘도면, 그림, 문헌(건축 기록 등) 등 수집된 자료가 많고, 일제강제동원 현장을 대표하고, 관리자 또는 소유자가 국가인 경우’라는 요소를 고려했다.
유산청은 “중간보고 결과 지역별 중복 사항을 묶고 대표성 등을 고려해 71건을 잠정 대상지 목록으로 재선정했다”며 “현재 71건에 대해 각 지자체에 추가 자료 및 현장조사 협조를 요청했고, 자료를 받아 최종 목록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체 6327건 중 71건만이 잠정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셈이다.
‘대상 불명확’으로 분류된 3909건은 조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조사 대상 항목인 ‘현존’ 609건 중에서는 42건, ‘조사 필요’ 808건 중에서는 11건이 3단계 문턱을 넘었다. ‘부분 현존’ 189건과 ‘복원’ 4건은 전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유산청이 국내 강제동원 현장에 대한 발굴·보존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미확인 강제동원 현장을 새롭게 발굴하기보다 국가등록유산 등록 가능성이 높은 대상을 추리는 데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 유산청은 국내 강제동원 관련 연구 용역을 한 차례도 수행하지 않아 ‘심각한 직무 유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체계적인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쏟아졌었다.
주요업무계획 취지와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25년 12월 17일 발표된 ‘유산청 주요업무계획’에는 “그간 소외된 분야의 유산과 제작·형성된 지 50년 미만인 ‘우리 시대’ 유산을 적극 발굴하여, 미래 지정·등록 가능성이 높은 유산을 선제적으로 관리한다”고 나와 있다. ‘일제 강제동원 관련’도 중점 분야로 명시돼 있다.
지난 2월 ‘일제 강제동원 관련 현장 목록화 조사’ 연구 용역 입찰 공고에서 유산청은 “우리나라에서 자행한 강제동원과 관련된 현장 실태를 조사하고 연구해 근현대 문화유산 자원을 발굴하고, 국가유산 지정·등록 기초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간보고회 자료 곳곳에서는 오류가 발견됐다. ‘일제강제동원의 정의_동원유형 및 방식’에서는 일본군위안부·노무위안부 동원의 법적 근거가 여자정신근로령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는 여자근로정신대 동원을 위한 법령이었다. 이 법령에 따라 동원된 여성들은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일본군 위안소나 기업·탄광 위안소(노무위안부)에서 성적 착취가 자행된 위안부 문제와는 동원의 목적과 피해 성격이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한국·일본의 우익 역사수정론자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라는 두 집단을 잘못 이해한 자들이 ‘정신대로 동원된 조선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됐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모집(1932~1942)→관 알선(1942~1944)→징용(1944~1945)으로 단계적으로 강화됐다’는 내용도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 연구 등에 따르면 모집·관 알선·징용은 시간순으로 완전히 대체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병행되거나 선택적으로 활용된 동원 경로다. 실제 충청남도에서는 관 알선이 주된 방식이던 1942년 1월 15일 이미 징용이 실시된 사례가 확인된다.
일본 우익 측은 모집이나 관 알선을 통해 일본에 간 조선인들은 자발적으로 취업했다고 주장한다.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직접 나선 징용과 달리 모집·관 알선은 조선인 개인과 기업의 계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취업 조건을 속이거나 관과 경찰의 압박이 있었다. 할당 인원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끌고 간 사례가 확인된다. 동원된 뒤에도 작업장에서 들어가고 나갈 자유가 제한됐고, 실질적으로 강제노동이 이루어졌다.

중간보고회 자료에서 발견된 사실관계 오류에 대해서는 “법적인 근거나 해석은 당초 우리 청 소관사항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최종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한 오해가 없도록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진선미 의원은 “유산청이 당초 국정감사 지적과 자체 계획을 저버린 채 조사와 발굴이 시급한 미확인 강제동원 유적을 조사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했다. 이에 대한 후속계획마저 수립하지 않는다면 보존 과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눈앞의 쉬운 조사만 훑고 끝낼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후속 발굴 조사의 필요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