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서 위헌 언급하며 대법관 재제청 거듭 거부…민주당 탄핵론 띄우지만 역풍 우려 대통령에 해법 바라

더불어민주당에선 “대통령과 권력다툼을 하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이 분출했다. 10월 6일 예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따져 묻겠다고 별렀다. 국회는 그동안 사법부 존중 차원에서 관례상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에 대해선 ‘인사말 후 이석’을 허용해왔다. 하지만 법사위는 민주당 주도로 조 대법원장을 국감 일반증인으로 채택했다. 자리에 남아 의원들 질의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조 대법원장 역시 다짐을 굳힌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9월 28일 재제청 요청 거부와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여러분들이 궁금한 게 많다고 들었다”며 “그런 내용들을 앞으로 국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꼭 필요한 게 있으면 공보관을 통해서 전달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조 대법원장은 2027년 6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은 8개월 후 거취를 생각해야 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진보성향 대법관 임명을 홀로 온몸으로 막아선, 보수진영의 수호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은 10월 2일 일반증인 출석 요청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는 “삼권분립의 취지와 사법권 독립에 반하고, 국감의 권력 분립상 한계를 벗어날 뿐 아니라, 대법원장에게 국회 출석·답변 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한 국회법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사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출근길 언론의 질문에 ‘국감에서 이야기하겠다’고 한 지 불과 나흘만이다. 국민 앞에서 한 약속마저 뒤집으면서 어떻게 사법부의 신뢰를 지키겠다는 것인가”라며 “사법부의 독립은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원칙이지, 대법원장의 책임을 면제하는 특권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석 문제를 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들이 고성과 막말로 점철된 공방을 벌일 때도 조 대법원장은 눈을 감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리를 떠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의 파상 질문이 시작됐다. 조 대법원장은 대부분의 질의에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일부 질의에 대해서는 답변을 했다. 특히 미리 써온 원고를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읽어 내려가기도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 원고를 주변과 상의하지 않고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관련기사 ‘위헌’ 언급만 네 차례…조희대 대법원장 국정감사 발언 전문).
대법관 후보 추천을 두고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와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배경에 대해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 절차, 대통령의 임명 절차에 전혀 관여할 수 없듯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협의를 해온 것은 헌법 근거는 없지만 대법원장이 신속하고 원활한 (대법관) 임명을 위해 자진해 협력해 온 것”이라며 “협의를 안 해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조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독립된 헌법상 권한으로 본다. 국회나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와 민주당은 제청된 후보자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대통령 임명권이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논리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경계를 두고 맞붙고 있는 양상으로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국회 법사위를 향해서는 “국회의 한 부분인 법사위가 대법원장 제청에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명문으로 정한 기관 간의 권한 분배와 사법권 독립에 반한 위헌인 조치”라고 직격했다.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국회 역시 대법원장 제청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해서도 “국회가 대법관추천위원회라는 제도를 신설할 권한은 없지만 당시 대법원장 양해 아래 제정된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은 (추천을) 존중한다’라고만 규정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대법원장도 존중해왔고 저 역시 이번에 추천위를 존중했다. 그렇지만 존중하지 않아도 정치적 문제에 그치고 위헌과 위법은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당시 대법원이 침묵·협조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어느 기관보다 먼저 위헌적이라고 이야기했다”며 “비상계엄에 전혀 협조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조 대법원장은 “계엄사에서 ‘인원을 파견해 달라, 아니면 명단이라도 보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절대 위헌적 행위니까 보내지 말고, 명단도 주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장 업무추진비로 지난 2022년 1월부터 2025년 8월까지 공관 회식용으로 와인 1억 800만 원어치를 샀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아마 법원행정처에서 시정할 걸로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업추비로 고급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은 점도 문제지만, 핵심은 이를 감추기 위해 국회에 공문서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것”이라며 “이를 해명하기 위해 또 거짓말을 했다. 법원 구성원들이 비싼 음식 먹고 싶다고 회식하러 한남동 공관까지 왔다는 게 설득력이 없다. 조 대법원장은 ‘나는 카드 본 적도 없고, 몰랐다. 밑에 직원이 실수했다’ 잘못을 밑에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계 입문설과 관련해 손솔 진보당 의원은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이에 침묵하던 조 대법원장은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그런 말씀은 너무 모욕적이고 서글픈 일”이라고 반박했다.
조 대법원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질타 속에 오전 국감 150여 분간 자리를 지키다, 점심시간으로 국감이 정회된 뒤 국감장을 나설 수 있었다. 오후에 속개된 국감에 조 대법원장은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몸이 편찮아 잠시 가 계신다”며 “지금 감기가 많이 심해지셨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영교 위원장은 “임의로 이석하셨기 때문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저희는 법원에서 출석을 요청하면 언제나 출석하고, 증인 선서를 하고, 답변하고, 이석을 허할 때 이석해 왔다”며 “특별하게 대법원장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라고 질타했다. 이후 조 대법원장은 오후 10시 50분쯤 국감장에 다시 들어와 마무리 발언을 했다.

“국민과 헌법을 무시하는 조 대법원장에게 남은 길은 사퇴와 탄핵의 길뿐(이성윤 최고위원)”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박균택 의원)” 등 직접적인 탄핵도 거론됐다. 황현선 조국혁신당 최고위원은 10월 8일 “민주당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조희대 탄핵의 길에 함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은 신중한 기류다.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의 경우 명백한 위법 행위를 찾기 어려워 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헌재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권한쟁의 심판 청구 역시 마찬가지다. 둘 다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인데, 조희대 대법원장 임기가 2027년 6월까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효성도 떨어진다. 청와대가 재제청 문서를 보내는 안도 거론되지만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조 대법원장이 이를 또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와 대법원 간 힘겨루기만 계속되는 셈이다.
결국 청와대와 사법부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대법관 공석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천대엽 대법관 임기도 2027년 5월까지인데, 그 후임자 인선 역시 난항이 불가피하다. 이는 정부 여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꼬인 매듭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기류가 커지는 배경이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10월 7일 사석에서 “이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하면서부터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감장에서 뭘 믿고 저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겠느냐. 법적으로는 자신감 있다는 것”이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하다. 조 대법원장과 사법부를 몰아붙일수록 역풍이 불 것이다. 민주당 많은 의원들이 이 대통령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