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산 10년 차에도 수주 저조, 긴 리드타임 원인 지적…콜마 “점진적인 실적 개선 기대”

한국콜마가 미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2016년 현지 화장품 제조업체 PTP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펜실베이니아주 스콧 타운십에 제2공장을 준공했다. 색조 중심의 1공장과 달리 2공장은 스킨케어와 선케어까지 생산할 수 있다. 제2공장 가동으로 미국 전체 생산능력은 연 1억 8000만 개에서 3억 개로 늘었지만 올해 6월 말 기준 가동률은 8.8%에 머물렀다.
국내 생산현장은 정반대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최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 공장을 인수하려는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대형 화장품사 한 관계자는 “지금 국내 공장은 어딜 가도 바쁘게 돌아간다”며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도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작은 공장들을 인수할 수 있는지 계속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러 군데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 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국내 OEM·ODM 업체들은 물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 시장에서 K뷰티가 폭발적 호황을 구가하는 상황에서 콜마의 공장 가동률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존 생산업체를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경우에는 검토 기간이 2~3년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ODM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제품이나 시즌에 따라 생산업체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바꿀 수 있지만 미국은 새 제조사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장을 먼저 크게 지어놓더라도 실제 수주가 쌓여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생산에 뛰어든 코스맥스는 올해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코스맥스 미국법인의 공장 가동률은 약 80% 수준으로, 한국콜마가 공시한 6월 말 기준 미국 공장 가동률(8.8%)과 큰 차이를 보인다. 코스맥스 미국법인은 올해 2분기 매출 538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9%가량 증가했고,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코스맥스는 미국 시장의 긴 리드타임을 감안해 일찌감치 현지 고객 확보에 공을 들였다. 2024년 말 캘리포니아에 신규 영업사무소를 열고 확보한 서부 지역 인디 브랜드의 주문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됐고 기존 고객의 주문 증가까지 더해져 올해 흑자전환으로 이어졌다. 한국콜마도 북미 영업·연구개발 조직을 확대하며 신규 고객을 유치해왔지만 기존 최대 고객사의 주문이 줄어든 시점과 제2공장 증설이 맞물리면서 늘어난 생산능력을 채울 만큼 신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콜마가 당초 예상한 미국 사업 정상화 시점은 뒤로 밀린 상태다. 회사는 지난해 미국법인의 영업손익분기점 달성을 목표로 잡았지만 매출이 약 550억 원에 그치며 적자를 이어갔다. 미국 사업 지주사 HK Kolmar Laboratories도 올해 6월 말 자본총계가 약 마이너스(-) 774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한국콜마는 현재 구체적인 흑자전환 시점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미국 사업이 2028년께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긴 리드타임만으로 국내와 미국 공장의 격차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K-뷰티가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내에 형성된 화장품 제조 생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ODM 업체를 중심으로 원료사와 용기·패키지 업체, 인디 브랜드가 밀집해 제품 기획부터 제형 개발, 부자재 조달과 생산까지 빠르게 연결된다.
이문섭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경제학과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K-뷰티의 강점은 공장 하나가 아니라 생태계”라며 “한국에는 ODM, 원료사, 용기 및 패키지 업체, 수백 개의 인디 브랜드가 좁은 지역에 모여 있어 소량 생산과 빠른 신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공장은 이 가운데 생산 하나만 옮겨가는 것이어서 한국에서와 같은 속도와 비용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 구조에도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ODM 업체가 제품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함께 맡는 방식이 발달했다. 반면 미국 화장품 제조시장은 기술개발 업체와 생산업체가 따로 움직이는 OEM 중심의 구조가 상대적으로 일반화돼 있다. 한국처럼 ODM 업체를 중심으로 원료와 부자재 업체, 브랜드가 촘촘하게 연결된 생산환경을 현지 공장 하나로 그대로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K-뷰티 호황이 미국 현지 생산 주문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인기를 얻는 K-뷰티 제품 상당수는 한국에서 생산된 인디 브랜드 제품이다. ‘Made in Korea’ 자체가 경쟁력으로 부각되면서 미국 브랜드가 한국 공장에 직접 생산을 의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금융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콜마는 지난 1일 미국 사업 지주사 HK Kolmar Laboratories의 5000만 달러 규모 차입금에 대한 보증을 1년 연장했다.
ODM업계 다른 관계자는 “한국 공장은 생산능력이 크고 대응 속도가 빨라 글로벌 고객사의 생산 의뢰가 많지만 미국 현지 고객들은 운송비를 줄일 수 있어 현지 생산을 선호하기도 한다”며 “한국콜마는 신규 공장을 지으면서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난 반면 수주는 천천히 쌓이고 있어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ODM 업체들은 선케어의 발림성이나 제형 기술에서도 경쟁력이 있고 한국콜마는 모회사가 금융적으로 뒷받침할 여력도 있는 만큼 현지 고객 물량이 쌓일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조건은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국콜마 관계자는 “신규 고객사 유입이 늘어나고 있고 글로벌 고객사의 색조 브랜드 비중도 확대되고 있어 점진적인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내와 동일한 설비와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지 고객사와 미국 생산을 희망하는 국내 고객사를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고 생산 효율성 제고와 고객사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