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그룹은 스타디움 채우지만 중소형 아티스트는 투어 취소 잇따라…공연 증가·티켓값 상승에 팬들 ‘선택과 집중’ 뚜렷

2025년에는 그룹 CIX가 밀라노, 베를린 등 유럽 5개 도시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선더 피버'(THUNDER FEVER) 투어를 취소했고, 화사의 유럽 투어 '트위츠'(Twits)도 한 차례 연기된 끝에 결국 무산됐다. 두 공연의 주최사인 마이뮤직테이스트는 각각 예기치 못한 사정과 내부 사정을 취소 이유로 공지했으나, 해외 K-팝 팬덤 커뮤니티에서는 티켓 판매 부진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한때 제기됐다. 실제 화사의 공연 취소 소식이 전해진 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마마무여서 화사의 비싼 티켓을 구매했지만 평소 음악을 가볍게 즐기는 친구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하지 않았다"는 팬의 경험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4 한류백서'에 따르면 2024년 유럽 지역에서만 취소되거나 연기된 K-팝 투어는 17건에 달했다. 보고서는 규모와 상관없이 해외 투어에 상당한 기본 비용이 들어가는 가운데 티켓 판매 부진 등 매출 발생 가능성이 약화되면서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올해에도 그룹 빅오션의 유럽 투어가 전면 취소되고 걸그룹 아이들의 북중미 10개 도시 투어 일정이 무산되는 등 해외 공연 취소 사례가 잇따랐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유럽을 찾는 K-팝 아티스트가 늘어나면서 공연의 희소성이 줄어들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여러 그룹의 콘서트를 두루 관람하기보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현지 팬들의 반응도 나온다. 같은 아티스트의 유럽 방문이 잦아지면서 이번 공연을 놓치더라도 다음 투어를 기다릴 수 있다는 인식까지 나타나고 있다. 공연을 반드시 관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줄어들면서 공연당 관객 동원력도 약화되는 셈이다.
해외 공연 시장이 확대되는 동시에 팬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는 점도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을 가속화한다. 생활비 상승으로 문화생활에 쓸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든 데다 티켓 가격까지 오르면서다. 영국 산탄데르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공연 관람을 계획한 성인 2000명 중 71%는 비용 상승 때문에 공연 관람을 재고했다고 답했다. 영국의 공연·음악축제 평균 티켓 가격은 128파운드(약 22만 8000원)로, 2000년 41파운드(약 7만 3000원)보다 약 212% 올랐다.

익명을 원한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커진 탓에 해외 팬들이 투어 취소나 연기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형 기획사 소속 그룹, 또는 현지에서 이미 높은 인기를 가진 아티스트 위주의 공연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국내 인지도가 높지 않더라도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해 공연 경험과 팬덤을 쌓으며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성장 발판마저 좁아지면서 중소 아이돌들이 해외 시장에 자리 잡기가 한층 어려워졌다"며 "개별 아티스트의 공연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가 투어의 성패를 가르는 만큼 이미 탄탄한 팬덤과 자본력을 확보한 대형 아티스트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