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소방관 추모 속 추 지사 나흘 만에 사과…“사과를 바라시니까” 표현에 재논란

발언 사흘 뒤인 16일 경기 부천의 공장 화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 크게 다쳐 이튿날 끝내 순직하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추 지사는 17일 고인의 빈소를 찾아 발언 나흘 만에 공개 사과했으나 사과 과정에서 나온 표현까지 도마에 오르면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추 지사의 발언 이후 소방노조는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소방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방을 ‘빨대’에 빗댄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소방공무원 노조는 “소방은 빨대가 아니라 국민이 기댈 최후의 수호자”라며 반발했다.
경기도는 발언 당일 해명에 나섰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관련 재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대부분 부담하고, 국고지원 비율은 오히려 줄어드는 문제를 강조하려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소방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중요한 필수 업무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런 가운데 16일 오전 8시 38분쯤 경기도 부천시 한 공장에서 불이 났다. 선착대로 현장에 투입된 부천소방서 소속 김진석 소방위는 진화 작업 중 크게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교대를 약 20분 앞두고 있었지만,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길이었다. 김 소방위는 치료를 받던 중 17일 새벽 끝내 숨졌다.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딸을 둔 아버지였다.
추 지사는 16일 화재 현장을 찾았지만,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취재진이 소방노조의 반발에 관해 묻자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답했다. 한국소방공무원노조 김길중 위원장은 MBC 인터뷰에서 “본인의 발언에 사과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지적했다.

김 소방위의 순직 소식이 전해진 17일에는 여야가 애도를 표하면서 소방관 안전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동시에 추 지사의 발언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거듭 사과했고, 국민의힘은 추 지사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다.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관련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위험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분들의 노고와 자부심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주희 원내대변인은 “다가오는 예산안 심사에서 소방 인력과 장비 확충,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챙기겠다”며 “현장 대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안전을 위협하는 부족한 점을 찾아 제도와 예산으로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언론 공지를 통해 당 소속 도지사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소방관과 국민에게 당을 대신해 사과했다. 추 지사에게도 자성 어린 사과를 요청했다며, 당 소속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전날 이용우 대변인의 논평에 이어 원내대변인과 당 대표까지 나서 사과 입장을 냈다.
국민의힘은 소방 예산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함인경 대변인은 17일 논평에서 “소방 예산은 재정의 짐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 예산”이라고 강조하며 “추 지사가 소방관과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안전과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으로 책임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 지사는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또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조적인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 나온 표현상의 실수임을 인정한다. 전체 맥락을 보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호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 표현이 나왔던 것이고, 소방관 폄훼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전날 화재 현장에서 관련 질문을 피한 것과 관련해서는 “어제 화재 현장에서도 사과 발언을 요구하셨지만 이 자리는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묻지 말아달라 한 것”이라며 “사과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소방관 안전 대책과 관련해서는 “무조건적인 헌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또 행정적인 집중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사과의 방식도 문제 삼았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17일 논평에서 “추 지사의 사과는 끝까지 오만했다”며 “사과하러 간 것입니까, 변명하러 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사과 직후 재정 문제와 발언의 진의를 설명한 것을 두고도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자기변명을 앞세웠다고 주장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대로 사과하시라”고 촉구했다.
추 지사는 17일 밤 SNS를 통해 거듭 사과했다. 그는 “결코 소방관 여러분의 헌신을 가볍게 여기려는 뜻은 아니었으나 해당 발언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SNS에서 “등 떠밀려 내놓은 사과”라고 비판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시민의 항의 사례도 나왔다. 18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한 시민은 경기도지사실을 배송지로 지정해 빨대 250개를 주문한 내역을 SNS에 공개했다. 소방 예산을 ‘재정 빨대’에 비유한 발언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물품이 배송되거나 추 지사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17일 저녁 김 소방위의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방명록에는 고인이 지켜준 안전한 일상 속에서 국민들이 그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뜻을 적었다.
김 소방위의 빈소에는 18일에도 동료 소방관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는 추 지사를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경기도청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9시 30분 부천시체육관에서 엄수된다. 고인은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별승진했으며, 영결식 이후 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