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섭섭·분노…당은 지금 ‘압력밥솥’
‘압력밥솥 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새누리당이 청와대를 향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식사 정치를 통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섬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표면적인 모습일 뿐 정작 의견을 수렴하지는 않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쏟아내도 박근혜 방어기지로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섭섭함이 뭉쳐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봐도 박 대통령은 당·청이 아닌 ‘청·당’의 수직적 리더십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들이 ‘반박’ 깃발을 들고 세를 결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새누리당 의원총회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한 정치권 인사는 “박근혜 키즈로 샌님 일색인 초선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당의 허리가 나선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들이라도 움직이면 여당이 건강한 정신과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새누리당 내 초선 의원은 78명, 재선과 3선 이상은 각각 37명씩으로 분포돼 있다.
하지만 재선의 세력 결집은 그들의 회동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부랴부랴 연기됐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 처리 과정에서부터 인사 난맥상 등을 두고 앞으로의 당·청 관계를 고민하고 여당으로서의 역할, 향후 당의 활력 찾기 등을 논의키로 한 것에서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비밀 회동이 공개된 마당에 굳이 반항으로 비치는 회동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언론이 청와대와 야권에만 집중하는 것은 당 지도부가 너무도 친박 일색으로 무력하기 때문”이라며 “(재선들은) 곧 만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곧 쓴소리 재선의 출현을 시사하는 바여서 박 대통령의 나를 따르라 식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운행을 하지 않으니 교통사고도 안 나는 것과 같다”며 “재선들이 사고가 나더라도 운행부터 좀 하자는 뜻을 친한 초선들에게도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물론 현재로선 재선들의 세 결집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런 ‘반박’ 움직임 자체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대통령을 향한 반기의 분위기는 이뿐만 아니다. 복지 분야나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공약 후퇴론’이 여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다소 ‘좌클릭’한 박 대통령의 공약들은 사실 보수진영이 처음 써보는 신약으로 그 부작용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치료비나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후퇴 논란이 나온 것에서부터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이 “경제민주화 대선 공약 실천이 후퇴하면 집단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낸 것도 청와대를 향한 불편한 기색이 드러난 일종의 복선이다. 이 의원은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포퓰리즘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상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야권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견됐더라도 여당 내부에서 공약 후퇴를 직접 들먹이면서 청와대나 정부도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민주통합당은 이에 질세라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 ‘대통령의 말 바꾸기’ 등으로 맹공을 퍼붓고 있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예비주자였던 ‘친이명박계의 대부’ 이재오 의원 발(發) 개헌론을 최근 이 원내대표가 덥석 문 것에 대해서도 당내 반발이 거세다. 박 대통령 우호 세력과 비토 세력 간에 갈등이 다시 촉발될 분위기다.
개헌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집권 내에 꼭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장담했지만 정권 초 개헌론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소속 상임위 간사단과의 만찬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마당이어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개헌론은 개헌의 수혜를 입을 차기 대권 후보군에 여론의 주목도가 커지고, 정부의 국정 운영이 언론의 가시권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초대형 이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서 친박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원내대표가 여야 6인 협의체 합의사항이라며 불쑥 개헌 논의기구 구성 방침을 밝히자 “이제 개헌 논의는 발을 빼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위 당직을 맡은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이 원내대표에 대해 “정치적 도의가 없는 사람”이라며 “5월에 물러나는 이 원내대표가 자신은 방학에 들어가면서 정치권에는 난제로 불리는 개헌 숙제를 던진 것이 아니냐. 오히려 비주류로 밀려난 친이계나 소장파에서 개헌을 빌미로 세력을 규합하고, 이래저래 박 대통령 흔들기에 나설 빌미를 줌으로써 당내 혼란이 더 가중될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한구 원내대표가 개헌에 대한 당내 의견 수렴과 당론 결정 과정 없이 개헌론을 꺼내든 배경에 “원내대표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당내 반발 세력을 만든 그가 더 이상 당직과 국회직 맡기가 어려우니 개헌의 중심축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의 ‘단기 업적 달성’에 대한 집착에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다. 경제 분석에 강한 한 인사는 “지하경제 양성화는 새로운 세원 확보를 위한 차원에서는 좋지만, 지하경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층에서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 수단을 잃게 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며 “나라가 하는 일에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없는 극빈층에서의 소리 없는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목소리를 정부가 알아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가 모두 반대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박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임명하면서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뇌관을 안고 가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윤 장관이 부처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해양과 수산 분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면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지 않고 단기 업적에만 집착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력이 상처를 입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다.
이런 분위기라면 박 대통령이 ‘여의도 아군’을 모두 잃고 사사건건 국회에서 발목 잡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선우완 언론인
재선 세 결집 ‘찻잔 속 태풍’ 그치나 말발 먹힐 ‘스타’가 없다 당초 김성태(위)·김용태 의원이 주축이 돼 재선 모임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친박계의 비협조로 좌초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종현·박은숙 기자 현재 재선급 중 친박계는 부산에 유재중, 이진복, 대구에 조원진, 인천에 박상은, 윤상현, 이학재, 경기권에 고희선, 김태원, 김학용, 노철래, 경북에 김재원, 이한성, 정수성 등 18명 정도다. 하지만 이들 중 두드러지게 쓴소리를 뱉은 의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친박계의 목소리만 대변하면서 계파 간 갈등을 부상시켰거나, ‘박근혜 바라기’만 반복한 의원들도 눈에 띈다. 이번 재선 의원 모임은 김성태, 김용태 의원이 주축이 되고 조해진, 안효대, 권성동, 정문헌, 홍문표, 김희정 의원 등 친이명박계 중심으로 모이려 했지만 친박계의 협조를 얻지 못해 좌초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들 친이계는 이명박 정부와 함께한 18대 국회에서나 제 목소리를 내왔지만 비주류로 밀려난 형편이고, 부산의 김세연, 나성린, 박민식 의원이나 경북의 강석호, 김광림, 이철우 의원 등은 철저히 중립지대에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즉, 계파 간 가교 역할을 할 구심점이 없다. 게다가 이들 재선 중에서 언론이 주목하는 스타급도 없어 이슈 파이팅을 끌어내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3선급에서는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4선급에서는 서병수 당 사무총장 등이 당에 필요한 쓴소리를 하면 언론이 몰려들었지만 재선급에서는 이런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선급으로 뭉친 새로운 계파의 출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특히나 현재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대통령 공약 사항이나 개헌, 정치 쇄신 등을 풀어가기엔 재선급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초선들 사이에서도 “믿고 따를 만한 재선 선배가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치권 인사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풀기에는 문제 자체가 고교 수준의 고난이도”라며 “잘 풀어보겠다고 덥석 물었다가 이래저래 우스운 꼴을 당하기에 딱 좋다는 부정적 여론 때문에 뭉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역대 국회가 그랬듯 이들 세 결집은 공천 정국이 다가오면 흐지부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느긋한 시선도 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복당한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이 해체됐고, 친박계 모임인 선진사회연구포럼 등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선우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