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울리지마” 정치권서 훈수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지난달 16일 야구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 처우 문제 및 개선 방안’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4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이른 아침부터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하나둘 연구소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이 바삐 걸음을 재촉한 건 이날 오전 8시부터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경실모)에서 주최하는 ‘프로야구 선수 처우문제 및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토론회를 주도한 김상민 의원은 “이 자리엔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의원님들이 다수 모였다”며 “국민스포츠로 발전한 프로야구가 어떻게 하면 항구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심도 깊은 토론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말로 토론회의 시작을 알렸다.
토론회의 포문을 연 건 발제자로 나선 박동희 MBC SPORTS+ 해설위원이었다. 박 위원은 “한국 프로야구가 지난해 700만 관중시대를 열며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자 국민적 여가생활로 발전했지만, 실상을 들춰보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특히나 선수들의 복지 및 권리와 관해선 경제민주화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경제 상식도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그 예로 A 구단의 일방적 계약 관행을 꼽았다. 박 위원에 따르면 이 구단은 선수들과의 연봉계약 시 협상은 하지 않고, 구단 측 입장만을 일방 통보한다. 만약 선수들이 최초 구단 제시액을 수용하지 않으면 구단 프런트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까지 나서 “스프링캠프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로 A 구단은 선수들과의 첫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 측 제시액을 밝히고서 이를 끝까지 관철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올 시즌 역시 일부 선수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모든 선수를 상대로 최초 구단 제시액을 2013년 연봉으로 최종 관철시켰다.
하지만, 부작용도 커 A 구단의 선수들은 연봉협상이 끝날 때마다 “이게 무슨 연봉협상이냐, 연봉통보지. FA(자유계약선수) 자격만 갖춰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팀을 떠날 것”이라며 분개했다. 특히나 모 선수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 유니폼에 새겨진 구단 로고를 양팔로 가리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심지어는 다른 구단조차 A 구단의 연봉통보 방식에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수도권 모 구단 관계자는 “A 구단의 통보식 연봉협상은 대기업을 모그룹으로 둔 프로야구단이라곤 도저히 믿기 어려운 구멍가게식 작태”라며 “그런 식으로 선수들을 대하니까 스타선수들이 기회만 되면 팀을 떠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선수협 김선웅 사무국장은 현직 변호사답게 KBO와 구단들이 “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그 사례를 조목조목 들었다.
김 국장은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인제도를 시행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음에도 정작 KBO와 구단들은 야구규약에 ‘대리인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내용만을 명기한 채 ‘언제부터 시작하겠다’는 날짜를 못 박지 않고 11년째 제도시행을 미루고 있다”며 “이는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3호를 위반한 불공정 행위”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김 변호사는 “KBO 인사들로만 구성된 연봉조정위원회 역시 공정거래를 위반한 부당행위”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발제자로 마이크를 잡은 최익성 저니맨야구사관학교 대표는 “현역시절 7번이나 트레이드됐지만, 구단 측으로부터 사전에 귀띔을 받거나 양해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구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나도 모르는 내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최 대표는 “구단 말을 듣지 않으면 선수생명이 끝나는 지금의 프로야구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발제자들의 발표가 끝나고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구단의 일방적 연봉통보와 선수들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는 제도와 관행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가 끝나고 김상민 의원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권실태를 파악하고서 깜짝 놀랐다”며 “구단에 일방적으로 힘이 쏠리면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프로야구는 그들만의 스포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의원과 함께 토론회를 주도한 이재영 의원 역시 “한국 프로야구가 미 메이저리그처럼 거대 리그로 발전해 국민의 진정한 여가생활이 되려면 리그 구성원들 스스로 상식과 규칙을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야구계의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는 건 일부 구단에 불이익을 주는 걸 떠나 전체 야구생태계 발전을 위해 시급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
경실모는 정치권 ‘파워집단’ “불공정·비상식 바꿔나갈 것” 새누리당 원내외 인사 48명이 모여 지난해 6월 출범한 경실모는 남경필 의원과 이혜훈 최고위원 등 중량감 넘치는 정치인이 많아 정치권에서도 ‘파워집단’으로 불리고 있다. 화요일마다 토론회를 여는 경실모는 그간 기업인의 경제 범죄 형벌 강화, 일감 몰아주기 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경제 민주화 문제를 다뤄왔고, 각종 법안 통과에 애써왔다. 경실모 토론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프로야구는 원체 국민적 관심이 큰 스포츠이기에 필요하다면 선진국처럼 정치권이 개입해 불공정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조만간 KBO, 구단 관계자도 만나 그분들의 말을 자세히 듣고, 가능한 대화와 중재로 프로스포츠계의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관행과 제도들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모 의원 보좌관은 “경실모가 칼을 빼든 이상 어떤 의미에서든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악명 높은 모 구단은 자신들 스스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