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은 흘리는데 ‘입질’은 아직…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현재 국내엔 17개의 카지노 사업장이 있다. 이 중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강원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 전용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2006년 신규 카지노 허가에 대한 특혜 시비와 시장 독점을 차단하기 위해 설립한 GKL도 외국인 전용이다.
GKL은 서울 강남(2006년 1월)과 밀레니엄 힐튼(2006년 5월), 부산 롯데호텔(2006년 6월) 세 곳에 카지노 사업장 ‘세븐럭’을 잇달아 오픈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개장 첫 해 1400억 원가량의 매출액(당기순이익 35억 원)을 올리며 다크호스로 떠오른 데 이어 2007년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전체 매출액의 46.5%에 해당하는 3250억 원(당기순이익 411억 원)을 기록하며 단숨에 업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매출액 3900억 원, 당기순이익 600억 원을 올려 선두 자리를 굳건히 했다.입장객 점유율도 2007년 51.5%, 2008년 68.7%로 독보적이다.그러나 지난해 GKL은 시련의 계절을 보내기도 했다.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여러 차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박정삼 전 사장을 비롯해 몇몇 임직원들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것이다.
지난해 8월엔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권오남 사장에 대한 ‘낙하산 논란’으로 회사 안팎이 시끄럽기도 했다.어수선하던 GKL 내부 분위기는 지난해 10월 민영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3단계’ 방침에 따라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GKL을 상장하고 49%의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GKL 측은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낙하산 시비로 곤욕을 치르던 권 사장조차도 기자간담회에서 “민영화는 효율성과 이익이 현저히 떨어질 때 고려하는 것”이라며 “현재 GKL은 3년간 효율성과 이익, 투명성 등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 민영화를 논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엔 한국관광공사 지분의 추가 매각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당초 49%만 매각하고 2010년 이후에 추가 매각을 검토한다는 계획을 수정, 이르면 내년 초 거의 전량을 민간 사업자에 넘긴다는 얘기가 퍼져가고 있는 것.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카지노 사업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 계속돼왔다.
매각 시기는 빠르면 좋지 않겠느냐”며 이를 뒷받침했다.GKL은 자체적으로 올해 초 TF팀을 구성하는 등 지분 매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GKL 직원들이 우리사주 형식으로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도 했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와 GKL 등에 따르면 4월 중으로 기업공개를 주관할 증권사를 선정하고 10월 이전에 상장과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GKL의 민영화 과정 밑그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가장 먼저 주요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경기침체로 인해 굵직굵직한 상장이 잇달아 취소되는 가운데 모처럼 나온 대형 거래이기 때문.
지난해 가장 규모가 컸던 기업공개는 대우증권이 주관한 LG이노텍으로 1377억 원가량이었는데 상장 프리미엄과 시가총액 등을 감안한 GKL의 공모규모는 3000억 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증권사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유진투자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업계 상위권의 증권사가 모두 참여한 것으로 안다. 어디가 선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례없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상황이다”고 귀띔했다.증권사들의 ‘유치경쟁’이 끝나면 이제 GKL을 손에 넣으려는 ‘본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시기가 이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GKL 지분 인수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카지노 업계와 재계 일각에서 몇몇 후보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처음 듣는 얘기”라며 손사래치고 있다.
현재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기존 카지노 업체들이다. 특히 국내 카지노의 원조 격인 파라다이스그룹은 이미 스타트를 끊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초 지분 매입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에 카지노 ‘베가스’를 운영 중인 미국계 길만그룹을 포함해 외국계 카지노 업체들도 GKL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슬롯머신업계 대부로 통했던 정덕진 씨의 동생 정덕일 벨루가호텔 회장 역시 세븐럭 부산 롯데점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대기업들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롯데그룹과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이끄는 효성그룹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양사는 특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도 있다.
이밖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한화그룹과 이상득 의원 및 측근인 김주성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전에 몸담았던 코오롱그룹도 후보군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일각에서는 GKL의 지분 매각과 관련해 ‘예상외로 흥행이 저조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지난해 받았던 검찰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자칫 ‘덤터기’를 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GKL이 혐의를 벗은 비자금 조성과 납품업체 선정 과정 비리는 의혹의 일부분이었다. 수사는 종결이 아니라 잠시 접어둔 것”이라고 전했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대기업들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도 더더욱 카지노 사업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앞서 GKL 지분 인수 후보로 언급한 한 대기업의 임원은 “새로운 캐시카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카지노 사업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관건이다. 쉽게 참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