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커지고 파워는 영~
▲ 우리나라 행정부의 최고 부처로 꼽히는 기획재정부. 하지만 조직개편을 거치면서 그 파워가 예전같지 못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 ||
기획재정부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우리나라 행정부 최고 부처다. 행정고시 합격자 중 1∼10위 중 9명이 온다는 부처(나머지 한 명은 기획재정부 경쟁을 피하려 다른 부처로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7급 공무원들도 공무원시험, ‘공시’ 최상위 합격자들만이 모인다는 곳이 바로 기획재정부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과거만 못해진 부처 파워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아쉬워하는 것은 부총리제의 폐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본인이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며 경제부총리제를 없앴다.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 재정경제부가 모든 경제정책을 총괄, 각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모피아’(재정경제부의 머리글자 MOFE와 마피아의 합성어)라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강만수 장관 재임 시절 각종 경제정책이 ‘갈지자’를 그리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데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강 장관이 추진하던 고환율정책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환율폭등을 불러오면서 국민들의 믿음마저 잃어 힘을 발휘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힘을 잃어버렸는지 관가와 업계에서 회자되는 사례 하나가 자동차세금 감면을 둘러싼 논란이다. 지난 3월 정부는 2000년 1월 1일 이전에 등록된 노후차량을 처분하고 신차를 구입할 때 개별소비세와 취득세, 등록세를 각각 70% 감면한다는 내용을 내놓았다. 하지만 노후차 보유시점과 시행시기를 제대로 정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다. 4월에 이를 명확히 해서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자동차업계 노사관계에 따라 조기종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대조건으로 달면서 혼란은 계속됐다.
당시 관가와 업계에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자동차시장 활성화 논리에 기획재정부가 휘둘리면서 혼선이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라면 이런 일이 있으면 기획재정부에서 세금 감면시 줄어들 세입과 이로 인한 정부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이유로 제지하거나, 실제 추진하더라도 엄격한 기준을 내놓았을 것”이라며 “지금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대명제에 밀린 데다 각 부처가 내놓은 정책을 통제하던 컨트롤타워 기능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서 ‘경제’라는 말이 빠진 것도 힘이 빠진 또 하나의 사례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질 당시 기획재정부로 이름이 정해졌지만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직원은 “기획재정부를 영어로 하면 ‘Ministry of Strategy& Finance’인데 외국 사람들은 스트래티지(Strategy·주로 군사적인 ‘전략’이라는 의미로 쓰임) 때문에 국방부의 한 부처로 여기는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파이낸스(Finance)가 빠지지 않은 것도 전임 강 장관이 강력하게 주장한 덕이었다”면서 “경제를 총괄하는 부처의 이름에서 경제라는 말이 빠져버렸으니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산업자원부가 지식경제부로 바뀌면서 오히려 그쪽에 힘이 쏠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자원부 시절 업계 입장만 내세운다며 재정경제부 관리들로부터 경원시됐던 지식경제부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일부를 합치면서 막강한 부서가 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동력 개발을 경제목표로 삼고 국가 연구개발비(R&D)를 노무현 정부 때보다 1.5배 늘리기로 하면서 힘이 더욱 쏠렸다. 기획재정부의 산하단체가 조폐공사 하나인 데 반해 지식경제부는 산하단체가 너무 많아서 “지식경제부조차 몇 개인지 모른다”는 말이 관가에 회자될 정도다.
게다가 기획재정부 내 최고 브레인이 모인다는 금융정책국이 금융위원회로 넘어가면서 기획재정부의 대외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금융정책을 금융위원회에 맡긴다며 기획재정부 내 금융정책국을 금융위원회로 통합시켰다. 대신 국제금융과 환율정책은 기획재정부가 맡았다. 이로 인해 과거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던 국내 금융기관들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졌다. 그동안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봤던 금융기관들로서는 금융위원회가 더 중요한 곳이 된 셈이다.
아직 금융위원회가 기획재정부로부터 각종 정책에 대한 언질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장 힘이 있었던 부서 자체를 떼어준 기획재정부로선 상처가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금융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몰 정도로 국내외 금융시장 경계가 사라진 상황에서 지금처럼 분산된 권한으로는 대응하는 것조차 벅차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국대과제’ 역시 기획재정부의 한탄 대상이다. 행정안전부는 조직 슬림화를 위한 대국대과제에 맞춰 26국 104과인 기획재정부의 국과에서 1개국 20개과 축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경제 살리기 주무부처라는 점과 기획예산처 흡수시 상당한 조직 슬림화를 이뤘다는 점, 직원들의 업무과중 등을 들어 한 자릿수 이상 축소는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그 의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