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 해야 ‘알짜배기’ 야금야금
L 씨(37)는 증권회사에 근무할 때 나름대로 아주 잘나가는 사원이었다. 연봉도 억대였으니 회사에서는 물론 주변과 고객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만에 도취돼 자신의 판단 잘못을 간과하고 말았다. 결국에는 고객의 예탁금 손실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고 만다. 그는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고 고객에게 소송을 당해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은 월급이지만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이다. 중소기업에 재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적은 월급에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L 씨는 선물옵션에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월급을 타면 바로 그 돈으로 선물옵션에 투자를 했다. 처음 일주일 만에 투자액의 열 배까지 늘린 그는 실력이 줄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그는 다시 주변에서 차용한 자금까지 거의 다 날리고 말았다. 옵션에 투자를 해서 열 배까지 자금을 늘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는 목표수익률을 달성하면 자제를 하고 원금과 일정 이익금을 확보한 뒤 나머지 자금으로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원칙을 어겼다.
모든 자금을 한꺼번에 투자했다가 순식간에 원금까지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됐다. 한마디로 도박처럼 투자를 한 것이다. 도박을 하다 보면 딴 돈까지 전부를 걸어서 그대로 탕진하게 된다. 그래서 도박으론 돈을 벌 수 없는 것이다. 설사 판이 끝날 때까지 돈을 벌었더라도 다시 도박자금으로 들어가거나 유흥으로 탕진하게 된다. 땀 흘려 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L 씨는 주식시장을 도박장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L 씨에게도 기회가 왔다.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주식운용을 해보라고 권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L 씨의 과거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품성을 믿고 작은 금액으로 운용을 해보고 성과를 봐서 더 큰 자금의 운용을 맡겨보려고 했다. 아마도 L 씨는 최대의 반전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보여주어서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L 씨는 스스로가 그런 기회를 차버리고 있다. 회사에서 규정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투자를 하다가 작은 금액이지만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다. 한방을 노리고 위험성이 큰 선물옵션에 목을 매니 손실이 나는 것은 빤한 이치다. 지금 L 씨는 자신이 잡을 수 있는 재기의 기회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회사에서 방법이나 방향을 제시해도 허황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L 씨의 재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H 씨(45)는 개인투자자로서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10년여 전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H 씨는 취업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과연 직장생활로 본인이 원하는 행복한 삶의 질이나 경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3년만 직장생활을 하고 이 기간 동안에 자신이 평생, 그리고 행복하게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오면서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직했다.
그가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자금으로 시작했던 것은 당시에 벤처붐을 타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비상장주식 투자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 등으로 종자돈을 마련한 H 씨는 비상장주식을 전문으로 투자하고 중개하는 업체와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H 씨는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비상장주식 거래 방법과 기업 분석 노하우, 그리고 나머지 필요한 사항들을 어깨 너머로, 때로는 업계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6개월여, H 씨에게도 기회가 왔다. 투자회사에서 투자하면서 추천하는 비상장사의 주식을 매입했다. 상장을 준비하던 회사였는데 몇 개월 뒤 상장에 성공, 주가는 열 배 이상으로 뛰었다. 한마디로 대박이 난 것이다. H 씨는 그렇다고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즉시 자신이 가진 자산을 분산시켰다. 집도 다시 장만하고 예금 현금 주식 채권 등 그동안에 본인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서 적정하게 리모델링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오던 비상장주식에 대한 투자도 계속하는 한편, 상장주식에도 눈을 돌려서 투자의 기회를 더 넓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자산은 계속 늘어났다. 물론 그의 투자가 이익만 낸 것은 아니다. 때로는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판단의 실수도 있지만 남들이 해주는 각종 정보나 설명에 혹해서 투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H 씨가 남들과 다른 점은 그 실패를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꼼꼼히 분석했다. 최종적인 판단은 본인의 책임이지만 어떤 점에서 판단에 미스가 있었는지, 어떤 유형의 정보나 기업에서 실패를 했는지를 정말 세밀하고 샅샅이 확인했다. 그 결과는 노트에 기록해서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수험생의 ‘오답노트’와 같은 방법인 셈이다. 필자가 파악해본 결과 그는 현재 100억 원대의 자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장생활 3년의 저축과 퇴직금을 합하면 1억 원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렇다면 10년 동안 100배로 불린 것이다. 그런 H 씨의 투자원칙은 간단했다.
‘모르는 것은 하지 않는다. 알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직접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이론과 현실적 노하우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실제로 H 씨의 손에서 책이 떠나는 걸 거의 볼 수 없다. 항상 관련 서적을 옆에 두고 있다. 당연히 뉴스도 세세하게 꿰고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내는 것도 수준급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인적네트워크와 정보를 얻기 위한 세미나나 모임에도 참석한다. H 씨는 ‘1인 기업’이다. 처음에는 세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안 내도 되는 세금을 내기도 했고 정말 무지해서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세금이나 법적인 문제도 슬기롭게 대처를 하고 있다. 바닥에서부터 스스로를 만들어온 H 씨가 재테크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한다.
한치호 ㈜한원인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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