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을 때 들어와 내 속옷을…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마포구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여·26)는 집주인만 생각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김 씨는 “승무원의 특성상 스케줄이 들쭉날쭉하다. 그날도 야간비행을 마치고 오후 4시까지 잠이 들어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집주인 아저씨였는데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와 앉더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김 씨는 “비행 직후였기에 방엔 미처 짐정리가 안 돼 속옷도 널브러진 상태였다. 집주인은 ‘월세가 하루 밀려서 받으러 왔다’며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더니 자기 딸 같아서 하는 소리니 청소 잘하고 뜬금없이 남자 끌어들이지 말라는 말도 했다. 너무 놀라 부모님께 연락했고 다행히 그 뒤로는 집주인이 찾아오는 일은 없으나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대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던 유 아무개 씨(여·30)도 집주인의 계속된 이상 행동에 결국 방을 옮겨야만 했다. 유 씨는 “직장이 가깝고 대학 인근이 월세가 저렴해 방을 얻었다. 학생들은 집을 비우는 시간이 일정치 않으니 유일하게 직장인이었던 내가 집주인의 표적이 됐던 것 같다. 이사를 하고 두 달이 지났을까. 그 때부터 집에 돌아오면 아침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껴졌다. 그래도 ‘설마’하는 생각에 그냥 지내고 있었는데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출근 때와 다른 위치에 있는 물건들, 사용 흔적이 남아 있는 화장실 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유 씨는 작정을 하고 평일에 월차를 내고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고 바깥을 주시하다 깜박 잠이 든 유 씨. 갑자기 현관문 밖에서 열쇠뭉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유 씨는 “순간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더니 집주인이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용해서 이불을 걷어봤더니 내 속옷이 들어있는 옷장을 열고 있더라. 당장 경찰에 신고한다고 소동을 피웠더니 줄행랑을 쳤다. 처벌을 받게 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해코지라도 할까봐 보증금만 환불 받고 곧바로 이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주인의 침입 여부를 확인해도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는 최 아무개 씨(여·25)는 “집을 비우는 날이면 매번 화장실 바닥이 흥건히 젖어있어 찝찝했다. 참다못해 누군가 문을 열면 티가 나도록 현관문에 종잇조각을 끼워뒀는데 역시나 퇴근 후 확인하니 없어졌더라”며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집주인밖에 없었으니 심증은 명확했다. 하지만 당장 침입 여부를 확인해도 집을 옮길 수도 없고 나중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걱정돼 보조키를 하나 더 사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학가에서는 선배들이 손수 후배들을 위해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해 피해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집주인이 함부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온다거나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곳, 음담패설을 일삼는 곳 등을 정리해 신입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매번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법무법인 열린의 정충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세입자 동의 없이 마스터키 등을 이용해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엄연한 주거침입에 해당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처벌의 강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방을 내놓았을 경우 등은 그다지 처벌 강도가 높지는 않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주거침입을 일삼고 여성이 혼자 사는 방에 의도적으로 들어간다면 처벌 수위가 강해진다. 이럴 경우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법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