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주도 또는 개입에 따라 전례 없는 ‘여당 분열’의 산물로 등장한 국민참여통합신당이 9월20일 제3 원내교섭단체로 출범했지만 KBS와 MBC, <조선일보> 및 <한겨레> 등 각종 언론매체의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에 비해서도 정당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등 전도가 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롯된 일이다. 이미 호남권을 포함한 전통적 지지세력의 분열과 청와대 참모진·내각의 잇따른 실책, 독선적 국정운영 스타일 등으로 인해 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30~40%대의 전례없는 난조를 보인 데 이어 이제는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인(人)의 장막’ ‘오기 정치’에 대한 비판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권 내에서조차 국정·정국 운영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내년 총선에서 참패해 집권 2년차 초반에 ‘레임 덕’을 맞는 전례 없는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확산일로에 있는 ‘노무현 위기설’의 주·객관적인 요인을 추적해 봤다.
조 의원은 대선 당시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추·김 의원은 각각 선대위 국민참여운동본부장·홍보본부장을 지냈으며 유씨는 후보 경선 당시 대변인 격인 공보특보를 맡았던 인물. 네 사람은 “민주당이 만든 국민참여경선제로 대통령 후보가 되고,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버리는 것이 개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당과 지지자들에 대한 배반”이라며 “당내 통합도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통합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전국정당화를 할 수 있냐”고 비난했다. 심지어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며 “노 대통령이 국민통합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전면부정한 셈”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또 노 대통령이 신당에 대해 보여준 일련의 행태를 “오기 정치의 전형”(추미애 의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자신들의 면담 요청(9월8일)에 대해 ‘신당 불개입’을 내세워 거절했으면서도 불과 열흘도 안돼, 그것도 신당문제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 광주·전남지역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당 지지’를 선언한 것은 ‘누가 뭐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한다’는 오기의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김경재 의원은 당 개혁안 협상 결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책임을 ‘오기 정치’와 연관지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개혁안에서 유일한 미합의 쟁점이었던 임시지도부 구성 문제에 신·구주류 비율을 5 대 5로 한다는 데 잠정적인 합의가 이뤄져 당시 김원기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의견을 물은 바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를 거부한 채 구주류의 완전한 ‘백기투항’을 요구해 협상은 결렬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노 대통령의 오기와 이를 등에 업은 신주류의 오만으로 당이 깨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언론관계도 ‘노무현식 오기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노 대통령의 대(對) 언론 ‘적대전선’이 <조선>·<중앙>·<동아>뿐 아니라 전체 언론계로 확산되면서 여권 내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달았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양상. 특히 청와대가 21일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의 아파트 분양권 미등기 전매 의혹을 제기한 <동아일보>에 대해 ‘취재 거부’를 결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조치는 특히 노 대통령이 4개 신문사에 대해 제기한 소송 건을 놓고 정치·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그것도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 송월주 스님 등 종교계 원로들이 지난 19일 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언론과의 관계 개선’을 충고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내려져 충격파를 던졌다.
▲ 노 대통령의 신당 지지 선언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당내 통합도 못 하면서 국민통합이 웬말이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 도서관에서 원내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열린 통합신당 의원총회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에 앞서 역시 언론과의 관계 개선을 주문했던 부산지역 노 대통령 측근인사도 ‘언론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충고하려 하지 말라’는 취지의 살벌한 답변을 들은 뒤 아예 입을 닫아 버린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오기 정치’에 대한 비판은 노 대통령 주변 일부 참모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김경재 의원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 근처 386을 보니 전부 ‘반(反) 김대중(DJ)’이란 성장 배경을 갖고 있더라. 그런 사람들이 (노 대통령을) 오리엔테이션하니 ‘DJ를 조져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에게) 문희상 비서실장은 전혀 힘을 못 쓴다. 확신이 있으면 자신의 얘기를 하는 유인태 정무수석조차 이전에 대통령의 온정주의를 비판하며 사표를 던진 뒤에는 (노 대통령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하며 ‘386 장막설’을 주장했다. 나중에 유 수석이 사표 제출 사실을 부인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이 “정보 독점에서 오는 대통령의 아집과 독선”을 거론했다는 점을 들어 청와대 정보라인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한 386참모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여권, 특히 청와대 인사들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김 의원의 주장에 공감하는 의견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청와대 한 386 참모는 최근 “청와대 입성 이전까지 ‘듣는 입장’에 가까웠던 대통령이 최근 들어서는 주로 ‘말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전처럼 진언을 하기 어려워졌으며 부처 장관들이나 수석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던 시니어급 핵심측근 역시 “청와대 386 일부 참모들이 언론관계 등 대통령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오도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 때가 적지 않다”는 말로 동감을 표시했다.
‘인의 장막’ 논란과 함께 청와대 참모진 간의 ‘알력설’도 다시 대두되고 있다. 이미 정무라인을 두고 정치인 출신 문희상 실장·유인태 정무수석과 386 출신 비서관 3명(천호선 정무기획·서갑원 정무 1·김현미 정무 2)간에 이른바 ‘코드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에는 386그룹과 부산 인맥 간의 주도권 경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양측간의 ‘갈등 재발설’은 얼마 전 일부 언론에 보도된 부산 인맥의 핵심인 모 비서관의 서울 강남 숙소 무상 사용 논란과 관련, 부산 그룹측에서 정보를 흘린 진원지로 386그룹 모 참모측을 지목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해 여권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