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뭐기에… 14년 만에 데려온 친딸 불구 만들어
일부러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낸 19명의 ‘가족 보험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금 씨는 최 양을 데리고 병원 응급실을 나와 다른 병원들로 끌고 다녔다. 결국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최 양은 하반신이 마비가 왔고,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어머니 금 씨는 딸의 장애보험금 1억 30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고 경위를 조사하던 보험사의 조사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최 양이 추락 사고를 당한 그날은 최 양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날이었던 것. 최 양은 앞서 10월 어머니 금 씨의 동거남인 손 아무개 씨(43)가 운전하던 승합차와 접촉사고가 나 손목인대가 늘어나는 등 경미한 부상을 입고 58일간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 사고로 역시 금 씨는 1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더욱 의혹이 증폭된 건 최 양이 금 씨와 14년 만에 갑작스레 같이 살게 되면서 잇따라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1년 8월 금 씨는 전 남편 최 아무개 씨(46)에게 이혼한 지 14년 만에 찾아와 “이제 내가 최 양을 직접 키우겠다”며 최 양을 데리고 왔다. 최 씨에게 친권포기 각서까지 받았다. 그래서 최 양 앞으로 나온 보험금을 모두 금 씨가 챙길 수 있었던 것. 금 씨는 최 양과 함께 살게 되자마자 딸 명의로 4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혐의를 포착한 경찰은 1년 동안 금 씨 주변을 수사하며 범행 증거를 확보했다. 범행을 참여했던 공범 중 한 명에게 자백도 받아냈다. 경찰이 금 씨를 구속해 조사하려 하자 금 씨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피했다. 경찰은 금 씨가 갈 만한 연고지를 중심으로 6개월간 추적을 시작했고 결국 금 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조사를 통해 드러난 보험사기단의 규모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금 씨를 비롯해 금 씨의 어머니 오 아무개 씨(70), 금 씨 남매 4명과 그 배우자, 자녀, 조카, 이혼한 전 남편과 그 자녀, 내연남 등 일가족 19명이 개입돼 있었다. 보험사기를 숱하게 맡아온 경찰들까지 3대에 걸친 범죄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들이 5년간 36차례나 고의로 낸 교통사고로 타낸 보험금만 6억 5000만 원에 이르렀다. 심지어 금 씨는 지난 2005년 7월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근처의 한 도로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시켜 길가에 불법 주차된 청소차 컨테이너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낼 때는 차에 자신의 세 살배기 딸을 태우기도 했다.
그럼 금 씨 일가족이 5년간 6억 5000만 원에 이르는 보험금을 타내는 동안 경찰과 보험사에서는 왜 범죄 혐의를 눈치 채지 못했을까. 서초경찰서 주경남 지능팀장은 “금 씨 일가가 월 보험료와 보상 한도 등 보험 상품 종류를 소득 수준에 비해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정해 보험사와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보험사들끼리 서로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보험사기 혐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품을 고르고 조정하는 역할은 2년간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금 씨의 어머니 오 씨가 맡았다.
또한 금 씨 일행은 경찰과 보험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단독사고의 형태를 취하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들을 노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중고차를 구입해 목격자가 없는 새벽 한적한 길가에 세워진 전신주를 들이받거나, 갓길에 주차된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한 중앙선을 넘거나 불법유턴을 하는 등 법규위반 차량을 노리기도 했다. 그래서 보험사에서도 보험사기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다보니 차량도 많이 필요했는데, 범죄에 동원된 중고차만도 16대에 이르렀다. 이 차량들의 구입비도 물론 수령한 보험금으로 충당됐다.
앞서 금 씨의 딸 최 양은 새벽에 3층 높이 창틀에서 떨어져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하반신 마비가 왔다. 그러나 최 양이 늦은 새벽에 창틀에 걸터앉아 공놀이를 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또한 금 씨의 고의적인 계획범죄가 아니었을까. 경찰은 “보험금을 위해 금 씨가 딸을 창밖으로 일부러 밀었다고 의심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주변주민들과 목격자들이 사고였다고 진술했고, 최 양 스스로도 자신이 부주의해 추락했다고 주장해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떠밀었다고 결론짓긴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6일 고의나 허위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을 부당 수령한 사기 등의 혐의로 금 씨를 구속하고, 금 씨의 어머니 오 씨 등 일가족 12명을 불구속입건했다. 이 과정에서도 보험금에 눈이 먼 금 씨의 비정함은 나타났다. 금 씨는 경찰에 붙잡힌 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엄마, 동생, 동거남 등 다 같이 범행을 저질렀는데 왜 나만 구속하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금 씨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도 대부분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