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과일 박스.
[일요신문] 대기업이 또다시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꼼수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편의점에서 과일을 박스째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인근 슈퍼나 소규모 과일 가게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느 날 여의도 길가를 걷던 A 씨(30·회사원)는 한 GS25 편의점 앞에 과일 박스들이 진열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A 씨는 “편의점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소포장해서 파는 것은 봤지만 박스째로 파는 것은 처음 봤다. 품질도 좋아 보이고 가격도 저렴해 구미가 당겼다”고 말했다.
사실 GS25 편의점 과일 박스 판매는 주부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알려진 알짜배기 정보다. 한 주부 커뮤니티 카페에서는 한 회원이 과일을 박스째 세일하고 있다는 GS 편의점의 위치와 과일 사진 등을 게재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해당 게시자는 “저는 2박스 사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3~4박스씩 사 가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대를 강조했고, 다른 회원은 댓글을 통해 “요즘 편의점 과일 관련 글이 자주 올라온다”며 호응했다.
실제로 편의점 GS25는 복숭아 한 박스(1.8㎏)와 초록 사과 한 박스(2.5㎏)를 각각 98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수박은 한 통(7㎏)에 1만 3000원대다. 과일도 제휴카드를 내면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할인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편의점의 과일 박스 판매에 대해 '골목상권 침해'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과일은 수박, 복숭아, 포도, 사과 등 다양하며 상시적으로 판매된다. 또한 편의점의 위치가 대로변은 물론 주택가 골목에도 상당수 위치해 있어 마켓과 과일 가게 등의 상권과도 겹친다.
한 편의점 점주는 “주로 소규모 과일을 팔지만 본사에 얘기하면 과일을 박스째 판매할 수 있다. 가게가 주택가에 있거나 팔릴 만한 자리에 있으면 주문을 한다”고 전했다.
또한 편의점 과일은 마트나 과일 가게에서 판매되는 상품보다 더 저렴한 편이다. 거대 유통망을 지닌 대기업 편의점은 농장 직거래 등을 통해 유통 과정을 줄이고 각종 할인 제도를 적용해 소비자에게 더 싸게 물건을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의 과일 박스 판매에 대해 GS25 홍보팀 관계자는 “경영주들이 상권 등을 고려해 주문하면 본사에서 과일 박스 제품을 제공한다”며 “과일 공급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일을 박스째 판매하는 것은 GS25에서 주로 시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편의점 본사에서는 점포에 대량 판매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세븐일레븐 홍보팀 관계자는 “과일은 소포장 제품만 있고 박스째로는 판매하지 않는다”면서도 “경영주가 원하는 물품이 있다면 주문하고 본사 측에서 물품이 구해진다면 제공할 수 있다. 물품을 박스째 판매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물품의 대량 판매에 대해 딱히 제한을 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 팀장은 “대기업에서 과일까지 싸게 팔면 시장을 분할하게 되는 건데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가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는 상도덕과 지역경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법적인 제재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 상권이 침해되면 선의의 경쟁을 뛰어넘어 업체끼리 출혈경쟁, 과열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서로에게 피해만 입히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