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직 관료가 쓴 ‘원전 비리 고발 소설’ 화제

“오염수 해결책 없다…이게 기본 전제”

[일요신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유출사고는 이미 2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으며, 일본 정부 역시 알고 있었다.” 지난 9월 고단샤에서 출간된 책 <원전 화이트아웃>이 일본에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원전을 둘러싼 비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이 책은 비록 소설 형태이지만 도쿄전력과 정치권, 행정 관료가 어떤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특이한 점은 저자가 일본 현직 관료라는 것. ‘와카스기’라는 필명을 가진 저자는 우리의 행정고시격인 일본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관료로 알려졌지만 그 외에는 신원을 일체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일각에서는 ‘혹시 <원전 화이트아웃>의 내용이 내부고발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를 통해 현직 관료가 말하는 일본 원전 비리 이야기를 낱낱이 파헤쳐본다.

사상 최악의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방사능 오염수 유출 소식이 들려오고, 어이없는 관리 부실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통제되고 있다”고 발언했으나 <아사히신문>이 발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일본인들조차 이 말을 믿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화제의 책 <원전 화이트아웃>의 저자는 “솔직하게 후쿠시마 오염수 해결책이 있는지를 일본 정부나 관료, 혹은 도쿄전력에 물으면 ‘그런 것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방사능 오염수는 언젠가는 바다에 흘려보낼 계획이었다. 이는 2011년 3월 후쿠시마원전 사고 발생 당시부터 관계자 사이에서 공유되어온 이른바 전제 같은 것이었다고.

“2020년 도쿄올림픽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감은 줄어들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숨 돌리게 되고, 순조롭게 원전 재가동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관료로서 원전을 둘러싼 수많은 부패를 지켜본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뗐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이 감춰진 진실을 모른 채 정부의 놀음에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집필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원전 문제와 싸우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해고당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익명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원전 화이트아웃>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일단 주인공들은 가상 인물이지만, 디테일한 대사와 상황 설정은 기본적으로 저자가 겪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일본 전력회사의 ‘괴물’ 같은 시스템을 고발한다. 가령 전력회사는 거래처에 대한 용역금액을 시세보다 2할 정도 높게 책정해 이익을 남기고, 그 이익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업체에 예탁하는 편법을 쓴다.

일본 현직 관료가 원전 비리를 폭로한 소설을 써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 모습. AP/연합

소설에 등장하는 관동전력의 경우 예탁금이 무려 연간 800억 엔(약 8850억 원)에 달한다. 저자는 “실제로 전력회사의 이러한 자금들은 정치 헌금이나 언론 입막음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올바른 정보가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는 원흉이기도 하다”고 폭로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많은 일본 국민들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일본 원전이 해외 원전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다. 일본 원전은 노후화돼서 최신형도 유럽산보다 안전성이 떨어진다. 유럽의 가압수형 원자로는 만일의 멜트다운에 대비해 녹은 핵연료 물질을 가두어 냉각시키는 ‘코어 캐처’ 설비를 갖추고 있다. 반면 일본의 원전에는 이러한 안정장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허 관련 건으로 해외브랜드에 고액의 라이선스료를 지불하기 싫어서다. 도쿄전력을 비롯한 일본의 원전업체들은 이런 까닭에 안전성을 절대 언급하지 않았으며, 입막음 당한 언론은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냐”며 독자들에게 도리어 질문을 던진다.

전력회사가 정치가를 돈으로 농락하는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역시 저자가 관료로서 보고 겪은 사실에 근거한 묘사다.

<주간겐다이>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전력회사의 괴물 시스템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정치 헌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헌금이 모두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전력회사와 같은 독점 기업에 대해서는 근절해야 한다는 것.

폭로는 계속됐다. 그는 일본 원전 관련 시설이 그동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날림공사가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도 까발렸다. 작중에는 원전 공사현장에서 배관을 조립하는 작업원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거 비뚤어져 있는데 어떻게 잇는 거야? 관동전력에 문의해볼까?” “관둬. 어차피 걔들한테 물어봐야 본사에 확인하겠다는 말만하고, 태평하게 방치할 거야.” 결국 그들은 크게 어긋난 배관을 적당히 연결하고 만다. 비상시 그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올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간 전력회사는 되도록 많은 하청기업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하나의 공사를 여러 기업에 발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탓에 업자들마다 설계 치수를 쓰는 것이 엇갈려 오차가 생기고, 배관 이음매가 맞지 않는 실수도 다반사로 벌어졌다. 실제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위치한 핵연료 재처리 공장에서는 이것이 원인이 돼 누수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향후 다른 곳에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도 대재앙으로 악화된 것은 지진이나 해일이 아닌 어디까지나 인재”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일본 관료들의 쉬쉬하는 분위기도 재앙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본래라면 관료가 최악의 사태를 시뮬레이션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는 감추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오염수는 언젠가 바다에 흘리면 된다. 그때까지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는다”는 불손한 생각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줬다. “관료라고 모두 시꺼먼 것은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라 항상 흑과 백 사이에서 흔들린다. 내심 ‘이래선 안 되는데’라고 느끼고 있을 관료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나는 원전에 대한 집필을 계속할 생각이다.” 저자의 양심 있는 글쓰기가 일본 원전 사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