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들 상대로 발행…청와대 정보가 최고가
‘큰손’들에게 은밀한 고급정보를 제공하는 지라시업체가 SNS 서비스를 기반으로 그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지라시는 정치, 경제, 사회 부문 정보들로 잘 정리되어 서비스 된다.
그러나 정작 ‘지라시’ 업계에선 ‘걱정 없다’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지라시 업계 관계자는 “개인 지라시 유포자는 처벌하기 쉬워도 대형 지라시 업체는 언론 매체로 등록한 경우가 다반사여서 수사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경은 지라시 업계를 상대로 대대적인 내사를 벌였으나 한 해가 가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기관의 내사를 비웃듯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지라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라시를 생산하는 것일까.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전·현직 기자들과 증권 관계자, 대기업 정보실 관계자 등이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2~3회에 걸쳐 일부 언론 매체의 정치, 사회, 경제부 기자 및 대기업 정보실 관계자들이 분야별 정보를 ‘메신저’를 통해 보내오면 이것을 ‘지라시’ 업체 발행인이 취합해 전직 기자와 증권 관계자들과 함께 ‘퇴고’를 거친다고 한다. ‘지라시’를 직접 구입해 보는 금융계 ‘큰손’들의 입맛에 맞게 각각의 정보는 정치, 경제, 사회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제목, 부제, 4~5줄의 핵심 내용’ 형식의 A4 20여 장의 분량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최근 한 언론사의 경제부 기자 A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상사로부터 “실력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기자가 되어서 증권가 지라시를 정보보고로 올리느냐”라는 예상 밖의 꾸중을 들었던 것. A 씨는 상사가 건네준 지라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3시간 전에 오전 정보보고로 제출한 내용이 토씨 하나 안 바뀐 채 그대로 증권가 지라시로 떠돌고 있던 것이다. 이에 A 씨는 “내가 평소 쓰던 기호가 그대로 있다. 이것은 분명 유출된 것”이라고 항변했고 A 씨의 상사도 ‘지라시’를 자세히 확인해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A 씨가 올린 정보보고를 신문사의 누군가가 외부로 흘렸다는 게 밝혀지면서 A 씨는 누명을 벗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A 씨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라시가 돈이 되기는 되나 보다. 기자들 정보보고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밖으로 나도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진위를 캐내는 과정에서 ‘메신저 지라시’용 정보를 흘려주면 적잖은 돈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실제로 그런 제의도 받게 됐다”며 씁쓸해 했다.
지라시 제작에 기자와 같은 고급정보 관련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원인으로 경찰은 증권용 메신저 ‘미쓰리’를 꼽았다. 약 33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이 메신저는 ‘메시지를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라는 특유의 장점 때문에 그동안 증권가에서 애용되어왔다. 무엇보다 ‘미쓰리’의 강점은 데이터가 하루만 저장된다는 것.
경찰의 한 관계자는 “미쓰리에서 ‘지라시’로 추정되는 채팅방이 자주 만들어진다. 이 방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하고 이것을 알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미쓰리 측에 채팅방과 관련된 데이터 정보를 요청했지만 업체 측에선 ‘저장기한이 1일이라 데이터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해왔다. 협조가 없으니 수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라시 ‘장사’를 해도 메신저 상이라면 구조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이런 허점을 알고 있는 지라시 관계자들이 ‘플랫폼’을 문서, 이메일 전송에서 메신저로 옮겨온 것 같다”며 “기자들이나 정보 관계자들이 확보한 정보를 메신저 안의 ‘채팅방’에서 입장료를 지불한 사용자들에게 그때마다 전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걸 알면서도 잡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메신저를 발판으로 ‘지라시’ 시장도 커지면서 정보의 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지라시는 ‘고급 정보’, ‘연예 정보’로 나뉜다고 한다. 고급정보는 CEO 및 고위급 관계자들에게 비싼 값에 넘기고 유명 연예인들과 관련된 ‘연예 정보’는 보너스 형식으로 첨부해 준다고 한다. 고급 정보에는 정치인, 유명 대기업 등의 ‘비화’ ‘동향’이 포함되는데 비싼 값을 하는 만큼 이니셜 없이 실명으로 적시해놓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라시 업체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고급정보 중에서 정치 지라시가 제일 각광받고 있다. 청와대의 입김이 세진 만큼 정치 동향을 알아야 기업의 운명도 점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인 것 같다. 청와대 관련 지라시의 경우 값은 더 뛴다. 때문에 몇몇 ‘큰손’들이 ‘돈을 더 줄 테니 상세히 알아오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이가 많아지니 지라시 발행 횟수도 종전보다 늘었다. 대표적인 지라시 업체로 분류되는 J 보고서, R 신문, J 정보 등 5~6개 업체는 매주 2~3회 간격의 횟수로 각각 20여 쪽에 달하는 고급정보를 ‘큰손’들을 상대로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 구독료는 약 500만 원선이지만 전문가의 추가적인 해석이 붙으면 값은 두 배로 뛴다고 한다.
모 대기업 정보실의 한 관계자는 “경쟁 업체의 동향 파악을 위해 정보 수집을 해야 하는데 지라시 업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각 매체의 정보보고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500만 원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 아닌가. 심지어 구독료는 현금영수증 처리까지 된다”라고 말했다.
‘지라시’ 시장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검·경 당국은 애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라시 업체 대부분이 정기간행물법 상 등록업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라시’도 언론매체로 간주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수사하기 어렵다는 게 검·경 측의 설명이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언론의 자유가 있는 데다 지라시의 내용도 요즘은 소문을 확신해서 적시하는 게 하니라 ‘…으로 추정된다’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다보니 위법성을 잡아내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당분간 ‘지라시’에 대해선 엄중한 단속을 계속할 예정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경의 수사의지와는 반대로 오늘도 한 메신저 채팅창에는 지라시가 ‘고급 정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검·경이 이 정보의 ‘블랙마켓’을 심판할 묘안을 찾을 수 있을까.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