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시장 박원순 ‘MB 따라하기’ 아리송
지난 27년간 미혼 여성근로자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보람채아파트가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왼쪽은 박원순 시장. 구윤성 인턴기자
보람채아파트는 30년 가까이 미혼 여성근로자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왔다. 이곳 입주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직장이 서울에 있는 만 26세 이하 미혼 여성근로자들 중에서도 월 소득이 150만 원 이하여야만 지원이 가능하다. 공무원은 입주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여성 근로자들 중에서도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만이 어렵사리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입주민들은 저렴한 보증금(163만~183만 원)과 임대료(월 6만 4000~7만 원)만 내면 안전하고도 안락한 보금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입주민들의 기본 계약 기간은 2년이며 한차례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18일, 보람채아파트에 서울시의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서울시가 “보람채아파트의 운영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 중에 있으며 원활한 개선 추진을 위한 방안이 공지되기 전까지 2013년 11월 신규계약 대상자부터 입주신청 및 신규계약, 재계약이 유보(불가)됨을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서울시는 “별도의 통보가 있기 전까지 보람채아파트의 신규입주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이 운영개선 방안이지 사실상 서울시가 아파트 철거를 추진 중이며 입주민들의 재계약이나 신규입주자를 받지 않겠다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계약 만료 후 짐을 싸서 나가라는 말이었다. 이 때문에 11월 입주예정이었던 여성 근로자들은 돌연 입주 자체가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에 다시금 철거설이 고개를 든 셈이다. 서울시 측의 철거 추진 배경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아파트의 위치가 경기도라는 점, 애초 구로공단 생산직 여공을 위한 숙소였기 때문에 현재는 의미가 퇴색됐다는 점, 남녀평등 특혜시비가 있다는 점 등이다. 여기에 현실적인 배경이 있다면, 아파트가 위치한 하안동 일대가 역세권으로 개발되면서 수익성 측면에서 매각이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의 대표격인 보람채자치회 측은 최근 서울시의 일방적인 철거 추진 행보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11월 11일에는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자치회 임원회의가 소집됐으며 11월 20일에는 긴급 총회까지 개최하며 입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기자와 만난 자치회 관계자는 “철거 절대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입주민들 대부분 저소득층 여성근로자로서 형편이 어렵다. 상당수는 지방에서 올라왔다. 철거가 추진된다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서울시가 주장해온 여성안전복지정책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입주자 모두 계약기간이 다르다. 만약 철거가 추진되면, 남아있는 이들의 임대료가 오를 수도 있고 관리 자체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더 답답한 것은 서울시의 대응이다. 현재 행태는 누가 봐도 철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담당자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철거 문제와 관련해 내부에서 협의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조만간 협의를 거쳐 공지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입장만 밝혔다.
박원순 시장은 재임기간 동안 서울 일대 쪽방촌을 수차례 방문했을 정도로 서민 주거환경 개선과 관련해 개혁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의 이번 보람채아파트 철거 추진 논란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박 시장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