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매던 ‘감나무 홍시’ MK, 구경만 할까
현대차그룹은 금융·보험 계열사 5곳 중 증권 계열사만 ‘현대’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현대’라는 이름에 각별한 애착을 품고 있던 정몽구 회장에게는 이번이 현대증권을 접수할 절호의 기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동양그룹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대기업이 금융업을 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한 대기업 임원은 “웬만한 대기업은 증권·금융업에 대한 욕심이 많다”며 “새로 하지 못해 안달인 터에 하고 있는 금융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유동성 확보가 시급하고 채권단 압박이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다른 기업들이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에 미적거릴 수 없게 됐다.
현대증권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일부 재계 관계자들의 눈과 귀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로 향했다. 현대증권 인수자로 같은 뿌리를 둔 두 재벌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모두 각각 HMC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이라는 증권 계열사를 두고는 있지만 그룹 이름과 위상에 걸맞지 않게 소규모로 분류되고 있다. 또 ‘현대’라는 이름을 쓰지 못해 인지도 면에서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재계와 증권업계에서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모두 증권 계열사의 인지도 상승과 성장 문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쪽이든 현대증권을 인수한다면 이 같은 고민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 ‘현대’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대형 증권사로 치고 올라가면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차나 현대중공업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라는 이름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08년 신흥증권 인수 후 사명을 ‘현대차IB증권’ 등 ‘현대’를 앞세워 변경하려다 현대그룹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했다. 정몽구 회장은 당시 법정공방을 벌일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법원이 현대그룹 쪽 주장을 받아들여 정몽구 회장은 결국 HMC(Hyundai Motor Company)투자증권이라는 이름을 선택해야만 했다. 범현대가의 장자 기업이 대표 브랜드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영문 이니셜 속에 감춰야 했던 것이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정 회장으로서는 속이 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난 4월 기준 현대차그룹의 금융·보험 계열사 5곳, 즉 HMC투자증권, 현대라이프생명보험,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중 유일하게 증권 계열사만 ‘현대’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도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현대차는 스스로 HMC투자증권의 낮은 인지도를 인정한 TV CF를 제작, 방송하는 오기를 부리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대차 측은 CF에서 2012년도 소비자 인지도 조사를 인용, ‘현대차그룹을 안다고 대답한 사람 99%, HMC투자증권을 안다고 대답한 사람 9%’라는 문구를 스스로 내보였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증권을 노릴 만한 정황은 충분하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기업이 삼성과 현대차밖에 더 있느냐”고 반문하며 “증권업을 하지 않고 있다면 모를까,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자금력이라면 인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는 “신흥증권 인수 때 이미 이 증권사를 잘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밝힌 바 있다”며 “증권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증권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인수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만약 현대차가 현대증권을 인수한다면 현대건설에 이어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의 옛 현대그룹 계열사를 하나씩 ‘접수’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를 유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뿐 아니라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 역시 현대증권 인수전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증권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도 현대차의 HMC투자증권과 비슷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으로서도 현대증권의 업계 위치와 ‘현대’라는 이름이 매력적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2008년 CJ투자증권을 인수했지만, 현대차와 같은 사정으로 ‘하이(Hi)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대증권 인수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섣불리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정해진 입장이 없다”면서도 “과거 현대건설이나 현대전자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인수·합병이 있을 때마다 미리 인수전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면, 그것은 가격만 올리는 격이 된다”고 말해 참여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 발표가 또 다른 면에서 범현대가의 다툼이 될지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