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120조 양성화 ‘토털사커’ 작전 펼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스틸컷.
이날 검찰은 ‘조폭과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선포했다. 지난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래로 ‘2014년판 범죄와의 전쟁’ 서막이 오른 것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조직폭력 범죄는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범죄”라며 “조직의 동향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수사방향을 설정하고 수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최근 등장한 ‘신흥 조폭’이다. 제3세대 조폭이라고 불리는 신흥 조폭은 합법을 가장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기업형으로 발전해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3세대 조폭이 활동하는 사업 규모를 대략 ‘120조 원’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만큼 천문학적인 돈이 신흥 조폭들 손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90조 원 규모인 국내 지하경제 가운데 121조 원가량을 조폭이 주도하고 있어 기업형 조폭에 대한 단속을 강화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2월 21일 ‘전국 조폭전담 부장ㆍ검사ㆍ수사관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조폭 관련 단속 성과가 높지 않았다는 점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경찰이 검거한 조폭 수는 5400여 명에 이르는 반면 2013년에는 2500여 명을 검거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검거율이 떨어졌다는 점이 지적되어 온 것. 현재 검찰이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폭력조직은 전국 335개 파로 조직원 수는 1만 2000명에 달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몇 년간 크게 변동이 없었다는 점도 조폭 수사에 대한 의지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최근 조폭을 비호했다는 혐의로 한 현직 경찰이 검찰에 불구속 기소됨으로써 경찰과 조폭의 ‘은밀한 공생’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조 아무개 씨가 폭력조직 ‘장안파’ 행동대원 정 아무개 씨를 비호한 혐의가 드러난 것. 특히 조 씨가 지명수배가 내려진 정 씨에게 연락해 “점심이나 같이 먹자. 우리 팀 회식도 한번 해야 하는데…”라며 노골적으로 접대를 요구하고 유흥업소에서 풀코스로 성접대를 하게 하는 등의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밖에도 지난 2월 11일에는 부산경찰청 소속 A 경위가 수배가 내려진 칠성파 간부 조직원 B 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과 조폭의 은밀한 공생은 비단 최근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경찰이 조폭의 든든한 ‘뒷배’가 되고 이에 대한 대가로 향응과 금품이 제공되는 일이 마치 관행처럼 은밀하게 이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경찰과 조폭의 비위 사실이 추가로 더 드러날 수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연예인 에이미가 얽힌 ‘해결사 검사 사건’ 당시 경찰로부터 전 아무개 검사의 비위 사실이 언론에 공표됐다고 검찰 내부가 부글부글 끓는 일이 있었다. 그동안 이를 갈던 검찰이 조폭 비호 경찰을 잡아들이고 이를 폭넓게 조사할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결국 검-경 싸움에 연장선에서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조폭 단속에 신뢰를 잃은 경찰을 대신해 검찰이 조폭 단속의 ‘키’를 쥐게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경찰이 검거한 조폭 조직원의 문신 사진을 브리핑하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여러 배경을 통해 봐도 검찰이 24년 만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면에는 만만찮은 각오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높다. 이에 향후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폭력을 주로 썼던 1세대 조폭과는 달리 금융범죄나 주가조작, 기업 M&A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3세대 조폭이기에 검찰과의 치밀한 두뇌 싸움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은 “제3세대 조폭 수사를 위해서는 부장, 검사, 수사관이 ‘토털 사커’와 같이 함께 뛰어야 한다”며 “검찰도 특수, 금융 수사 기법으로 무장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조폭 수사가 경제 수사를 방불케 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셈.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전체 회의를 소집한 것과 같이 검찰의 수사 의지가 상당하다. 아마 조만간 성과가 나오리라 확신한다”라고 전망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