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리나 했더니 또 다른 암초가…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하락과 파생계약 해지가 계속 이어질 경우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에 다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그룹
다만 계약서에 단서가 붙었다. 현대상선이나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하락하면 NH농협증권이 조기 정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번 해지도 이 조항에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14일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3단계나 하락시켰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는 NH농협증권에 손실까지 보전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파생계약 체결 당시 현대상선 기준가는 주당 2만 2550원에서 2만 5950원이었다. 하지만 계약해지일인 26일 기준 현대상선 주가는 1만 1100원으로, 기준가의 절반 수준이다. 기준가로 따졌을 때 NH농협증권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의 가치는 1490억여 원. 현재 시장에서의 가치는 688억여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800억 원에 가까운 차액을 보전해줘야 한다.
NH농협증권과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주식 관련 파생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 2012년부터 지난 2013년 초까지다. 현대그룹이 교보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 다른 금융사들과 파생계약을 맺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도 훨씬 앞선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는 현대중공업, KCC 등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주식 지분율이 33%에 달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던 상황이었다.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파생계약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하락과 파생계약 해지가 이어질 경우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에 다시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23.73%)와 현정은 회장(1.7%), 그리고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합해 지분율 27.12%로 현대상선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파생상품을 통해 확보한 우호지분도 10%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NH농협증권의 계약 해지로 우호지분이 9.4%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율은 26%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NH농협증권의 파생계약 해지에도 경영권 방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파생계약 해지로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에 위협이 됐다면 계약 해지를 막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현대상선이 유상증자를 실시할 때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범현대가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율이 많이 낮아졌다”면서 “상황이라는 게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위험요소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파생계약 체결과 관련해 제기돼왔던 현대그룹 경영진의 배임 의혹이 계약해지와 손실 보전을 통해 다시금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2006년부터 이어져온 파생계약들이 결국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에 손실을 입히면서까지 무리하게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위원장 민경윤) 관계자는 “우리가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우려를 표해왔는데 이번 NH농협증권 파생계약 해지와 현대엘리베이터의 800억 원대 손실 보전으로 현실화됐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