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중반 이후 ‘거물급 인사’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로펌들이 명실공히 대한민국 법률시장의 막강 파워집단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김&장 건물과 그외 대형 로펌들 현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곽상언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위. 그는 1월16일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예정이었다. 곽씨는 지난해 2월8일 노 대통령의 딸 정연씨와 결혼했다. 그를 붙잡기 위한 로펌들의 로비전은 불꽃을 튀었다. 국내에서 난다긴다하는 대형 로펌들이 앞다퉈 그의 영입에 총력전을 폈고, 결국 5대 로펌 중 하나인 화우가 그의 영입에 성공했다.
곽씨 영입을 위해 접촉을 한 화우 소속 이승희 변호사(스카우트 담당)는 “본인이 본사 입사를 희망했다. 서류를 제출받은 뒤 입사를 결정했다”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로펌업계에 알려진 내용은 좀 다르다. 화우의 최대 경쟁자인 A로펌의 경우 곽씨의 대학선배이자 유명 변호사인 C씨를 앞세워 그의 영입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B로펌도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곽씨를 접촉을 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
로펌업계 관계자는 “올해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 중 최대어는 단연 곽씨였다. 곽씨의 경우 법대 출신이 아닌 국제경제학 전공이라는 점에서 로펌계로서는 눈독을 들일 만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대형 국내외 소송사건이 잇따르면서 ‘신 사법부’로 부상하고 있는 로펌의 인맥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 로펌들은 조직 내에 스카우트 전담팀을 두고 그때그때 거물급 인사 영입에 나선다. 특정인사 영입에 많게는 수십억원의 스카우트비까지 들인다는 말도 오갈 정도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로펌에게는 사람이 곧 재산이다. 확실한 인재 한 명을 제대로 스카우트하게 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사람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김&장’ ‘태평양’ ‘세종’ ‘광장’ ‘화우’. 국내 5대 로펌들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거물급 인사’를 스카우트하는 데 열을 쏟은 이들 5대 로펌들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법률시장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막강한 파워집단이 됐다.
2004년 1월 현재 5대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는 6백∼7백 명에 이른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가 5천5백86명이니, 전체 변호사의 15%는 이들 5대 로펌 소속인 셈이다. 여기에 외국인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도 회사별로 40~70명씩 포진해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경우 현재 소속 변호사가 2백 명에 이른다. DJ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최경원씨는 퇴임 후 김&장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0년 퇴임한 이임수 전 대법관도 김&장 소속이다.
그러나 김&장에는 상대적으로 거물급 ‘전관’(前官)보다 직접 발탁해 성장시킨 변호사가 많다는 게 법조계의 평이다.
법무법인 광장도 막강한 법조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94년 8월 이회창씨가 1년 남짓 고문으로 활동했었고, 지난 95년 6월에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이회창 후보 법률고문을 지냈고 대선자금 불법모금으로 구속된 서정우 변호사가 합류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국내에서 승소율이 가장 높은 변호사 중 한 명. 한때 그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건이 들어올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이회창-서정우 변호사가 영입된 이후부터 광장에는 사건수임이 엄청나게 밀려들었다. 소속 변호사 인원도 증가하여 대형 로펌 대열에 합류했다.
▲ ‘김&장’ 최경원씨(왼쪽), ‘광장’ 한승헌씨 | ||
과감한 거물 영입으로 김&장의 맞수로 성장한 세종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이종남 전 감사원장과 현재 세종의 대표변호사로 활동중인 오성환 전 대법관 등이 인맥파워의 핵심이다. 서울지검장을 지낸 유창종 변호사(59)가 지난해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합류했으며, 대법관을 퇴임한 서성씨(62)와 서울고검장을 지낸 김경한씨(60)도 활동하고 있다.
검찰 요직을 거친 인사를 집중 영입한 세종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삼성에서 사건을 의뢰받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태평양은 판사 출신 거물급 변호사 영입에 힘쓴 결과 다른 로펌들에 비해 사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사로 민복기 전 대법원장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퇴임한 송진훈 전 대법관이 고문으로 영입됐으며, 강봉수 전 서울지법원장과 가재환 전 사법연수원장도 태평양의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다.
검찰 출신 인사로는 DJ정부 말기 검찰총장을 맡아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이명재씨와 김영철 법무부 전 연수원장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12월 법무법인 화백과 우방이 합병하여 생겨난 화우도 법원쪽 고위직 인사가 많은 편이다.
노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씨를 영입해 주목받고 있는 화우는 윤관 전 대법원장을 비롯, 지난해 3월 사법연수원장을 퇴임한 박영무 변호사와 초대 특허법원장을 역임한 최공웅 변호사, 천경송 전 대법관 등이 고문으로 있다. 검찰 출신으로는 김병학 전 대전지검장이 화우의 고문으로 맹활약중이다.
대형 로펌에는 소장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들도 많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3~4년 정도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전직한 인사들도 대거 대형 로펌에 입사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또 이번에 화우로 가는 곽상언씨처럼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대형 로펌에 취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법조계에는 아직도 전관예우의 전통이 남아 있어 로펌에서도 ‘전관’들을 선호하고 우대한다. 그 이유에 대해 한 개업 변호사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내부 동향 파악이 용이하고 검찰의 책임자급과 전화통화로 소위 ‘전화변론’도 가능하기 때문에 피의자가 불구속 기소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또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과정에서 담당 판사와 치열한 법리논쟁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몇몇 대형 로펌에서는 장·차관 등을 지낸 고위 공직자 영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순수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진 않았지만 사건수임과 해결, 분석 등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들의 집중 영입대상은 옛 기획원과 재무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국세청 등 경제 관련 부처 출신과 정부의 인허가 관련 업무경력을 소유한 인사들. 로펌의 업무 중 M&A, 화의, 법정관리, 국제 비즈니스 등 기업의 송사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인사들의 영입이 중요해지고 있다.
관료 출신 영입에서도 김&장이 단연 독보적이다. 주유엔대사와 주미대사를 역임한 현홍주 변호사가 김&장의 고문으로 10년 넘게 일해왔다. 또 대통령 경제수석과 과기처 장관, 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를 역임한 구본영씨, 국세청장과 건설부 장관을 지낸 서영택 세무사도 이 로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다.
▲ (왼쪽부터) ‘세종’ 이종남씨, ‘태평양’ 이명재씨, ‘화우’ 곽상언씨 | ||
세종은 은행 총재 출신들이 두드러진다. 김영태 전 산업은행 총재, 류시열 전 제일은행장이 고문이며 얼마 전 이근영 제3대 금융감독위원장이 영입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근영 고문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산업은행 총재도 역임했다. 이들과 함께 최인기 전 행자부 장관도 세종의 고문으로 재직중이다.
세종은 경제사건 수임이 폭증하자 아예 2001년 4월 부속 연구소인 시장경제연구원을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는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 백원구 전 증권감독원장 등이 외부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태평양은 김수동 전 특허청장, 이건춘 전 건교부 장관,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 김영섭 전 관세청장, 홍세표 전 외환은행장, 정재룡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이 고문으로 있다.
특히 YS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 재직시 개인휴대통신(PCS) 선정 비리사건으로 기소돼 지난해 7월 무죄선고를 받은 이석채씨도 지난해 10월 태평양의 고문으로 합류했다.
화우는 지난해 4월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해 화제가 됐다.
한편 최근 대한변협(변협)이 대형 로펌들이 앞다투어 경제부처 장관 등 전직 고위 공무원들을 로펌의 고문으로 영입하는 것은 변호사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변협에 따르면 “비 법조인인 고위 관료 출신을 고문으로 영입하는 것은 변호사법 제34조에 규정된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금지’에 저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펌의 영향력은 지난 99년 이후 권력형 비리수사를 도맡아 온 특별검사팀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2년 이용호게이트 특검팀에는 김&장의 성창익 변호사가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했고 지난 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에서는 태평양 소속의 강원일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활약했다. 또 옷로비 특검수사에서 활약한 김진욱, 박영훈 변호사는 김&장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