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순덕 경위 | ||
자신이 사석에서 한 발언이 누군가에 의해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지면서 강순덕 경위는 최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일선 경찰서로 좌천당했다.
동료 여경들과 함께 한 식사 후의 가벼운 담소 자리에서 시중 ‘찌라시’ 수준의 노무현 대통령 관련 소문을 입에 올린 죄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경찰 주변의 반응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어떤 음모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도 유망한 특수수사 요원이 정체불명의 손에 의해서 한직으로 내몰려야 했던 이번 사건은 여러 면에서 많은 의구심을 남기고 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12월17일. 모처럼 경찰청 내 여경들의 모임이 있었다. 경찰청의 맏언니격이었던 김강자 여성청소년과장이 민주당 입당으로 사직하면서 갖는 조촐한 환송식을 겸한 점심식사 자리였다. 당시 참석 인원은 김 과장을 비롯, 강 경위 등을 포함한 약 27명의 여경들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김 과장은 떠났고, 다시 청사 안으로 들어온 여경들 가운데 강 경위를 비롯한 또래 동기 8명이 모여 1층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같은 청사 안에 근무하지만 평소 바쁜 업무 탓에 자주 얼굴을 보기도 힘든 자리였기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한 관계자의 전언처럼 “그저 그런 30대 아줌마들의 순진하고 순수한 수다로 보면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경찰청 청사 1층의 ‘포돌이 커피숍’은 확 트인 공간에 수시로 사람들이 오가는 매점 같은 곳이어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눌 장소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화제의 중심 인물은 강 경위로 집중되었다. 바로 전날 한 일간지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강 경위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특히 그녀는 청와대 하명 등 굵직굵직한 사건만 처리하는 특수수사과 소속이었던지라 고위층 깊숙한 얘기를 궁금해하는 동료들의 시선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딱히 할 얘기가 없었던 강 경위는 시중에서 돌고 있는 소문 수준의 대통령에 관한 ‘찌라시 정보’를 얘기했다. “그게 정말일까?” “설마”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간만의 여경끼리의 수다는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 화근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인 지난 12월2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라사랑’이라고 하는 한 네티즌이 글을 올렸다. ‘대통령 내외분의 이야기를 현직 경찰관이 했다는 말을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됐는데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그런 말의 진위를 떠나 이런 사람이 나라의 경찰관으로 있다는 사실에 몇자 적어봅니다’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강 경위의 실명을 거론한 채 그가 동료 여경들에게 했다는 얘기를 A4 용지 한 장 가득 분량으로 자세히 적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경찰청 주변에서는 갖가지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최대의 관심은 과연 누가 이와 같은 글을 올렸는가 하는 점.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글은 단순히 경찰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의 차원이 아니라 특정인을 음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강 경위의 실명을 직접 거론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이런 사람이 나라의 경찰관이라는 사실에…’, ‘현직 경찰관이 이럴 수 있는지 한심스럽고…’ 등의 비방적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
이런 가운데 최근 강 경위의 급부상에 따른 주변의 경계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소 칭찬 일색이었던 강 경위에 대한 평이 갑자기 “그러기에 잘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지”라고 하는 혀차는 소리로 바뀌고 있는 분위기가 그것.
지난 86년 특채로 경찰에 입직한 강 경위는 보통의 여경들이 행정분야를 전전하는 것과는 달리 중부경찰서 대공계, 경찰청 외사과, 특수수사과 등의 수사 부서에만 집중 배치되었다. 이는 일 욕심이 대단한 강 경위의 악바리 근성을 높게 평가한 측면도 있지만, 위에서 강 경위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
89년 경찰청 외사과로 차출된 것과 2002년 특수수사과로 차출된 것 모두가 위에서의 적극적인 추천이 뒤따랐다고 한다.
더군다나 강 경위는 99년 수해시 미국에서 제공된 구호물품을 빼돌리려던 업체를 적발한 공로로 경사에서 경위로 일계급 특진을 하는 기쁨도 누렸다. 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순경에서 경위 진급시까지 20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3분의 2 이상이 대부분 경위 진급도 못하고 정년퇴직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13년 만에 그것도 고졸 출신인 여성의 몸으로 경위 진급을 한 것은 대단한 출세”라고 표현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DJ 정권에서 가장 잘나간 여성 경찰로 김강자 총경과 강순덕 경위가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두 사람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전남 나주 출생으로 동국대 영문과에 85학번으로 입학했던 강 경위는 시골 벽촌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2남8녀의 여섯째 딸로 태어난 죄로 대학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그후 그는 경찰 시험에 응했고, 특유의 승부근성과 열정은 날개를 달게 했다.
처음 경찰청 외사과로 불려갔을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던 그녀는 뜻밖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행정업무만 시키자, 직접 과장에게 ‘저도 수사업무를 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외사과 사상 최초의 여성 수사관이 된 그녀는 지난 2002년 2월 남성 베테랑 경찰들도 어렵다는 특수수사과에 당당히 입성하면서 다시 한 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초의 여성 특수수사과 요원이 된 그녀를 보며 당시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여성이라는 특수성에 업무능력과 일 욕심까지, 그야말로 여성 최초, 최연소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울 것 같다”고 평할 정도였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강 경위가 너무 앞서 나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질시와 경계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여경들 사이에서는 강 경위의 위치가 그야말로 독보적 존재였다”고 전했다.
그녀와 함께 근무했던 적이 있는 한 동료 경찰은 “강 경위가 결코 나서거나 우쭐대는 성격은 아니지만, 외곬 기질의 고집스런 면이 있고 일 외의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고 전했다. 김강자 전 총경은 “평소 아끼는 후배였는데, 이번 일로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염려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청 조사계에서 계속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막상 조사계 관계자들은 “잘 모르겠다”거나 “수사 상황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어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함께 차를 마신 8명의 여경들 중에서 말이 전해졌거나 글이 올려진 것으로 추정해볼 때 사이버수사대와 공조 수사를 하면 글 작성자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경찰청의 관계자는 “사실상 작성자의 신분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말로 수사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한편 강 경위는 현재 남대문경찰서의 방범계에서 근무중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기자가 방문한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다. 관계자는 “매일 정상 출근해서 잘 근무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찾아라. 강 경위가 기자들 만나기를 싫어한다. 자꾸 언론에서 관심 갖는 것 자체가 강 경위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