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오너다”…컨트롤타워로 주목
동생인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에 나서고 있는 이미경 CJ 부회장(왼쪽)과 남편인 최태원 회장의 공백으로 경영참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근 재계에서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행보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노 관장과 달리 이 부회장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까닭에서다.
이 부회장은 최근 그룹 홍보는 물론 신사업 추진과 이재현 회장에 대한 구명활동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모습은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주력하며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외부 노출을 꺼려왔던 터다.
사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 때는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해 7월 CJ가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하면서다. 당시 CJ는 손경식 회장을 위원장으로,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이관훈 CJ 사장을 위원으로 하는 5인 경영체제로 총수 부재와 경영 공백 상태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재계 인사들의 시선은 대부분 이미경 부회장으로 향했다. 5인 중 오너 일가이자 그룹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손 회장이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지만 상징적 존재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고 이채욱 부회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서 CJ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CJ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과 활동범위는 상당하다. 올 초부터 이 부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면서 동생 이재현 회장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 1월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 개막에 앞서 열린 ‘한국의 밤(Korea Night)’ 행사에 참석해 홍보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지난 2월 초 블룸버그통신의 금융잡지 <블룸버그 마케츠>와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CJ그룹의 사실상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은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 부회장이 동생인 이재현 회장의 석방을 위한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는 얘기도 오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모습은 전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룹경영위원회가 유명무실할 정도”라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그룹경영위원회 위원들이 일을 조금씩 나눠 한다”면서도 “각 위원들이 특별히 업무영역이 특화돼 있거나 고유 영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체계나 정확한 업무 분담 없이 사안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이 부회장의 경우 동생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 본인 대신 경영에 나서달라는 이재현 회장의 요청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시쳇말로 뜨면서 일부 재계 인사들은 SK가의 노소영 관장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CJ와 같은 처지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집단체제의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필요한데 노 관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그러나 노 관장의 경영참여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만만찮다. 이미경 부회장의 경우 총수의 누나일 뿐 아니라 그동안 CJ그룹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경영인이지만 노 관장은 그런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디지털아트를 전공한 노 관장은 SK그룹이 서울 서린동 본사로 오면서 2000년부터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역할만 맡아왔다.
한편, 한화그룹도 상당 기간 총수 부재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SK와 CJ는 한화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김승연 회장 구속 당시 부인 서영민 씨가 잠시 회자된 적 있었지만 한화에는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이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최태원 회장과 이재현 회장 자녀들은 경영수업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나이여서 아버지를 대신하기는 힘들다는 것. 더욱이 SK는 최 회장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까지 함께 구속되면서 졸지에 오너십이 위태로워졌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총수 자리 오른 아내들 남편 죽음 탓 급한 데뷔도 재계에는 총수 부재 상황을 ‘여성 특별관계인’이 대신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총수 부재 상황에서 자녀들이 어려 본인들이 직접 총수 자리를 대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왼쪽부터 현정은 회장, 최은영 회장, 박현주 부회장, 장영신 회장. SK·CJ와 가장 흡사한 경우는 박현주 부회장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남편인 임창욱 명예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기소돼 총수 부재 상황에 직면하자 그해 9월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면서 대상그룹의 중심에 섰다. 장녀인 임세령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문 상무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해 출가외인이었고, 차녀 임상민 대상 전략기획본부 상무는 어린 나이여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었다는 점도 SK·CJ와 같다. 금호가 출신인 박 부회장은 아직까지도 대상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영신 회장은 1970년, 현정은 회장은 2003년, 최은영 회장은 2006년 각각 남편과 사별, 경영 공백 상태를 메우기 위해 부랴부랴 경영인으로 나선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