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위급해도 자식 밥그릇은 못내줘!
한진그룹 대한항공 사옥(왼쪽)과 동부그룹 본사 사옥 전경. 두 그룹은 재무구조가 튼튼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일요신문 DB
NICE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일제히 대한항공에 대한 신용등급을 A등급군 마지막 단계인 ‘A-’로 강등했다. 추후 전망도 ‘부정적’이어서 대한항공은 자칫 B등급군으로 추락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등급강등 직전부터 대한항공 주가는 곤두박질쳐 시가총액은 2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1분기 말 대한항공의 순자산가치(청산가치)가 2조 58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시장은 6000억 원 이상 부실이 발생할 것으로 평가한 셈이다.
등급강등의 발단은 에쓰오일 지분 매각 차질이다. 대한항공이 96.6% 지분을 가진 한진에너지는 에쓰오일 지분 28.4%를 가진 2대주주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이 지분을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 매각해 2조 원 이상의 현금을 만들기로 채권단과 약속했다. 그런데 최근 정유업 불황으로 에쓰오일 주가가 부진해지면서 매각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조양호 회장이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아람코 최고경영진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귀국 후 별다른 성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
조양호 한진 회장
그나마 한진해운 유상증자나 신규항공기 도입은 사업상 꼭 필요한 지출이란 점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런데 호텔과 관련해 대규모 투자를 강행하는 데는 전문가들조차 이해가 안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진그룹은 미국 LA 월셔그랜드 호텔을 짓는 데 11억 6600만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광화문 인근에 7성급 관광호텔을 짓는 데도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 보유 중인 에쓰오일 지분가치가 약 1조 8000억 원이니까, 이를 모두 호텔 짓는 데만 써도 빠듯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호텔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항공부문은 남동생인 조원태 부사장이 물려받더라도, 그 전에 본인이 맡을 호텔부문을 키우기 위해 한진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연간 3927억 원의 세전적자를 낸 데 이어, 올 들어서는 1분기에만 적자규모가 2690억 원에 달한다. 최근 유상증자로 한진해운마저 연결재무제표로 연결되면 올 적자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진해운은 올 해에도 50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 때문에 올해 대한항공이 연간 기준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김준기 동부 회장
김 회장의 자산 중 큰돈이 될 만한 것은 동부화재 지분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지분은 대부분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있다. 산업은행은 김 회장 주식담보를 풀어주는 대신 아들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 지분(13.29%)을 담보로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율은 13.29%로 김 회장의 6.93%보다 두 배가량 많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비금융계열사를 위한 수백억 원대 담보대출 때문에 시가총액 4조 원대 기업의 경영권 지분을 담보로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경영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동부그룹이 워낙 강하게 버티고 있어 채권단도 일단 더 이상 압력을 가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인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매각이 차질을 빚을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채권단과 동부그룹은 매각대상 자산의 가치가 1조 원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수 후보인 포스코 측은 7000억 원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 비금융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채 6000억 원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의견차가 클 만도 하다. 사업가치와 재무부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업가치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아들의 동부화재 지분을 끝까지 지키려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동부그룹의 비금융부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들을 중심으로 동부그룹 금융부문의 경영권은 유지하려는 복안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딸인 김주원 씨와 동부문화재단까지 합하면 김 회장 지분을 빼도 총수일가 지분율은 20%가 넘는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