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 좋은 산골땅 2만5천평 골랐다
▲ 수목원 부지의 임시 헬기 이착륙장. 이건희 회장(왼쪽)은 헬기로 부지를 방문하는 등 수목원 프로젝트에 상당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 ||
경북 영덕 칠보산 부근 일대 땅을 매입해 수목원 건립을 추진해온 삼성 이건희 회장이 최근까지도 이 지역 인근 토지를 계속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경북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상의 부지 매입 계획 범위를 넘어서까지 인근 토지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장이 영덕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부터 세간에 알려졌다. 삼성측에서도 지난해 이 회장이 휴양림 부근 수만 평 부지에 총 27억원을 들여 사립 수목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이 회장 소유의 토지가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일각에서는 이 부지가 수목원 외에 다른 용도로도 활용되지 않겠냐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이곳에는 침엽수원, 유실수원, 약용식물원, 온실, 분재실, 그리고 1천 종에 이르는 식물 자원 등을 포함한 수목원이 들어선다.
그러나 최근 이 회장이 계속 토지를 매입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항간에서는 연수원, 골프장이나 연습장 혹은 이 회장의 전용 별장이 세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회장이 인근 땅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는 곳은 국내에서 최고의 환경친화지역으로 꼽히는 경북 영덕군 영리 일대. 특히 이 회장이 입도선매중인 땅은 예로부터 돌옷,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 등 일곱 가지 보배가 자주 나왔다고 전해오는 칠보산 자연휴양림 부근에 몰려 있다. 이곳은 고려 말 이색 선생이 시를 읊다가 고래가 물을 뿜는 것을 봤다고 해 이름 붙여진 고래불해수욕장이 인근에 위치하기도 한 절경지다. 더구나 풍수지리학상, 백두산과 태맥산맥으로 내려온 기맥이 가장 충천하는 곳으로 꼽힌다.
이 회장이 매입한 필지 수는 영리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워낙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진 탓이다. 일단 영리 주민들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 회장 매입 부지 평수는 대략 3만에서 3만2천평 사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용인 에버랜드 내의 양어수지나 과수단지 정도의 크기다.
등기부에 따르면 이 회장이 이곳 땅을 처음 매입한 것은 지난 2001년. 이 회장은 김아무개씨 소유였던 경북 영덕군 영리 11XX-X 전답 4백55평을 2001년 1월15일 첫 매매 예약하면서 2002~2004년에 걸쳐 칠보산 휴양림(경북 영덕군 영리 산 214번지) 일대 토지를 대거 매입했다.
2004년 2월에는 권아무개씨로부터 산115-X번지 임야를 매입했다. 9천5백99평 규모의 이 토지는 수목원에서 가장 중심권에 위치한 부지다. 이 회장은 2004년 3월에는 권씨가 운영하던 일반음식점과 2층 단독주택도 매입했다.
칠보산 휴양림 아랫자락에 위치한 ‘범흥마을’의 대부분도 어김없이 이 회장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곳은 실제 여러 번지수로 나누어져 있으나 관행상 ‘113X번지’로 불리는 마을이다.
현재 총 12가구 중 9가구가 이 회장에게 토지를 팔았다. 이 회장이 이들에게 보상가로 지불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아 있는 세 가구 주민들에 따르면, 토지를 판 마을주민은 평당 3만원에서 많게는 평당 8만~10만원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이 토지를 매입할 무렵, 평당 1만원 선에서 시세가 형성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마을 주민들은 최소 3배에서 10배 가까이 차익을 누린 셈이다.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이 회장이 곧바로 땅을 매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땅 대부분이 매매예약 형식을 거쳤거나 그룹 소속 전직 인사가 먼저 땅을 매입한 뒤 1년 혹은 2년 후 이 회장이 넘겨받은 땅이다.
경상북도 향교재단 소유 부지의 매매 과정이 대표적인 예. 영리113X, 113X-2, 113X-3 등과 113X-6(도로), 113X-X(종교 부지) 등 8개 필지에 걸쳐져 있는 이곳 부지는 2003년 8월20일과 2004년 1월9일 원소유주로부터 박아무개씨에게 팔렸다. 그후 지난 3월17일 이 회장이 이 부지를 고스란히 박씨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등기부에 나타나 있다. 박씨는 삼성그룹 21세기 기획단 전문임원으로 삼성자동차 개발팀장 등을 거쳐 2000년 삼성생명 이사 대우로 재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매입한 부지 내의 집을 허무는 모습. | ||
이 회장이 경북도로부터 승인받은 부지 면적 외에 추가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는 점도 시각차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요신문>이 이 회장 명의로 된 부지를 확인한 결과, 지난 4월3일 현재 보유 면적은 총 33필지 8만4천19㎡로 나타났다. 평수로 계산하면 2만5천4백60평. 경북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수목원을 조성하겠다고 기재한 매입 부지는 7만3천㎡이다. 수목원 조성 계획 부지보다 약 1만1천㎡를 더 매입한 셈이다.
특히 지난 3월17일 매입한 8개 번지 면적은 총 7천75㎡. 이 회장이 매입 계획 부지를 초과 보유한 상태에서도 계속 주변 땅을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수목원과 연관된 부대시설을 갖추기 위해 여유 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북도청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이 회장측이 사업 계획 이외의 부지에 대해 추가 사업 승인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도청 산림과 관계자는 지난 4월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2004년 8월30일 7만3천㎡ 면적에 대해서만 수목원 조성 승인이 난 상태며 다른 사업의 허가를 신청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이 회장은 이곳에 수목원과 함께 무엇을 조성하려는 계획일까. 이 회장의 추가 부지 매입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덕 인근 주민들과 부동산 업자들 사이에서는 갖가지 소문이 번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칠보산 주변이 풍광과 풍수가 빼어난 천혜의 길지라는 점에서 이 회장가(家)의 ‘웰빙’ 별장이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만큼 이곳이 휴양과 재충전을 하기에 최적의 자연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 ‘장수 프로젝트’의 시발점으로 수목원 조성을 보는 시각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이 회장이 헬기를 타고 직접 수목원 부지를 방문하는 등 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칠보산 일대가 ‘미니 에버랜드’ 혹은 한남동 삼성타운과 같은 ‘제2의 삼성왕국’이 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곳 부지에는 임시 헬기 이착륙장이 마련돼 있다.
심지어 영덕 일대의 일부 부동산업자들은 이 회장측이 8만에서 10만평 부지를 더 매입할 것이라는 루머를 흘리며 일반인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평당 가격이 2만~3만원이던 인근 고래불해수욕장 주변 부지의 지가가 최고 60만원 선까지 치솟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룹 이익의 사회 환원과 봉사라는 큰 뜻에서 각종 자원을 가꾸고 자료를 전시하는 등 산림에 대한 홍보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설 수목원이 세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최근 이 회장이 지난 3월 칠보산 부근 부지를 추가 매입한 부분과 관련, “이 회장이 앞으로 주변 땅을 매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영덕 인근 부동산 투기자들이 이 회장의 수목원 조성을 빌미로 땅값을 크게 올리려는 데 대해 일침을 가했다.
한편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수목원 조성 공사는 ‘범흥마을’ 9가구 집을 허물고 전답 일부를 정리하는 단계까지 진행됐으나 지난 3월18일 이후 공사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경북문화재연구원이 이 회장 소유의 땅 중 과거 사찰이 있던 약 6백여평 부지에서 고대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지표 조사를 의뢰한 것. 이에 영덕군청이 삼성측에 공사 중단을 요청한 상태다.
몇 개월 뒤 얼개를 드러낼 ‘이건희 수목원’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일까. 수많은 소문과 추측을 뒤로한 채 궁금증만 날로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