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진실의 ‘숨바꼭질’ 속에 사건은 막을 내렸다
구치소 안은 음습한 동굴 같았다. 축축하고 비릿한 공기가 가득 찼다. 그 속에서 온갖 음모가 곰팡이처럼 자라났다. 나는 마기룡을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만났다.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란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시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의 방문 목적을 살폈다.
“이미 재판은 끝났습니다. 제가 정확히 모르고 마기룡씨를 공격한 점은 없었나요? 변호사는 더러 그런 실수를 합니다.”
그는 내가 찾아온 목적이 순수한 걸 이제 알아챈 표정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아시다시피 전 사회에 나와서는 거칠게 살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살았죠. 배운 것 없고 기술도 없는 놈이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다 보니까 사채꾼들의 세상에 들어갔고…. 쓰레기 같은 삶이었죠.”
의외로 솔직했다.
“정말 여대생 아버지 정의택씨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김용국은 나를 다시 불러 사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번복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정말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기룡이 담담하게 내뱉었다. 아직 김용국과 말을 맞춘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발 빠르게 온 게 다행이었다.
“그러면 굳이 그걸 자백했던 이유는 뭐죠?”
시나리오까지 짜고 연습을 했던 치밀한 그들이었다.
“제가 스스로 자백한 건 아니고 다른 부분하고 연결이 되다 보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왜 형사들은 물은 걸 또 묻고 사람 진을 빼잖아요? 그런 속에서 다른 부분하고 관련이 돼서 제가 빠져나가지 못했어요.”
일리가 있었다. 계산상 그럴 땐 털어놔 버리는 게 유리했다.
“재판 도중 심정이 어땠어요?”
“죽은 여대생 아버지 정의택씨를 부르는 게 정말 싫었어요. 회장측에서 합의도 안하고 사죄도 하지 않는데 나와서 무슨 좋은 소리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형만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고 보면 회장은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을 계속 자극하는 셈이었다. 사죄도 안하고, 난 모른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무죄라고 하면서 합의하자는 건 모순이었다. 마기룡이 계속했다.
“그런데도 재판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김용국을 보면 천하태평이에요. 그 표정에서 자기는 빨리 석방되고 나는 사형당한다는 걸 읽었어요. 김용국이와 저는 동창이고 친구지만 이제는 그 인간 정말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싫어요. 판결문을 읽어보면 판사도 제가 우발적인 살인범이고 프로는 아닌 것 같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친구였다는 그 새끼는 뭐라고 하는지 아시죠? 나를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라고 노골적으로 씹는 거예요. 정말 언젠가 살아서 만나면 서로 꼭 풀어야 할 것들이 있어요.”
흥분해서 말하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회장부인측은 50억을 제시하면서 김용국에게 총대를 메달라고 제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김용국에게 회장부인측 변호사를 물리치고 진실을 말해 준다면 그에게만은 합의서를 써주어 석방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김용국은 돈이냐 생명이냐를 놓고 저울질했을 것이다. 일단 나를 선임해서 양심선언의 형식을 취한 그는 자유를 선택했다. 마기룡은 그걸 읽었던 것이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지금 더 이상 나는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다. 김용국이 꺼낸 말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김용국씨 말로는 마기룡씨는 재판부의 동정을 받기 위해 고도의 심리작전으로 국선변호사를 선택했다는데 어떻습니까?”
마기룡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가 참느라고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이렇게 내뱉었다.
“저는 형제들조차 면회를 안 올 정돕니다.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누가 예쁘다고 변호사를 선임해 주겠습니까? 이 사건도 돈이 없어 쫓기다가 마지막에 맡은 겁니다.”
나는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체포된 이후를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만드셨던데 그 내용을 말해 줄 수 있어요?”
김용국은 이제 와서 갑자기 ‘사실은 시나리오가 제3안까지 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 중 회장부인이 살인을 교사했다는 것은 두 번째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했다.
“해외로 도피하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수사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6일에 납치를 하고 10일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더라고요. 전 죽였다고 하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습니다.”
“시나리오 제2안은요?”
“제2안이라뇨?”
마기룡의 눈이 커지면서 되물었다.
“김용국씨가 이제야 진실을 털어놓겠다면서 시나리오의 제2안은 회장부인을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이라고 했어요. 사실 회장부인은 미행만 시켰는데 마기룡씨와 김용국이 실수로 여대생을 죽였다면서요? 그 점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마기룡의 얼굴이 흉측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미친놈! 정말 개새끼네.”
그가 거칠게 내뱉었다. 내가 계속했다.
“제3의 시나리오는 동원했던 건달에게 살인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거라고 하던데요.”
“그런 제2안, 제3안은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묘한 비웃음이 일었다.
“변호사님,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릴까요?”
그가 이제야 뭔가 눈치 챘다는 듯 씩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얼마 전 김용국이한테서 비밀쪽지가 왔습니다. 회장부인 변호사하고 엄 변호사님이 우리를 구하려고 뭔가 새로이 일을 꾸미고 있으니까 식사나 잘 하고 있으라고 써 있더라고요.”
나는 비로소 김용국이 나를 다시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는 나를 이용하려고 장난했던 것이다.
“다시 물읍시다. 회장부인이 살인교사를 지시한 게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회장부인이 살인을 시켰어요. 그 여자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살인 후 잔금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어요. 해외에 도피해 있을 때 김용국이를 이용해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어요.
어떻게 한지 아세요? 용국이가 북한사람에게서 마약을 사고 나보고 거기 이틀만 있으라고 했어요. 마약이 진품인지 확인하는 동안 인질을 잡게 돼 있거든요. 거래가 뒤틀리면 인질은 바로 죽어요. 정말 난 그때 김용국에게 속아서 죽을 뻔했죠. 그래도 난 중국에서 도망다니면서 용국이를 보호했어요. 그런데 회장부인과 용국이는 나까지 죽여서 이 사건을 영원히 미궁에 빠뜨리려고 공작한 거예요. 난 칼 한 자루 가지고 도망 나왔었어요. 그런 인간들하곤 더 이상 거래 안해요.”
마기룡이 협조 안하면 그들의 계획은 실패다. 그가 덧붙였다.
“중국에 도망해 있을 때 같이 아파트에 있어 보면 용국이 그 게으른 새끼는 하주종일 방안에 누워 뒹굴고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어요. 더러 조선족 계집애를 끼고 헬스클럽이나 다니고요. 그리고 무슨 일이나 저를 머슴같이 부렸어요. 난 담배 값도 없어서 헤매는데 말이죠.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감추어진 건 별로 없어요. 제 생각으로는 회장부인측에서 뭔가 신호가 다시 온 거예요. 우리가 다 덤터기를 쓰게 하고 회장부인을 빼내자는 수작이겠지요. 변호사님이 왜 오셨는지 이제 알겠는데 사실대로 털어놓죠 뭐. 얼마 전 이송버스 안에서 김용국이가 나보고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돈이나 받아야 할 거 아니냐’고 했어요. 전 싫다고 그랬습니다. 평생 감옥에서 살 텐데 돈이 있으면 뭘 합니까? 그리고 그 인간들한테 한번 더 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재판을 받을 때는 고모 조카 간 서로 죽일 것 같이 으르렁대더니 지금 모습 보세요. 이제는 나만 살인범으로 몰고 자기네들은 다 빠져나가려고 하잖아요?”
양파껍질 같은 그들의 교활한 꾀는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착하던 김용국의 처도 ‘악마들의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진실하게 하려고 애썼다. 증인으로 나와 직접 50억원의 제의를 폭로했었다. 마기룡은 김용국보다 먼저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김용국의 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 여자가 사무원으로 있을 때 제가 알고 지내다 용국이에게 소개했어요. 아주 착한 여자죠. 중국에 도망가 있을 때도 용국이에게 자수해서 진실을 말하라고 호소했었어요.”
“지금의 그 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그는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뭐라고 말 못하겠습니다.”
내가 이 사건에서 해야 할 역할은 다 끝난 것 같았다.
회색 구름이 구치소 담장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려고 할 때였다.
“변호사님!”
누가 불렀다. 김용국의 처였다. 남편 김용국을 면회하러 왔다가 나를 본 것 같았다.
“남편이 다시 말을 바꾼 거 아시죠?”
내가 그녀에게 확인했다.
“대충은 알아요.”
그녀의 얼굴에 묘한 우수가 스쳐지나갔다.
“사실입니까?”
난 속으로 그녀가 마지막까지 버텨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진실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투도 자신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앞으로 재심 때 남편만 사형당하는 모험을 다시 감행하시겠어요? 세상이 모두 바보는 아닌데.”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한 표정이었다.
“회장측에서 얼마나 주겠다고 하던가요?”
“아니, 절대 그런 적 없어요.”
그녀가 과잉반응을 보이며 부인했다. 그게 끝이었다. 며칠 후 그녀는 앞으로 이 사건에서 손을 떼 달라고 전화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는 생명이 붙어 있는 날까지 그 악마들과 싸울 겁니다. 대법원에서 뇌물 주고 장난칠까봐 지켜봤죠. 또 교도관을 매수해서 형 집행정지로 나오려는 것도 감시하고 있어요. 참 제가 변호사님에게 한 가지 사과할 게 있어요. 제가 진실을 말하면 합의서를 써 주겠다고 약속한 걸 지키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제는 아시죠? 악마에게는 나도 뱀처럼 교활해질 필요가 있더라고요.”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