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즐겨보자” 변태 성행위 ‘내조’도
동반자살인줄 알았던 원룸 남녀 시신의 정체는 유서의 주인공을 찾고 보니 복잡한 자살-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었다. 사진은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임 양이 이 씨를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가출한 임 양은 ‘조건만남’을 하며 생활했고, 이 씨 역시 조건만남으로 만난 남성이었다. 시작은 가벼웠지만 두 사람은 마음이 맞았고 이내 동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 씨의 원룸에서 1년 6개월 전부터 함께 살았다.
한창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인 임 양이 탈선한 배경에는 불우한 가정사가 있었다. 임 양이 네 살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얼마 뒤 재혼했고 그 후로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이후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임 양은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학업은 거의 손에서 놓았다.
임 양이 친어머니와 재회한 건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이었다. 임 양의 불우한 가정사를 들은 이 씨가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토대로 임 양의 친어머니를 찾아줬다. 14년 만에 재회한 임 양과 어머니는 애틋한 마음에 만남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나이가 서른 가까이 됐지만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 별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 부모님의 뒷바라지로 생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생활비와 다달이 원룸 임대료까지 이 씨의 부모님이 대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씨는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열흘을 못 채우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별다른 직업 없이 10대 여학생과 동거하는 아들이 한심했지만 부모님은 계속해서 두 사람의 생계를 도왔다.
부모님에게 계속 얹혀사는 것도, 취직이 되지 않는 것도 이 씨에겐 고통이었다. 모든 생활에 염증을 느낀 이 씨는 임 양에게 “같이 죽자”고 얘기했다. 그는 “죽기 전에 충분히 함께 즐기다 가자. 또 둘만 죽기는 외로우니 저승길 동반자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 씨가 생각한 ‘즐기는 것’은 어린 여성들을 유인해 가학적으로 성폭행하는 것이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한 형사는 “언론 보도에 ‘동거남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범행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동반자살을 계획했고 여성을 유인한 건 남성 쪽이었다. 임 양은 범행을 적극적으로 도운 정도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먼저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이 씨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조건만남을 할 여고생들을 찾았다. 개인정보가 노출될 염려도 없이 상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성관계 한 번에 20만~25만 원을 제시했다. 이 씨가 놓은 ‘미끼’에 10대 여성들은 제 발로 원룸을 찾았다. 하지만 원룸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칼을 든 임 양과 운동화 끈을 든 이 씨였다. 두 사람은 여성들이 들어오자마자 칼로 위협하고 손을 묶었다. 옷을 벗기고 여성들을 가학적으로 희롱한 건 이 씨였다. 임 양은 각종 ‘도구’를 이 씨에게 가져다주며 남자친구가 변태성행위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6월에 두 명의 10대 여성을 차례로 추행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두 명은 성폭행 없이 가학적 추행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 양은 이중 한 명에게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며 ‘조건만남’을 연결해줬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 양의 지시를 받은 여성은 조건만남 남성을 만나러 나가는 척하며 달아났다. 또 다른 한 명은 이들에게 “살려달라”고 빌자 순순히 놔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룸을 빠져나온 피해여성들은 조건만남을 목적으로 이 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들킬까 우려해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사이 두 사람은 또 다른 범행을 계획했다.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이들의 ‘덫’에 세 번째로 걸려든 게 최 양이었다. 7월 8일 이 씨는 앞서와 같은 수법으로 최 양을 유인했다. 하지만 최 양은 고분고분했던 앞서의 두 사람과 달랐다. 단순한 조건만남을 예상하고 온 최 양에게 가학적 성행위를 강요하자 강하게 저항했다. 발버둥치는 최 양을 임 양은 칼로 위협해 입을 테이프로 막고 손을 운동화 끈으로 묶었다. 이어 이 씨는 최 양을 성폭행했다. 최 양이 계속해서 저항하자 이 씨는 최 양의 입과 코를 막았다. 임 양은 다리를 붙잡고 저항하지 못하게 막았다.
두 사람의 압박에 발버둥치던 최 양은 얼마 못 가 몸에서 힘이 빠졌고 미동이 없었다. 애초에 최 양을 살해할 목적이 아니었던 두 사람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어차피 함께 죽기로 한 거 오늘 죽자”며 계획했던 동반자살 ‘디데이’를 당겼다. 두 사람은 창문틈새를 꼼꼼히 막고 그것도 모자라 휴지로 있는 틈새는 다 틀어막았다. 벗겨져있는 최 양의 옷을 입히고 결박한 끈도 풀어주고 입에 붙은 테이프도 뗐다. “살해 의도가 없었기에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남아 상태를 추슬러줬던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두 사람은 자살준비를 마치고 유서를 썼다. 이 씨는 부모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 앞날이 안 보인다”고 쓰고 최 양의 부모에게도 “예쁜 딸 이렇게 데려가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임 양은 어머니에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을 저지르고 가서 미안하다”고 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준비를 끝내고 번개탄 넉 장에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가 원룸을 채웠다. 임 양은 그제야 마음을 바꿨다. 경찰에서는 “임 양이 애초부터 죽을 마음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번개탄에 물을 뿌려 불을 끈 뒤 이 씨에게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 씨는 임 양을 내보내고 최 양과 남아 자살했다. 경찰 수사결과 최 양은 두 사람이 입과 코를 막았을 당시 사망한 게 아닌 혼절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최 양이 이 씨가 피운 번개탄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씨와 최 양을 실은 앰뷸런스가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는 동네주민은 “동거하던 두 사람이 죽은 줄로 알았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죽이고 자살했다니 무섭다”고 말했다. 사건 후 두 사람이 살던 원룸 건물 16세대 중 2세대만 남고 모두 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아들을 믿고 어려운 형편에도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 씨의 부모 역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양의 어머니 역시 가까스로 재회한 딸이 살인 혐의를 받고 구속되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원룸을 빠져나온 임 양은 나흘동안 어머니 집에 머물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을 맡았던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는 “2년 가까이 동거했던 남자친구가 죽었는데도 슬픈 기색도 없더라.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잘 먹고 잠도 잘 잔다”며 혀를 내둘렀다. 또 “결손가정에서 자란 임 양이 규범을 배우지 못해 거리낌 없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임 양은 지난 7월 27일 살인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두 사람이 최 양을 직접적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결국엔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또 당시 최 양이 죽었다고 인지했던 점 등을 고려해 살인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광주=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