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혁규 당선자 | ||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정치특보인 문희상 당선자가 지난 5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개각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 당선자는 이날 인터뷰에서 개각 시기에 대해 “6월20일이 훨씬 넘을 것”이라 밝혔다. 문 당선자는 “만약에 개각이 된다면 국무총리를 새로 임명 혹은 지명을 해야 하고 국회 절차를 밟아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면서 새 총리에게 제청권을 줘서 개각을 단행할 것이기 때문에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문 당선자에게 일찍이 ‘당·청 가교 역할’을 당부했던 것을 볼 때 그의 발언이 개각과 관련된 노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가의 시각이다.
물론 이 같은 문 당선자의 발언은 꼬리를 무는 여권 인사들의 입각설로 인해 관련 부처의 분위기가 조기에 흐트러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여기에 제동을 거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또 다른 ‘복선’을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인 문 당선자가 ‘6월20일 이후 개각’을 언급한 것은 6·5재·보선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6·5재·보선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부산시장·경남도지사 선거 결과가 새 내각 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이 경우 두 개의 영남권 주요 단체장 선거에 ‘상징적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는 김 당선자의 운신의 폭도 선거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김 당선자에 대한 총리 지명은 일단 재·보선 이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부에선 탄핵심판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김혁규 당선자를 총리로 지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선거 결과가 ‘김혁규 총리 카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정가에선 열린우리당이 부산시장직이나 경남도지사직 중 한 군데도 ‘건지지 못할’ 경우 김 당선자가 총리직에 기용된다 하더라도 그 입지가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경남 대통령’이라 불리던 김 당선자를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남권에서 노 대통령 고향인 김해 지역의 갑·을 지역구에서만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당내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김혁규 당선자가 이번 총선에서 공헌한 것이 없다’는 의견이 나돌기도 했다. 당 일각에서 이번 문 당선자의 ‘6월20일 이후 개각’ 발언을 두고 차기 총리로서 스스로 당내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김 당선자가 이번 재·보선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를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김 당선자에게 ‘부담’만을 안기려는 것으로 단정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노 대통령이 김 당선자를 차기 총리로 점찍었다’고 보는 여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노 대통령 최측근인 이강철 전 영입추진단장의 역할을 거론한다. 17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실패한 이 전 단장은 지난 7일 대구·경북(TK)지역 당내 인사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청와대 입성에 대한 소문에 대해 “(노 대통령이) 시켜주면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내에서도 염동연 당선자와 더불어 노 대통령의 양대 ‘시니어측근’으로 불리는 이 전 단장의 청와대 입성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 전 단장은 김혁규 당선자의 열린우리당 영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지난 1월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김 당선자의 당의장 선거 출마를 권하고 정지작업을 ‘도맡아’ 했을 정도로 김 당선자에게 호의적이다. 당내 자파 세력이 거의 없는 김 당선자로선 총선 낙선 이후 ‘조용했던’ 이 전 단장이 다시 기지개를 펴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 전 단장의 활동 재개는 영남권 재·보선의 책임자 격인 김 당선자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김 당선자에 대한 ‘측면지원’을 거론했다.
김 당선자도 최근 들어 열린우리당 부산시장·경남도지사 후보들에게 선거 관련 실무자들을 지원해주는 등 적극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경남도당의 한 관계자는 “마치 열린우리당 후보가 김혁규 당선자인 것 같다.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이 지역 간판인 김혁규 당선자가 총리직에 오를 테니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 발전을 위한 여러 사업 유치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7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워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카드’에 맞섰는데 이번엔 열린우리당이 ‘김혁규 카드’로 일찌감치 간판을 정한 반면 한나라당은 후보 경선 문제로 예선경기에서부터 너무 힘을 빼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나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김혁규 총리 카드’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김 당선자가 총리직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 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반면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 등 당내 잠재적 대권주자 진영에선 ‘김혁규 총리 지명’에 대해 좀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이를 계기로 김 당선자가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두 주자 모두 장관 입각이 점쳐지고 있어 ‘김혁규 총리 카드’가 현실화될 경우 세 사람 간에 미묘한 위상 변화도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김 당선자가 총리가 되더라도 관리형 총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는 것도 정-김 양 진영 일각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가에서는 ‘김혁규 총리 카드’를 두고 ‘영남 대통령-영남 총리’ 구도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여권이 김혁규 카드를 들고 나오는 것은 6·5재·보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당선자를 총리로 발탁하려는 것은 ‘CEO형 총리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전한다. 기업 경영과 도정 양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김 당선자의 역량을 높이 샀다는 것.
하지만 김 당선자는 CEO형 총리로서 본격적으로 ‘실적’을 올리기에 앞서 어쩔 수 없이 6·5재·보선이라는 ‘다리’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과 김 당선자의 운명적 함수 관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노 대통령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다면 여소야대 상황이라 김 당선자가 총리직에 기용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6·5재·보선이 김 당선자에게 또 다른 관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보선에서 성공한다면 차기 주자로서 김 당선자의 주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경남권에서 참패하고 나서 ‘김혁규 총리, 정동영·김근태 입각’ 구도가 현실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 당선자가 두 장관 앞에서 총리로서의 위상을 보일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