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양, 방 대청소 / 박한이, 헬멧 킁킁
#징크스의 기본인 ‘루틴’, 이길 때 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A 선수는 “징크스는 내게 부적과도 같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십자가, 불교인들에게는 염주가 마음의 안정을 주듯, 징크스 역시 선수들에게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징표’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워낙 경기 때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심하기 때문에 우리도 일종의 종교처럼 마음을 기댈 곳을 찾게 된다. 징크스를 잘 안 믿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이기는 날 행동했던 패턴을 그대로 지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B 선수도 “징크스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약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일부러 감추는 선수들도 많지만, 대부분 좋은 경기를 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7월 23일 NC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한화 선발 이태양이 코 부위를 응급 치료받고 있다(연합뉴스). 작은 사진은 삼성 박한이가 타석에 들어서며 헬멧을 다시 쓰고 있는 모습. 이 둘은 자신만의 ‘루틴’을 엄격하게 지킨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사실 징크스의 기본은 ‘루틴’(routine: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을 꼭 해야 심신이 편하다는 선수들이 많다. 반대로 그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불안하다. 널리 알려진 삼성 박한이의 타격 준비 동작도 그 중 하나다. 공 하나마다 헬멧을 다시 쓰고, 장갑 손목 부분을 다시 조이고, 배트로 바닥에 선을 긋는 등 일련의 동작이 이어진다. 심지어 헬멧을 쓰는 방법조차 정해져 있다. 헬멧 안쪽 부분이 얼굴에 닿을 듯이 바짝 앞으로 붙이면서 정교하고 정성스럽게 머리에 끼운다. 한 스포츠방송사의 측정 결과, 이 동작들은 과거 한 세트에 총 24초가 소요됐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에 ‘12초 룰’이 도입이 되면서 박한이도 동작을 몇 가지 생략하려고 시도를 해봤다”며 “그런데 하나라도 빠지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12초 안에 압축해서 다 끝낼 수 있게 같은 루틴 안에서 동작 하나하나에 좀 더 속도를 붙이게 됐다”고 했다.
한화의 새로운 에이스 이태양도 어느새 자신만의 징크스에 따라 다음 등판을 준비하는 게 몸에 뱄다. 특히 등판 당일에는 루틴을 엄격하게 지킨다. 무조건 오전 10시30분에 눈을 뜨고, 낮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그 후 꼭 방을 청소한다. 청소를 하고 마운드에 오른 날 눈부신 호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추가된 루틴이다. 이태양은 “그냥 청소도 아니고 완전히 대청소다. 방바닥을 힘껏 걸레질하다 보면 팔도 잘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야구장 출근 시간도 경기 개시 2시간 전으로 정확히 정해져 있다. 이제 막 꽃을 피운 젊은 투수에게는 이 모두가 승리를 위해 필요한 의식이다. 한번은 경기 도중 늘 차던 팔찌가 끊어져 당황한 적이 있는데, 때마침 정민철 투수코치가 이태양을 보러 마운드에 올라왔다. 정 코치에게 부탁해 팔찌를 원상 복구시킨 이태양은 안정을 찾고 호투를 이어갔다.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징크스는 이렇게 심리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구대성. 연합뉴스
야구를 잘 하는 선수일수록 독특한 징크스가 더 많다. ‘잘 하는 날’이 보통 선수들보다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생은 …처럼’이라는 별명의 원조인 NC 이호준이 특히 유명하다. 스스로 “징크스가 100개도 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나열하기에도 숨차다. 손톱과 발톱은 무조건 월요일 오전에 깎는다. 투수 원종현이 경기장에서 손톱을 깎는 모습을 목격한 뒤 4타수 무안타에 그친 적이 있을 정도다. 미역국은 시즌 중에 절대로 먹지 않는다. 가족의 생일이어도 예외는 없다. 아내 홍연실 씨는 심지어 요리에 쓸 달걀을 하루 전에 미리 깨놓는다.
한화의 레전드 투수 구대성은 한여름에 겨울용 패딩 점퍼를 입고 워밍업을 했다. 반대로 남들이 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팔을 푸는 3월 시범경기 때는 여름용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그야말로 ‘기행’에 가까웠지만, 스스로 그 이유를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 한화의 한 선수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했다.
#프런트들에게도 징크스가 있다
선수들만 징크스에 울고 웃는 게 아니다. 구단 프런트들에게도 징크스는 ‘직업병’이다. 직접 경기를 뛸 수는 없지만, 승리에 대한 열망만은 선수단 못지않게 간절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인 C 구단 마케팅팀장은 유독 승률이 높은 ‘승리 넥타이’를 몇 개 갖고 있다. C 구단 홍보팀의 또 다른 직원도 “팀이 연패한 뒤 빨간색 넥타이로 바꿔 맸다가 그 후로 승승장구했다. 그 다음부터는 꼭 이겨야 하는 중요한 승부가 있는 날 꼭 그 넥타이를 맨다”고 했다. 그래도 넥타이는 양반이다. 연승 중에는 전날 입었던 와이셔츠를 빨지도 않고 그대로 입거나, 양말을 안 갈아 신는 프런트도 많다. 속옷도 두말할 것 없다. 밖에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스스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징크스다.
포스트시즌에서 리버스 스윕을 당했던 D 구단 홍보팀장도 그랬다. 그는 팀이 홈에서 가볍게 2승을 먼저 따낸 뒤 하루 찾아온 휴식일에 미용실을 찾았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이 머리카락이 너무 자란 탓이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헤어스타일을 보니 마음도 개운했다. 그런데 D 팀은 이후 원정 두 경기를 내리 졌고, 결국 홈에 돌아와 치른 마지막 경기도 패했다. ‘팀이 잘 나갈 땐 변화를 주지 말라’는 징크스가 그제야 떠올랐다.
D 구단 홍보팀장은 “내가 하도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을 치러서 감이 떨어졌었나보다”며 뒤늦게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한탄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감독들의 징크스 김성근, 수염징크스…‘간달프 될 뻔’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징크스가 존재하는 프로야구판. 그러나 징크스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끝판왕’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징크스의 제왕,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72)이다. 평생을 야구와 함께 걸어온 김 감독에게는 징크스가 인생의 일부분이자 일종의 종교다.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그의 징크스들을 만들어 낸다. 이뿐만 아니다. 이긴 날 양말을 왼쪽부터 신었다면, 그 다음날도 똑같은 순서대로 양말을 신어야 했다. 한밤중에 치킨집에 갔다가 다음날 팀이 이기면, 질 때까지 매일 밤 그 가게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치킨을 먹었다. 우연히 반바지를 입고 왔다가 연승을 한 뒤로는 출근 복장으로 점점 더 짧은 바지를 고집했다. 늘 가던 이발소 대신 원정 숙소 이발소에서 급하게 머리카락을 잘랐다가 경기에 패한 뒤에는 아예 고교생처럼 머리를 밀어버렸다. 경기 후 맥주 한잔을 즐겨 하지만, 먹지 않고 잤다가 연승을 하면 바로 금주에 돌입했다.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팀이 이기면 다음날도 같은 길로 자전거를 타고 야구장에 도착했다. 김 감독은 “이기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하루라도 더 이기고자 했던 노 감독의 집념이 징크스로 표현된 셈이다. 반면 삼성 류중일 감독은 징크스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스타일이다. 류 감독도 아마 선수 시절에는 경기 전 달걀을 먹지 않는 징크스를 꼭 지켰다. 땅볼 타구를 수비하다 공을 뒤로 빠뜨려서 일명 ‘알을 까는’ 실책을 했는데, 한 선배가 “너 달걀 먹었지? 그러니까 알을 까지”라고 지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한 후에는 달걀을 안 먹고 힘을 낼 수가 없더란다. 단 하나 있던 달걀 징크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류 감독은 솔직하고 명쾌한 성격답게 징크스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내놨다. “징크스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가능한 한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 피곤하니까.” [은] |
빅리거들의 징크스 이치로 오늘도 카레 먹었스므니다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무대다. 당연히 징크스에 대한 일화도 세계 정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징크스 신봉자’들이 수두룩하다. 이치로 스즈키(일본)가 중요한 경기 전에는 꼭 스스로 ‘승리의 음식’이라 부르는 카레로 식사를 했다는 사연은 그냥 애교 수준이다. 대표적인 징크스만 나열해도 숨 가쁘다. 보그스는 반드시 오후 1시47분에 집을 나섰다. 야구장에 도착했더라도 오후 4시47분 전에는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훈련은 오후 5시47분에 시작했고, 내야 수비 훈련 때는 꼭 150개의 펑고만 받았다. 3루 수비훈련을 하러 나갈 때 꼭 1루와 2루를 먼저 밟은 후에야 3루로 향했다. 돌아올 때는 당연히 반대 과정을 거쳤다. 외야에서 웜업을 시작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오후 7시5분 경기라면 6시47분, 7시35분 경기라면 7시17분이다. 한번은 이 사실을 전해들은 토론토 구단이 전광판 시계를 조작해 7시 16분에서 곧바로 18분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장난을 쳤다. 그러나 보그스는 그날 가볍게 2안타로 화답(?)했다. 웨이드 보그스(왼쪽)와 래리 워커. 2005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은퇴한 래리 워커의 ‘3 징크스’도 유명하다. 워커는 초·중·고교 시절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몬트리올·콜로라도·세인트루이스까지 세 팀을 거치는 동안 늘 등번호 33번을 달았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는 연습 스윙을 딱 3회만 했다. 부족할 땐 3회를 더 했고, 또 부족하다 느끼면 3회를 추가하는 식이었다. 시계의 알람도 매 시각 3분에 맞춰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샤워실에서는 한쪽 끝에서 세 번째에 있는 샤워기만 사용했다. 심지어 ‘3’은 그의 인생까지 지배했다. 그는 1993년 11월 3일 오후 3시 33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결혼생활은 3년 만에 끝났고, 그는 전 부인에게 위자료 3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뿐만 아니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고향인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기부금을 전달했는데, 그 액수가 333만3333달러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