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근태 대권레이스 시동

	▲ 정동영 전 의장

열린우리당의 두 ‘잠룡’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 두 사람에 대해 ‘차기 대권 주자’란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가에선 이들 사이에 이미 ‘대권 레이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조만간 동반입각을 통해 당에서 당분간 모습을 감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당내 많은 자파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장외정치 대결이 불가피하게 보인다. 차기 대선까지 열린우리당 내의 세력 판도가 ‘정동영 사단’ 대 ‘김근태 사단’의 대결로 점철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벌일 경쟁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인적 토대와 당내 자파세력 그리고 외부에서 펼치는 물밑 활동에 대한 전력 점검은 2007년 대선 예고편 역할을 어느 정도 해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차기 대권후보군의 양 축으로 자리잡은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그들을 지지하는 자파세력의 성향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정 전 의장 계열이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시장경제론 중심주의자들인 반면 김 전 대표 지지자들은 대부분 운동권·재야세력 출신이다.

당내 정 전 의장 계보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최근 들어 당내 소모임을 결성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이 직접 공을 들여 영입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 전 의장과 노선을 같이 하는 소모임을 결성하고 있어 당을 비운 정 전 의장의 ‘장외 정치’가 가능할 것이란 평을 듣게 만들고 있다.

최근 ‘화요일(火) 조찬모임(朝)’의 변형 명칭인 ‘불새’(火鳥) 모임이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주 제네바 대사를 지낸 정의용 의원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정 의원 외에 민병두 박영선 의원 등 정 전 의장이 개인적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시킨 인사들이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어 당내에선 ‘정동영 지지 모임’성격으로 보고 있다.

총선 때 민생·경제특별본부장을 지낸 정덕구 의원은 현대카드 회장 출신인 이계안 의원 등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시사포럼’(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을 구성 중이다. 당내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 모임의 핵심멤버들은 정 전 의장의 경제정책 마인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사들이다.

정 전 의장 계보 인사들이 시장경제론 중심의 실용주의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니다. 정 전 의장 직계로 알려진 30여 명 의원들 중 진보성향 당내 모임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면면도 적지 않게 엿볼 수 있다.

	▲ 박근태 전 원내대표

먼저 아직 모임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진보성향의 초선 의원 모임이 눈에 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의 임종인 최재천 의원을 비롯해 김현미 이목희 의원 등 26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초선이 개혁을 주도해 노무현 정부를 성공시키자’는 것이다. 진보성향 인사들이 주축이지만 정 전 의장 핵심측근인 김현미 의원이 정 전 의장측과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인 개혁당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참여정치연구회’는 김원웅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박명광 정청래 의원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중 박명광 의원은 정 전 의장 직계인사인 김한길 의원과 함께 당내 새정치실천위원회 내 정책연구재단 추진 공동단장을 맡고 있다. 박 의원은 정 전 의장이 직접 영입에 공을 들인 인물로 향후 기존 당권파에 비판적인 개혁당 출신들과의 관계조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이다.

반면 김근태 전 대표는 당내 운동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정 전 의장측과 같이 당내 여러 계파 구성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 전 의장측의 ‘실용주의 우선, 이념주의 배제’노선에 반발하는 당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김 전 대표 지지성향을 보이고 있다.

김 전 대표를 지지하는 운동권 인사들을 한데 묶어주는 중심축은 바로 전대협 간부 출신 의원들이다. 이들 중심의 당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이미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정배 원내대표의 상대였던 이해찬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지하는 결속을 보이기도 했다.

‘의원 경력과 관계없이 이인영 의원이 모이라고 하면 전대협 출신 의원들은 다 모인다’말이 나올 정도로 전대협 이후 운동권 세대들에게 전대협 1기 의장 출신 이인영 의원은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이 의원은 총선 당선 직후 김 전 대표를 찾아가 ‘비서실장처럼 써 주십시오’라 밝혔을 정도로 김 전 대표에 대해 노골적 지지를 보내온 인물이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의원도 김 전 대표가 상당히 아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현장에서 울부짖는 임 의원을 다독거린 사람도, 총선 승리가 확정된 상태에서 감격에 복받쳐 오른 임 의원을 제일 먼저 끌어 안아준 사람도 김 전 대표였다. 임 의원은 전대협 의장 시절 전대협 운동의 노선을 통일운동을 발전시켜 대중운동으로 자리잡게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김 전 대표가 통일부장관직에 오를 경우 임 의원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전대협 1기 부의장 출신인 우상호 의원이나 전대협 1기 정책위원 출신 이철우 의원, 전대협 1기 상임운영위원 출신 김태년 의원, 전대협 3기 수원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낸 이기우 의원 등이 모두 김 전 대표에 우군 역할을 할 인사들로 평가받는다. 이기우 의원은 “전대협 출신들은 모두 열린우리당에 둥지를 틀었다. 전대협을 비롯한 운동권 지도부 출신 중 재야운동의 대부였던 김근태 전 대표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며 김 전 대표에 대한 운동권 인사들의 집단적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대표 지지 성향을 보이는 이들 당내 운동권 인사들이 정 전 의장 계보로 분류되는 당내 인사들에 대해 수적으로 밀리는 편이지만 내부 결속력은 더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당내 다수 인사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 전 의장측과 김 전 대표측의 ‘조기 대권 전쟁’은 이들의 입각이 결정되고 나서부터 본격화됐다는 평이다. 이들의 입각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김근태 보건복지부 내정’이란 내용의 보도가 나갔을 때 원혜영 의원을 비롯한 김 전 대표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원내대표실을 찾아가 김 전 대표의 역성을 들어주기도 했다. 김 전 대표에 우호적인 한 의원은 “통일부 입각을 준비해온 분에게 보건복지부라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얼마전 일본에 가서 현지 정치권 고위인사들과 만나고 온 김 전 대표는 오는 6월 중순께 중국방문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부총리급인 통일부장관 입각을 염두에 둔 스케줄을 미리 짜 놓았던 셈이다.

정 전 의장의 측근으로 통하는 당 고위관계자는 “입각 관련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것에 불만을 갖고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며 “최근 국민연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를 맡는 것에 대해 (김 전 대표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문제와 관련, 김 전 대표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입각과 관련해 (정 전 의장측과) 갈등 구도로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라며 말을 아꼈다. 김 전 대표에 우호적인 한 의원은 “정 전 의장이 IT 관련 전문가임을 자임하면서 과기부 장관 입각에 관심을 더 갖다가 대선행보에 유리할 것 같아서 통일부쪽으로 급선회한 것 아닌가”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입각과 관련해 최근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입조심’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안으로는 김혁규 전 지사 총리 지명과 관련한 당내 갈등이 야기되고 있고 밖으로는 책임여당으로서 추진해야 할 경제정책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조기 대권 경쟁으로 당내 분열을 일으킨다’는 비난 여론이 조성되는 탓이다.

여론을 의식한 듯 정 전 의장은 지난 5월26일 설악산 휴가를 마치고 내려와 “김근태 전 대표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제의했으며 김 전 대표측도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 5월31일 제주도지사 보궐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함께 제주도 비행기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를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대권을 염두에 둔 이들 두 인사는 최근 정책공약 연구와 후원 세력 결집을 위한 외부 사무실 운영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전 의장측은 공식적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최근 별도의 사무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월 당의장 선거를 위해 여의도에 있던 정 전 의장 개인후원회 사무실을 ‘선거 캠프’로 활용했었는데 이를 확대 개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의장 선거 당시에도 정 전 의장측은 ‘선거 캠프’을 공개하지 않았었다.

김 전 대표는 기존의 ‘한반도재단’ 사무실을 계속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내대표실에서 김 전 대표와 손발을 맞춘 측근들은 재단 사무실에 보내지 않고 외부인사들을 영입해 운영할 예정이다. ‘대선 캠프를 만들었다’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다.

당 안팎에서 세몰이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는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에게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또한 향후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 전 의장은 염동연 의원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 대통령 핵심측근인 염 의원은 이미 지난 1월 당의장 선거에서 정 전 의장에게 호남권 대의원 표를 몰아준 바 있다. 총선 이후 친노 초선 의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열린정치모임’도 정 전 의장에 우호적인 편이다. 염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이 모임 소속 초선 의원들은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근태 전 대표 계열인 이해찬 의원이 우세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정 전 의장 계열인 천정배 의원이 당선되는 데 힘을 모아줬다.

염 의원과 라이벌 관계가 돼 가고 있는 이강철 전 중앙위원은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의원을 지지해 김 전 대표측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김근태 전 대표에 대한 지지보다는 정동영-염동연 라인에 대한 경계심에서 (이강철 전 위원이) 김 전 대표를 지지했을 것”이라 분석한다. 최근 당내 영남권 의원들의 결속을 다지고 있는 이 전 위원의 김 전 대표에 대한 지지 움직임이 계속될 경우 친노 세력 안에서 두 대권 후보에 대한 세력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