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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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유 무의 관광단지 조성 사업이 개발권을 가진 회사의 내부 인사들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사진은 사업 부지(위)와 조감도. | ||
하지만 이 사업은 현재 회사 내부인사들끼리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KI코리아의 두 명의 공동대표가 갈등을 빚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횡령으로 고소했하고 고소당한 쪽에선 다른 쪽을 대표직에서 해임해 사실상 정상적인 업무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첫삽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또 한번 전복위기를 맞고 있는 이 대형사업의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취재했다.
인천 영종도에 인접한 용유도, 무의도 지역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는 데다 영종도의 인천 국제공항과 가깝다는 이점 때문에 관광특구로 개발하기에는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인천시는 지난 1999년부터 이 일대를 관광특구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여러 민간투자자를 물색해왔다. 2001년에는 총 6조 3000억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던 미국법인 ‘CWKA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사업을 진행시키려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원 조달 계획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천시가 우선협상자 지정을 취소했다.
이후 인천시는 사업방식을 민간자본 유치를 통한 개발 방식에서 공영개발 방식으로 바꿔 사업을 추진했으나 이마저 녹록지 않았다.
수 년째 표류되던 사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캠핀스키 그룹이 참여의지를 표명하면서부터다. 인천지역 일간지인 <인천신문>은 2006년 7월 4일자 기사를 통해 “캠핀스키 그룹 관계자들이 지난 5월초 인천 경제청을 방문, 무의도 174만평에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서는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의 개발 마스터플랜을 제출하는 등 이 지역 관광단지 개발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에 대해 당시 공영개발을 추진하던 인천시 측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개발권을 통째로 넘겨버리면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1년 후 결국 인천시는 캠핀스키와 공동으로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개발권을 캠핀스키 측에 넘겼으며 캠핀스키 측도 80조 원가량의 민간자본을 유치해 이 지역을 제2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업규모가 지나치게 확대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방신문들은 용유·무의 관광단지 개발면적이 당초 계획된 면적(7.04㎢, 213만 평)보다 3배가 넘는 21.65㎢(655만 평) 규모로 늘어났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개발권을 넘겨받은 캠핀스키 측은 이 사업을 위한 한국법인인 KI코리아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수년 동안 표류됐던 사업에 숨통이 트인 것도 잠시. 문제가 캠핀스키 내부에서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27일 설립된 KI코리아의 두 공동대표 간에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KI코리아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은 미국 시민권자인 수잔 조 씨. 수잔 조 씨는 얼마 전까지 중국 난싱그룹의 부총재로서 쌍용자동차 인수전을 주도했고 베이징 올림픽 유치전에도 뛰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 경영인이다. 또 다른 공동대표는 캠핀스키 측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바온 홀딩스’의 직원 박성현 씨였다.
인천 지역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의 개발권을 가지고 있는 캠핀스키 측 수잔 조 대표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았던 박 대표 간에 빈번한 의견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급기야는 법적 소송으로 비화됐다. 박성현 전 대표가 속해 있던 ‘바온 홀딩스’가 지난해 12월 ‘조 씨가 20억 원이 넘는 회사 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수잔 조 씨를 경찰에 고소한 것. 두 사람 간에 법적인 문제가 불거지자 컨소시엄의 주체인 캠핀스키 측은 박성현 전 대표를 1월 18일자로 해임하고 지난 10일 씨티은행 부행장 출신인 이수화 씨를 새로운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KI코리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회사의 명의를 도용해서 사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해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횡령건은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결국에 수잔 조 씨의 무혐의가 입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횡령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수잔 조 씨의 법률대리인은 청와대 현 고위 관계자가 일했던 법무법인이다.
외국계 호텔업체인 캠핀스키 그룹이 참여하면서 사업규모가 갑자기 커진 용유·무의 개발 사업에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캠핀스키 측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캠핀스키는 지난 2004년 처음 이 사업에 대한 호감을 내비치며 중국 난싱그룹 부총재 수잔 조 씨를 본사 측의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워 인천시에 사업을 제안해왔다. 미국 시민권자인 수잔 조 씨는 세계적인 호텔들의 인테리어 사업을 맡으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세계적 호텔 업체인 캠핀스키와 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수잔 조 씨를 잘 아는 한 측근은 그가 홍은동에 위치한 그랜드힐튼 호텔의 인테리어 사업을 맡으면서 캠핀스키 그룹 레또 위트워(Mr. Reto Wittwer)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캠핀스키 한국법인 측은 지난달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출신인 제프리 존스 변호사를 새로운 감사로 임명했다. 제프리 존스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던 인물이다.
인천시가 기존의 사업규모를 세 배 가까이 키워서 개발권을 통째로 캠핀스키 측에 넘기면서 두 계약 주체 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오갔는지도 분명치 않다. 인천 경제청 관계자는 “계약 당시 조건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했다. 특혜 논란에 대해서는 “사업이 단지 수익을 창출하는 개발사업이나 투기사업이라면 특혜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사업은 장기적으로 캠핀스키가 수립, 운영, 관리까지 하면서 국가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에 특혜를 줬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캠핀스키 측은 현재 이 지역에 8개 정도의 카지노 설립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 설립은 원래 사업계획에는 없었던 것이고 지자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이 지구에 카지노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인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 이와 관련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개발계획 변경은 단지 지자체의 뜻만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 중앙정부 쪽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 사업과 관련해 정관계 로비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캠핀스키 측이 한국법인을 설립하면서 박성현 전 대표 측을 끌어들인 것도 의문이다. 박성현 전 대표가 속해있는 바온 홀딩스라는 회사는 총 자본금이 5000만 원 밖에 되지 않는 회사다. 매출액도 2003년 기준 72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80조 원 규모의 사업에 컨소시엄을 함께 구성하기에는 외양이 너무도 초라하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회사의 어설픈 동거의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소문이 나왔지만 사건이 곧 터졌다. 바온 홀딩스가 ‘회삿돈 20억 원을 횡령했다’며 지난해 12월 수잔 조 씨를 경찰에 고소했던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려 양쪽을 모두 접촉했지만 박성현 전 대표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으며 수잔 조 씨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첫삽을 뜨기도 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용유·무의 관광단지 개발사업’은 이와 같은 갈등들이 알려지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KI코리아 측은 분명한 사업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사업의 열쇠를 쥔 인천경제청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경제청의 한 관계자는 “캠핀스키와 손잡고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또 다른 관계자는 “기본협약만 맺어진 상태이고 캠핀스키는 우선협상 대상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최고위층 인사도 “아예 시가 사업의 주최가 돼 일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앞서 미국법인 ‘CWKA사’의 경우처럼 모든 일이 원위치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한편 지역 주민들은 캠핀스키 측의 자금 조달 능력이나 사업 참여 의지 등이 의심된다며 캠핀스키가 이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캠핀스키 측은 자본 유치 등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